위로 없는 날들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술 옮김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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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수려한 번역 덕택에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읽는 동안 날숨 끝의 찰나가 기이하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끝과 시작이 얽힌, 민물과 바다가 얽힌, 강 하구의 기수역을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책 속에서)


94. 오직 여기에서만 고통은 고통이다. 이는 여기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다른 곳에서 이 고통 덕분에 승격되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세계에서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세계에서도 변함없을 것이나, 단지 그 반대로부터 자유로워졌기에, 행복이 될 것이다.


64. 65. 낙원에서의 추방은 본질적으로 영원하다. 우리는
낙원에서 돌이킬 수 없이 추방되었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이 영원한 것이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낙원에 머무를 수 있으며, 심지어 실제로 아직도 낙원에 잔류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말이다.


15. 마치 가을날의 길처럼, 깨끗하게 쓸어놓자마자 다시금 낙엽들로 덮여버리는 길처럼.


76. “여기서는 닻을 내릴 수 없다”는 느낌—그런데도 넘실대며 나를 감싸는 물결을 사방에서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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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무서워하고 희망하면서, 대답은 질문의 주위를 맴돌고, 그 굳게 닫힌 얼굴 위를 찾아 헤매고, 심지어 질문의 뒤를 따라 가장 무의미한 길들, 즉 대답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향하는 길들을 간다.


21. 마치 손이 돌멩이를 꽉 쥐듯이. 그러나 손이 돌멩이를 쥐는 것은, 그만큼 멀리 던져버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먼 곳으로도 길은 이어진다.


30. 선은 어떤 의미에서 위로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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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없는 날들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술 옮김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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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언어의 벽에 가로막히지 않고 글 너머의 무엇까지 느껴 볼 수 있도록 해주시는 역자 박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공과 통찰이 실린 번역 덕분에 다른 책에서 그저 밋밋하게 보아 넘겼던 구절이 이 책에서는 생생한 광채를 띠고 새로이 읽혀져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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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찬가 / 철학 파편집 읻다 프로젝트 괄호시리즈 10
노발리스 지음, 박술 옮김 / 읻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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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답다. 숨이 옮겨진 책. 언어가 알끈처럼 들어있다. 압도하는 전율, 생동하는 혼란, 정련된 아름다움. 책이 광경을 깃들인다. 살갗에 닿는 감각처럼 사유의 흐름 곁을 거닐도록 이끈다. 이러한 번역서가 있다는 것에 실로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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