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 이창동

눈오는 날 첩첩산중 산길을 지나 한 아가씨가 군인을 면회온다.  하지만, 그 군인은 바로 전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군인은 군대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한 고문관이었다.  하지만, 눈치가 없거나 머리가 나빠서 사고를 치는 고문관이라기 보다는 냉정한 군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착한 대학생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아버지의 신고로 군대에 들어온 대학생이다. 

군대라는 곳은 정직하고 착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배려를 해 주는 곳이라기 보다는, 강한자를 중심 서열이 매겨지고 약자가 무시되는 사회이다.  이런 곳에서는 결과를 위해서 요령이 중요시되고, 과정은 철저하게 무시되어도 된다.  어쩌면, 사회의 대부분이 이런 군대 사회를 많이 닮은 형태를 띄고 있을 수도 있다.

대학생은 전날 요령 있는 어린 고참과 함께 보초 근무를 서고 있었다.  요령있는 어린 고참은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에 자기를 위해서는 기꺼이 남을 해칠 수 있는 무서운 가치관을 터득한 사람이다.  둘이 보초를 서는 날 사고는 한 술 취한 민간인이 철조망에 걸리면서 일어난다.  요령있는 어린 고참은 술 취한 민간인이라도 쏘아서 자신의 전과를 올리고, 포상을 받으려고 한다.  착한 대학생은 이를 반대하려고 고참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만 오발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요령있는 고참의 섬찟한 판단은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한 단편이다. 남이 보고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해쳐서라도 내가 잘 되고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단순한 정도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서 라도 내가 잘 되고 보겠다는 생각이다. 현대 사회에서 경쟁심리를 부추기다 보면 이런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주장하는 의견을 접하게 된다.  나름 그럴듯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측면도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배려의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복지, 노인 공경, 장애인 복지, 여성 우선 주의 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가치관에서 나온 원칙인 것이다. 지나친 결과 우선 주의,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쉽게 놓쳐 버릴 수 있는 배려의 가치관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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