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로받고 싶다 - 나와 타인을 위로하는 심리치유 에세이
이름트라우트 타르 지음, 김태영 옮김 / 펼침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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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전에 빌려서 먼저 읽었던 책이다. '나와 타인을 위로하는 심리치료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심리치료관련 책들을 둘러보다 괜찮은 주제, 내가 요즘 관심있고 필요한 주제인거 같아서 도서관에 신청했더니 바로 사줬던 책. 그리고 이달의 읽을만한 책에 오른책이다!! 우하하

저자는 이름트라우트 타르라는 특이한 이름? 이름이 이름? 뭐야 이런 말도 안되는 개그ㅋㅋ. 암튼 독일의 심리학 박사이자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있고 이밖에도 여러권의 삶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다.

2주전에 읽어서 이글을 쓰는 순간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쓰면서 더듬어 가려고 한다. 처음부분에 챕터는 '위로' 라는 주제로 약간 뻔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것 같았지만, 차차 위로하는 법 배우기, 위로의 몸짓, 위로의 동반자들, 스스로 위로하기 라는 챕터를 읽어나가면서 아주 쉽고 짧은 호흡으로 쓰여진 가벼운 책이지만, 심리치료사로서의 타인을 위로해왔던 경험이 담겨있는 깊이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읽는 데도 몇시간 걸리지 않았고, 집중도 잘되고 주제도 짧게 짧게 나눠져있어서 읽기 편해서 부제 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 혹은 누구를 위로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할 수 있을 만한 책인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첫사랑을 생각했다. 그녀는 위로하는 법에서 나온 온갖 테크닉을 익히고 있었다. 사실 위로라는게 정말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에서 많이 부닥치고 해결해야하는 장면인데, 때로 자기 자신에만 갇혀서 타인과의 관계가 서툴러서, 타인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해주고 위로한답시고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그렇지 않고 성숙한 위로를 보여줬다. 책을 읽으면서 '그래 이런 부분 때문에 그녀에게 큰 위로를 받았었지', '그래서 그녀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사랑에 열병에 휩싸였었지' 하면서 읽었다.

성숙한 위로? 상대를 이해하는 위로? 는 책을 읽어보면 대단한 심리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 때로는 뭔가 상대에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적이고 섯부른 생각없이 공감하고 침묵해주기, '필요할때 연락해' 라며 정말 누군가에게 필요하는게 부담되고, 필요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사람의 옆에 같이 있어주기 같은...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만 갖고 있으면 되는 그런 위로가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하는게 기억난다. 구체적인 기술은 기억이 안남-_-;;

챕터 5번째 '위로의 동반자들'의 다음장 챕터6의 '스스로 위로하기' 라는 장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국 치료의 최종목표는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탱하고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라는 식의 말을. 타인의 위로, 위로의 도움이 되는 여러 도구나 존재들 역시 좋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혹은 언제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건 자신이라는 것이다. 다른 존재에 지나치게 의지의 위로를 했다가는 오히려 그것에 대한 집착때문에 더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녀에게 너무 의지에서, 오히려 고마움을 표현해 주기는 커녕 나와 그녀를 상처입혔다.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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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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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에서 창조론 혹은 지적설계론을 까기 위한 부분에서 굴드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부분이 흥미로워서 더 알아 보고 싶어서 읽은 책.그책에서 굴드가 언급되는 것은 자세히는 기억안나지만, 생명의 시간을 뒤로 되돌려도 지금과 같은 결과가 생기지않을 것이다(진화란 인간이란 생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식이였던걸로 기억난다. 책 읽기전에 이런 말을 들었는데,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라는 말.

이제까지 읽었던 "본격적" 진화생물학 책이라곤 '이타적 유전자' 하나. 그밖에는 주로 철학vs사회생물학 같은 대결구도에서 주로 진화생물학(이나 사회생물학)의 주장이 가진 철학적인 오류나 한계나 문제점 등 그런걸 비판하는 책들이 전부였고. 그밖에는 그냥 보조적인 도구로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과학서적. 그래서 언젠가 제대로 읽어보려고 생각했었고 그 시작점이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 하우스다 이책이 왠지 재미있어 보여서.

책을 처음 보면서 부터 중간까지 이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풀 하우스라는 용어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포커 아는 사람한테(포커에서 따왔다고 한다) 물어보니 같은 카드3장+같은 카드2장이면 풀하우스라고..뭥미 알 수 없었는데 책을 끝까지 읽고나니 대충 이해가 간다. 주로 '생명의 변이 전체' 라던가, '생명 전체' 등등 단순히 하나의 조각이 아니라 전체속에서의 한 부분을 의미할때(다른 4장의 카드와의 관계가 아니면 풀하우스가 되지 않으니), 혹은 그런 전체성에서의 이해를 해야지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 같다.

책을 읽고나니, 이책에서 주장하는 처음에도 말했지만,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점점 진화해서 파충류가 되고 또 포유류가 되고 그리고 그런 사다리 오르기식 진화의 도식 맨 정점에 우리 인류까지 그려진 그림을 누구나 한번쯤은 봤으리라고 생각한다. 굴드는 이런 도식이 '전체 생물의 변이' 를 고려하지 않고, 어떤 한쪽만 떼어내서 저지른 오류라고 비판한다. 

이쯤해서 저 위의 문장의 두번째 말이 나오는것이다. '진화는 다양성의 증가다'. 생물 전체를 염두해 두고 보자면, 생명의 역사나 진화 안에 진보를 향한, 더복잡해지고 정교지려는 경향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 인간이나 동물들 그밖에 다양한 복잡한 생물들은 진화라는 우연에 의해서 생겨난, 생명의 전체 지도에서(단순한 분류는 물론이고 숫자나, 양이나 부피까지 포함해서) 보면 생명이라는 큰 나무의 한 가지의 끝에서 작게 갈라진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진화가 진보가 이나라 단순히 다양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살펴보면, 흔히 생각하기에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그리고 인간까지 진화한 생명체가 있지 않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실은 생명체 전체적를 두고 봤을때 점점 진보하려는 경향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그러한 오해에는 우연에 의해서 극히 일부만 생겨난 생명체들만 떼어놓고, 그걸두고 생명체 전체를 이해하는데 생긴 오류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다. 
 
잘 몰라서 그런지 쓰다보니 너무 말이 어렵다. 하지만 그의 책은 정말 쉽다!! 이책은 전문적인 학술서적이 아니라 대중을 향해 쓰여진 서적이라고 밝히고, 굴드도 쉽게 설명하겠다고 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워 보이는데. 그런 그의 노력에 의해서 인지 이책은 정말이지 지루한 부분도 별로 없고, 너무 난해해서 어려운 부분도 없고 이책의 중심이 되는 주장에 근거가 되는 여러 논리나 비판되는 부분을 설명하는 것까지 차근차근 정말 친절하게 쓰여져있다.

아직은 이책의 핵심 주장을 말하는데서 서평을 마무리하지만, 사실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큰 주장이었던것 같다. 이제부터 굴드의 다른 책들과 다른 진화생물학자들의 책을 읽어볼 계획이다. 다음은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어볼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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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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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그는, "봐라 이것만 봐도 종교는 인간이 만든것이 아닌가" 라고 여러번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 다른 리뷰들이 말하듯이, 종교를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 종교에 의해서" 온갖 악행들을 벌이고 상식과 어긋나고 시대에 안맞는 짓들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밝히고 있다.

어떤 이는 "일부 종파" 에 한정된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종교에 대한 그의 이해를 따라가보면 다른 종파들 역시 거기서 거기인거다.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같다는 의미다. 예를들어 어떤 과학적이거나 의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종교가 자신들의 신념이나 경전에 쓰인말을 통해서만 해석한다고 치자. 얼마나 큰 문제가 일어나겠는가? 그러면서 에이즈 치료제를 에이즈 자체보다 나쁜 것이라고 설파하는 종교들이라던가, 어떤 병은 신의 벌이라고하면서(동성애자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그 병을 예방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종교들이 있다. 과학이나 의학적인 분야에서뿐만이 아니라, 상식적인 세계나, 사회적인 문제나 심지어 음식같은 가까운 부분에서까지 종교들은 "자신들의 신념"에만 근거해서 판단을 내린다. 사실 그러한 종교의 교리나 경전의 내용은, 특수한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정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말이다.

어쨌든 그들 예를들었던 종파나, 심지어는 그냥 단순히 종파라고 치부할 수 없는 카톨릭 교황이라던가 하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어쨌든 비판의 논지는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경험에만, 자신들의 교리에만, 자신들의 경전에 적힌 내용에만 광신적으로 믿을 경우 온갖 사회적, 의학적, 인간적인 문제들이 생겨난다고 하면서 묻는다, 종교는 인간을 선하게 하는가? 종교가 인간을 건강하게 하는가? 종교는 아동학대인가? 종교는 생명을 살리는가? 등등의 질문들 말이다. 대답은 "그렇다" 이다. 혹시나 자기가 속한 종교나 혹은 교파는 그들 질문은 하나에 비껴나간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비판은 유효하다. 왜냐하면 그의 말의 핵심은 종교가 "자기 자신에 갇혀서", 무슨 잘못이해하고 종교에 빠진 사이비나 이성을 잃은 광신론자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이, 그리고 더욱 종교에 독실할 수록 더욱 더 쉽게 그런 잘못들을 저지르고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종교의 본질 중 하나라고 하는 비판에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온갖 금기들, 인종차별과 성차별과 그밖에 온갖 차별들, 자기 자신만 아는 사악함 등등 이런짓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종교의 본질 자체가,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온갖 세상일에 대한 해답을 다 마련해놓고 "살아있는 현실", "살아있는 사람" 을 수천년전에 만들어진 경전이나 교리에 꾸겨넣는데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일을 정말 순수하고 순진하게. 자기가 절대적인 선을 행한다는 명목하게, 신의 이름하게 해왔고 하고 있다는 것!!

'종교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 이라던가, '진화론대 창조론(지적설계론)' 등은 각각 종교사학자나 생물학자들이 더 잘 아는 이야기들이다. 종교는 인간에 의해서, 그리고 역사적이고 어떤 국지적인 지역이라는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온갖 종교들은 자신들이 '신에 의해서 계시를 받아서 그걸 적은게 경전' 이라고 하지만, 그 경전의 내용이나, 그 계시를 받았던 사람이 살았던 시대나 사회등을 살펴보면 뚜렷하게 보인다. 종교란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더이상 할말이 있을까?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위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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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을 찾아서 홍신사상신서 35
크리슈나무르티 / 홍신문화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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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무르티와 처음 만났던 책입니다. 그의 책 'The First and Last Freedom', 'The Matter of Culture', 'Life Ahead' 세권을 잘 추려내서 편집한 책(The Penguin Krishinamurti Reader)을 한글로 옮긴 책입니다.

3부로 이루어져있는데, 1부에서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인생의 여러 부분, 여러 모습에 대해서 말해주는데, 그는 자신의 강연이나 글을 다른 이른바 스승이나, 철학자 등의 읽기와 듣기와는 전혀 다른 식으로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그의 인생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는 권위의 위험성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책이나 강연역시 단순히 받아들이고, 설득되고 감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삶의 여러 부분을 그 어떤 권위나, 과거(즉 기억, 그 기억의 반응인 일반적인 '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깨어있는 마음으로 관찰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삶 자체가 아닌 2차적이고 가공적이며, 실체를 가르키고 단순화 시킨 개념과 말 속에 갇혀서 읽으면 읽을 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점점 진실과는 멀어지게 되니 그의 요구는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또 2부에서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라는 제목을 달고, 젊은이들에게 1부보다 더 쉬운 언어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3부는 질문과 그에 대한 크리슈나무르티의 대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통찰은 놀라운 데가 있습니다. 어떠한 권위나, 지식등으로도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말은 단순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는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러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통찰에 참여해야만 이러한 대화와, 책 읽기가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책 내내 강조합니다. 어쩌면 평생 그것만을 강조했다고 해도 좋을 것 같군요.

어쨋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해서 처음 알고 싶거나, 그의 사상의 핵심에 대해 파악하고 싶으 신께 이책을 추천합니다. 이 책이 제일 나은것 같더군요. 이 책의 원본이 되는 책들도 워낙 최고의 책인데다가, 그 중요한 부분만 편집한 책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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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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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의 입문서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대학에서의 강의라는 점 때문에 굉장히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하며 풀어나가고 있는데에, 또한 신화의 의미나, 신화 자체에 대해 굉장한 깊이 까지 파고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이책은 그러한 입문적인 역활을 하는 성격에 맞게, 차근차근 신화속으로 나아갑니다.

우선 신화적인 사고라고 할까, 신화의 논리 혹은 '야생적 사고'라고 하는 지금의 현대인은 이해하기 굉장히 어렵고, 비밀스럽고, 또 도대체 난해해서 거의 무의미하다고 치부해버리고 있는 것 속에 담긴 '야생의 사고', 혹은 신화적인 사고의 놀랄만큼(정말 읽다가 놀랐습니다;) 예민한 관찰하고, 직관적인 통찰력이 담겨있는 그 신화의 사고의 특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잘 모르고 있으면 보통은 그냥 넘어가는 신화속에서 인물의 자잘한 특성이랄까, 특이한 내용, 또한 동물이나 식물들 따위에도 전혀 무의미하고, 우연히 전택된게 아니라 신화가 의도하는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야기에 잘 담아내기 위해서 골랐서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식의로 신화적인 사고(야생적 사고)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특성, 또한 신화 자체의 의미 등에 대해서 몰입해서 읽고 나면 저자가 주장하고, 또 책의 제목이기도한 신화가 인류 최고의 철학이라는 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마지막에 역자가 자신이 대학1학년때 이 강의를 들었다면 신화학도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말을 합니다. 그만큼 신화의 매력과 핵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낸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위에서도 말했듯이 신화의 깊은 맛에 대해서, 신화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려는 마음이 있는 분께 정말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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