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 홍신 세계문학 2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등장인물이 심상치 않았다. 병원 원장인 게이조의 아내 나쓰에는 안과 의사 무라이와 외도 직전이고, 무라이의 유혹에 흔들리던 그 순간 딸 루리코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게이조는 아내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루리코 살해범의 1개월된 여아를 입양한다. 물론 아내에게 입양아의 과거는 비밀. 게이조를 몰래 짝사랑하는 병원 여사무원 유카코는 게이조에게 '원장님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게이조의 아들 도루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입양된 여동생 요코를 사랑하는가 하면, 도루의 친구 기다하라도 요코를 사랑하게 되면서 묘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그 밖에도 대학 시절 나쓰에를 사랑했던 게이조의 절친한 친구 다카키, 나쓰에의 친구인 매력적인 무용수 다쓰코는 등장인물의 복잡한 사연에 예측할 수 없게 얽혀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꼭, 욕 먹으면서 시청률 높은 3류 드라마같다고 할까? 각 인물이 드러내는 욕망과 사랑, 증오의 감정은 무슨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불쾌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우선은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빙점(氷點). 즉, 어는점을 말한다. 물의 어는점은 0℃. 아무리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어도 0℃보다 0.000....0001℃만 높아도 물은 얼지 않는다. 오직 0℃에 도달했을 때에 물은 얼기 시작한다. 소설에서 말하는 빙점은 '물의 빙점'이 아닌 '마음의 빙점'이다. 어떤 고통과 시련도 꿋꿋하게 견뎌내던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얼어붙게 되는지. 강인하게 살아가려던 한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꺾여지는지.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누군가를 증오할 때에도 언제나.
작품 속 인물들은 때론 서로 사랑하고 때론 증오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증오의 씨앗은 오해에서 비롯되기 일쑤이고, 그들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속삭이는 것은 상대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치우치곤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를 입에 달고 다니고 아내의 간통을 확신하며 괴로워하는 게이조이지만,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요코의 모습에서 욕정을 느끼기도 한다. 나쓰에는 무라이, 기다하라에게 품는 마음의 정체가 결국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받기 위함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요코를 사랑하는 도루의 마음은 어떠한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확신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요코뿐'이 아닐까? 요코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로 가늠질하는 그의 모습은 이기적이기까지하다. 무라이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게이조를 헌신적으로 짝사랑하는 유카코와는 달리, 무라이는 노골적으로 나쓰에에게 접근한다.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그의 경솔한 태도는 '사랑'보다는 '욕망'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러한 그들의 사랑과 증오의 감정은 요코의 빙점인 '잠재된 죄악성'을 향해 치닫는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죄없는 존재임을 자신할 수 있는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죄있는 우리가 누군가를 '감히' 증오할 수 있는가.

앞서, 빙점은 어는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가지 의미가 더 있다. 빙점, 그것은 '녹는점'이기도 하다. 얼어붙은 한사람의 마음을 우린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소설의 끝부분이 'to be continued....'의 느낌을 준다 했더니 [속빙점]이 있단다. 본작이 인간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빙점을 이야기하다면, [속빙점]에서는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용서하는 마음과 새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소망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빙점]만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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