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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편지 (어나더커버 특별판, 양장)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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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네이버 웹툰에서 봤었다. 십대 감성에 어울릴 만화같아서 -삼십대 후반 아저씨인 나는- 관심이 없었는데, 너무도 예쁜 그림에 무심코 첫화를 열었다가 매주 기다리는 팬이 됐었다. 책을 받아들고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었다. 울컥하는 감정이 따스하고 작가님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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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츠 USB 메모리 3.0 - (128GB)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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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피너츠 캐릭터를 무척 좋아했더랬는데, 무척 맘에 든다. 39살 아저씨의 지갑을 열게했으면 할말 다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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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만한 책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4년 11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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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택광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1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14년 11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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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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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겨울, 한 노숙자가 지하철역 출구 통로에서 동사했다. CCTV에 찍힌 영상에는 역무원과 그의 곁을 지나쳐가는 여러 행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가끔 뒤돌아보듯 그에게 눈길을 던지는 행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못보았다는 듯 무심하게 그의 앞을 지나쳐갔다. 혹한에 떨었을 노숙자, 이른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이 활기를 찾아갈 무렵 그는 죽은 체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어느 한 구석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목에 있던 그는 왜 죽음을 맞이했어야만 했는가. 왜 아무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았나. 이와 같은 현상을 '방관자 효과' 혹은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칭한다.
제노비스. 1964년 살해당한 한 여인의 이름.
이 책은 그녀의 죽음을 재구성하고 있다.

한 여자가 30분 넘게 살인범에게 쫓기며 칼에 찔리는 동안 서른여덟 명의 퀸즈 구역 주민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갠스버그의 기사 中)

캐서린 키티 제노비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강간, 살해당한다. 범인은 사건 발생 십여일만에 체포된다. 범인은 순순히 벙햄을 자백했고 사건은 순조롭게 종료되어갔다. 키티의 죽음은 '흉악 범죄'의 한 사례로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질 터였다. 하지만 사건의 상세한 내막을 알고 있었던 경찰서장은 평소 친분관계를 맺고 있던 언론사 편집장에게 '또 다른 진실'에 대한 운을 띠운다. 그날 밤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해.

서른여덟 명의 목격자.
경찰은 사건의 정황을 시간대별로 -그래봤자 삼십여분이지만- 정확하게 재구성해냈다. 범인과 피해자 키티 제노비스의 동선 하나하나까지 말이다. 키티의 동선은 범인의 자백만으로는 정확하게 추리해낼 수 없을 터. 이는 모두 목격자의 진술로써 가능했다.
범인이 처음 키티를 공격했을 때, 그녀의 비명소리는 여러 동네주민을 깨웠다. 여러 집에 불이 켜졌고, 한 주민은 창문을 열어 범인에게 고함을 질렀다. 범인은 도망쳤고 혼자 남은 키티는 비척비척 일어나 집쪽으로 달아났다. 그녀가 범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떤 도움의 손길도 없었다. 과다출혈로 지친 키티는 아파트 입구에 쓰러졌고, 범인은 '일을 마저 끝내기 위해' 돌아왔다. 처음엔 주민들의 반응에 겁을 먹었던 범인은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을 것이다.'
키티의 비명은 다시 울려퍼졌다. 하지만 범인이 옳았다.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범인이 일을 해치우고 자리를 떠서야 한 주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도착했다. 키티는 병원으로 후송 중 사망했다.

목격자들은 어둠 때문에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밖의 비명소리를 단순히 사랑싸움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일까. 적어도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남자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다. 한 증인은 내려가 보려는 남편을 말렸음을 시인했다. 한 여인은 밖의 추위가 싫어서 창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고 했고, 한 남자는 비명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고 했다.
그들은 밖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인간심리의 새로운 측면을 제시했다. 과연 제노비스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불행한 사건일 뿐일까? 아니면 목격자들의 심리상태는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일까? 컬럼비아 대학의 빕 라타네 교수와 뉴욕 대학의 존 달리 교수의 실험은 후자를 지지한다. 그들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긴급한 상황이 발생시 목격자가 많을수록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라타네와 달리 교수는 그들의 실험을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긴급 상황에 목격자가 단 한 명만 있을 때는 개입해야 할 책임감을 갖게 되지만 다른 목격자가 있을 경우에는 책임이 분산된다.'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참 암울한 결론이지 않을 수 없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하지만 저자가 우리에게 '제노비스 사건'을 들려주는 이유는 이러한 허탈감을 안겨주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부정하겠지만 '방관자 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한 속성이다. 하지만 자각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우리는 그를 무시할 것이다. 우리 또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허탈감을 털어낼 수 없다면 또 다른 희망을 하나 제시하겠다. 우리가 방관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키티 제노비스가 폭행을 당했던 그날, 경찰을 부른 단 한사람. 가냘프고 작은 체구의 여자 소피 패레르. 그녀는 사건 현장을 목격한 이웃 주민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아직 범인이 칼을 들고 현장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키티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뛰쳐 내려갔다. 그녀의 도움은 너무 늦은 것이었지만 -너무 빨랐어도 그녀 또한 범인의 희생양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행동은 서른여덟 명의 목격자와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잇다.
그것은 희망이다. 우리 안에 잠재한 방관자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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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홍신 세계문학 2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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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등장인물이 심상치 않았다. 병원 원장인 게이조의 아내 나쓰에는 안과 의사 무라이와 외도 직전이고, 무라이의 유혹에 흔들리던 그 순간 딸 루리코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게이조는 아내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루리코 살해범의 1개월된 여아를 입양한다. 물론 아내에게 입양아의 과거는 비밀. 게이조를 몰래 짝사랑하는 병원 여사무원 유카코는 게이조에게 '원장님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게이조의 아들 도루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입양된 여동생 요코를 사랑하는가 하면, 도루의 친구 기다하라도 요코를 사랑하게 되면서 묘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그 밖에도 대학 시절 나쓰에를 사랑했던 게이조의 절친한 친구 다카키, 나쓰에의 친구인 매력적인 무용수 다쓰코는 등장인물의 복잡한 사연에 예측할 수 없게 얽혀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꼭, 욕 먹으면서 시청률 높은 3류 드라마같다고 할까? 각 인물이 드러내는 욕망과 사랑, 증오의 감정은 무슨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불쾌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우선은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빙점(氷點). 즉, 어는점을 말한다. 물의 어는점은 0℃. 아무리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어도 0℃보다 0.000....0001℃만 높아도 물은 얼지 않는다. 오직 0℃에 도달했을 때에 물은 얼기 시작한다. 소설에서 말하는 빙점은 '물의 빙점'이 아닌 '마음의 빙점'이다. 어떤 고통과 시련도 꿋꿋하게 견뎌내던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얼어붙게 되는지. 강인하게 살아가려던 한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꺾여지는지.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누군가를 증오할 때에도 언제나.
작품 속 인물들은 때론 서로 사랑하고 때론 증오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증오의 씨앗은 오해에서 비롯되기 일쑤이고, 그들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속삭이는 것은 상대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치우치곤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를 입에 달고 다니고 아내의 간통을 확신하며 괴로워하는 게이조이지만,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요코의 모습에서 욕정을 느끼기도 한다. 나쓰에는 무라이, 기다하라에게 품는 마음의 정체가 결국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받기 위함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요코를 사랑하는 도루의 마음은 어떠한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확신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요코뿐'이 아닐까? 요코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로 가늠질하는 그의 모습은 이기적이기까지하다. 무라이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게이조를 헌신적으로 짝사랑하는 유카코와는 달리, 무라이는 노골적으로 나쓰에에게 접근한다.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그의 경솔한 태도는 '사랑'보다는 '욕망'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러한 그들의 사랑과 증오의 감정은 요코의 빙점인 '잠재된 죄악성'을 향해 치닫는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죄없는 존재임을 자신할 수 있는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죄있는 우리가 누군가를 '감히' 증오할 수 있는가.

앞서, 빙점은 어는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가지 의미가 더 있다. 빙점, 그것은 '녹는점'이기도 하다. 얼어붙은 한사람의 마음을 우린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소설의 끝부분이 'to be continued....'의 느낌을 준다 했더니 [속빙점]이 있단다. 본작이 인간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빙점을 이야기하다면, [속빙점]에서는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용서하는 마음과 새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소망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빙점]만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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