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송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평점 :
카프카의 작품은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다. 그레고리 잠자를 이유도 없이 거대한 벌레로 '변신'시키고-[변신]- 측량기사로 임명한 K를 정작 '성'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처럼-[성]-, 이번엔 요제프 K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소송을 건다.
서른의 나이로 은행 차장에 오를만큼 성공가로를 걷던 요제프 K는 그의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갑작스럽게 체포된다. 직장 동료들의 짓궂은 장난 정도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던 요제프는 심리가 진행되고 자신의 소송건을 알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점차 소송건에 집착하게 된다. 숙부가 소개시켜 준 변호사, 은행 고객의 소개로 찾아간 화가, 변호사 집에서 만난 또 다른 의뢰인. 소송을 원활하게 해결하려는 요제프의 노력은 별 소용이 없다. 소송이 제기된 이유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누가 소송을 걸었는지, 그의 죄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비단 요제프만이 아니다. 그가 만난 다른 피고소인들도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 모르기는 매한가지이다. 불공정한 법원을 향한 항의도,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도 무용했을까. 서른한 번째 생일날 저녁 요제프 K가 즉결처형 받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은 무척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이유 없는 체포, 빈민들을 위한 임대 거축 꼭대기층에 위치한 법정, 법원 사무처의 기묘한 분위기, 의뢰인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변호사, 그런 변호사의 집에 기거하는 의뢰인, 화가의 방과 연결된 또 다른 법원 사무처, 고객의 관광안내를 위해 찾아간 대성당에서 만난 교도소 신부 등. 요제프를 둘러싼 소송은 법정이라는 거대 권력의 횡포를 드러내는듯 하면서도 한편으론 요제프만 모르게 진행되는 한바탕 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더 게임'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연극이 주인공을 구원하기 위한 동생의 연출이었다면 [소송]의 연극은 주인공 요제프를 파멸시키기 위한 거대 권력의 음모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다.-요제프 한사람을 파멸시키기 위한 연극치고는 좀 거창하긴 하지만-
요제프의 죄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요제프 자신과 변호사, 그를 체포한 감시인과 감독관 등 아무도 소송의 진상을 모른다. 요제프의 첫 심리를 맡은 예심 판사조차도 그의 죄목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요제프의 직업도 엉뚱하게 알고 있는 처지에 무엇인들 제대로 알겠는가?- 그의 죄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가?
그를 심문하는 법정은 확실히 권위적이고 불합리하게 비친다. '법원의 서열과 진급 체계는 끝이 없어서 그 세계를 잘 안다는 사람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이고, 어떠한 불만 사항이 있더라도 '법원에 어떤 개선할 점을 제의한다거나 관철시키려 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변호사는 이와 같이 얘기하면서 '눈 앞의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늘 보복의 길을 찾고 있는 관리들의 각별한 주의를' 끌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제조업자의 소개로 찾아간 화가나 변호사 집에서 만난 한 의뢰인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정은 피고인의 입장에서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이다. 피고인의 싸움은 가망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가 도움받을 가능성도 마땅찮아 보인다. 요제프가 선임한 변호사는 자신의 능력과 과거의 성과를 자랑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소송 해결 방법은 '판사와의 개인적 유대 관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패소시의 자기 변명을 위해서인지- 수많은 변수를 언급하면서 불확실성을 내비친다. 제조업자의 조언으로 찾아간 화가도 크게 다르지 않는다. 법원 화가로 일하면서 판사 초상화를 그리는 그 또한 판사와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지만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그가 제시하는 구제법은 소송의 무효화가 아니다. 무효화 자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종적 판결의 '지연' 뿐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렇다면, 요제프는 정말 무죄인걸까? 법원의 호출을 받을 만한 잘못은 소설상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성당에서 교도소 신부와의 대화는 인간의 '원죄'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죄. 이미 지은 죄와 앞으로 지을 죄를 모두 포함하는, 인간 내면에 잠재한 악의 가능성. 너무 멀리 갔나? 하지만 요제프가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법원 정리 아내의 유혹에 흔들리고, 숙부의 권고로 찾아간 변호사의 집에선 숙부, 변호사, 사무처장을 남겨두고 시중드는 아가씨와 노닥거린다. 소송에 집착하는 나머지 자신을 찾아온 은행 고객들을 홀대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쉽사리 경멸한다. 이러한 태도가 그의 죄와 직결된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의 불안정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해답은 없을 것이다. 법원의 정체, 요제프의 죄, 갑작스러운 처형까지. 그로테스크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수많은 물음표를 던져주며 끝이 난다. 어쩌면 카프카 자신이 묻고 싶었는지 모른다. 부조리라면 부조리고 불완전성이라면 불완전성이라 할 수 있는, 사회와 한 개인의 관계와 갈등을. 그가 느꼈을 혼돈은 소설에 고스란히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