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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머니는 마귀 할멈 ㅣ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10
제임스 하우 글, 멜리사 스위트 그림, 김영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저녁마다 큰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와 생각 끝에 마음 먹은 것이다.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이런 저런 얘기를하게 되고 공통의 화제도 되어 이제는 서로에게 아주 귀중한 일과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다. 큰 애 밑으로 쌍둥이가 있는 데, 내가 큰 애와 같이 책을 읽는 동안, 나 대신 쌍둥이와 씨름하는 어머니가 늘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큰 애와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도 않으니 입은 책을 읽고 있어도 마음은 가시 방석이다.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불편한 때면 책 읽는 일이 더욱 쉽지가 않다. 어린이 날이었다. 그 날 따라 어머니가 강남쪽에 결혼식이 있다고 애들 아빠에게 차로 태워다 달라고 부탁하시는 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린이 날인지라 우리는 이미 언니네랑 놀러 가기로 약속이 되 있었다. 어쨌거나 아침을 차려먹고 나는 머리가 아파 잠시 누워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그걸 내가 토라져서 그런 걸로 오해하신거다. 사실 지하철 타고 다녀오시면 되지 이런 날 꼭 모셔다 드려야 하는 건가 하는 원망도 없진 않았다. 물론 웃는 얼굴로 걱정 말라며 어머니는 서둘러 떠나셨고, 나도 극구 만류는 했지만 서로에게 마음의 부담만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결혼식에 다녀 오신 후로 안색이 편치 않아 보였다. 친구들이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에 며느리 살이 하는 데 뭐가 그리 좋을라고 말했다며 한 말씀 하시는데,내 좁은 마음이 홱 틀어진다. 반발심과 자유를 향한 열망이 뒤섞여 며칠 간 끙끙거렸다. 그러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며칠 간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이 책 <옆집 할머니는 마귀 할멈>이다. 자기 집 정원에 실수로 넘어온 공을 돌려주기는커녕, 다시 또 그러면 경찰에 신고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빗자루를 휘둘러대는 심술쟁이 옆집 할머니에게 아이들은 복수를 하기로 한다. '복귄에 당첨되었다고 거짓 전화를 해서 놀려주자,'모건 할머니는 마귀 할멈'이라고 포스터를 써 붙이자' 등등.아이들이 온갖 복수 방법을 얘기 하는 대목에서 우리 애는 키득키득 우스워 어쩔 줄 모른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모건 할머니 집 우체통에 끈끈이 풀을 묻혀 놓기로 작전을 세우고 핑키가 대표로 그 집에 몰래 기어들어간다. 집 안을 탐색하다 핑키는 모건 할머니가 컴컴한 방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기분이 이상해진 핑키는 끈끈이 풀을 묻혀 놓지 못한 채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그 날 저녁 핑키는 아빠와 함께 쿠키를 만들다 할머니가 남편을 일찍 잃고 아이도 없이 혼자 살다 보니 아마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려 그럴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핑키는 다음 날 새로운 복수 방법을 생각했다며, 아이들을 끌고 모건 할머니의 집으로 가 당당하게 초인종을 누른다. 경찰에 신고 하겠다고 노발대발하며 나온 할머니에게, 핑키는 불쑥 쿠키를 내민다.할머니는 얼떨결에 쿠키를 받아 들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냥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다음 날 아이들이 그 집에 넘어간 공을 주우러 갔을 때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핑키는 사랑의 쿠키를 또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난 문득 '아, 나도 어머니께 뭔가 쿠키 같은 선물을 해드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어머니가 빼곡히 방을 들여다 보시더니 불쑥 까만 비닐 봉지를 내미신다, 마치 핑키처럼. '입어 봐라.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하나 샀다.'하시는 거다. 순간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 어머니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얼떨결에 봉지를 받아든 나는 마치 모건 할머니가 된 것처럼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그렇듯 사랑과 용서의 쿠키를 먼저 만드신 게다. 아! 문득 눈을 반짝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아이를 나는 벌게진 얼굴로 바라본다.함께 책읽기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