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이야기 - 관세음보살본행경
정찬주 옮겨 엮음 / 해들누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관세음보살 이야기[관세음보살본행경] 

 예전부터 오래된 전래동화처럼 들었던 관세음보살에 대한 궁금증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아마 불교에 관심이 있고 믿는 이라면 관세음보살이라며 간절하게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가끔 심한 폭풍우가 밀려드는 갑판 뱃머리에서, 혹은 천 길 낭떠러지 벼랑 앞에서 의식이 어떠한 판가름을 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이 관세음보살을 애타게 찾고 있다.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이 나 투시는 모습을 상상해가면서 말이다. 나만 그러할까. 그러나 애끊는 심정, 무엇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심정, 그 심정이 되어본 사람은 쉽게 웃어넘기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펼쳐질 내용이 궁금했다. 편한 소설책처럼 읽어지는데, 가볍게 책을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적당한 부담감이 함께 존재하였다. 삶에 대한 평가, 아니 지금 나의 삶의 대한 질문을 해대는 것 같아서 많은 생각이 한 페이지에 머물렀다가 다음 페이지로 넘겨졌다. 묘선 공주. 부처님처럼 왕족출신으로 태어났으나, 굳이 불제자의 길을 고집한다. 유독 어여삐 여긴 묘장왕(묘선공주 아버지)과의 심한 마찰, 삼보에 대한 묘장왕의 어긋난 행동과 결과론적인 병마, 그러나 결국 묘선공주의 두 눈과 두 손으로 다시 태어난 묘장왕, 그 묘장왕 역시 묘선공주의 인도를 받고 불도의 길을 가게 된다는 조금은 전래동화와 같은 권선징악의 면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불제자라면 전설이야기라며 한곳으로 물려두기보다는 책을 덮는 순간 자신의 거울을 보게 될 것 같다. 그 거울 앞에서 정녕 바른길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지, 자비로움을 몸소 행하려 애쓰는지를 찬찬히 되묻는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메고 히말라야를 백번 천 번 돌아 살갗이 터지고
뼈가 부서진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하여 백 자루의 칼로 자기 몸을 쑤시며
천 겁을 지낸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는 미칠 수 없다.
또 부모를 위해 자기 몸을 불에 사르기를 억만 겁 할지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는 미칠 수 없다.

 ‘부모은중경’이라는 경전을 조금 들은 적이 있다. 부모은혜에 대한 경전. 무엇으로 내 몸을 주신 부모의 은혜와 비교할 수 있을까. 불제자가 아니어도 부모은혜에 대해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그 마음만큼은 높고 낮음 없이 매 한 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밥숟가락 넘기는 일이 어렵다고, 내 마음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 은혜 가벼이 여겨 쉬이 돌아서는 순간. 분명 내게도 있었다. 그랬기에 이 책에서 이 글을 읽는 순간 한없이 마음이 괴로웠다. 아니 힘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대해 힘들었다. 이젠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이 가벼워지기 위해서라도, 내 발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내 마음을 이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법정스님은 마음을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했는데, 매번 마음을 따르는 어리석음을 이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해보았다.

  보살은 평등한 마음으로 자기가 지닌 물건을 남김없이 모든 중생에게 널리 베푼다.
베풀고 나서 뉘우치거나 아까워하거나 대가를 바라거나 명예를 구하거나 자기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이롭게 할 뿐이다.
몸소 성인들이 쌓은 행을 배우고 생각하고 좋아하며
몸소 실천하고 남에게 말하며, 중생에게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마음이옵나이다.

  삼보를 인정하지 않는 묘장왕에게 묘선공주가 한 이야기이다. 자비. 아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비”라는 단어가 아닌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었으리라 예상된다. 불교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 자비라면 교회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 바로 사랑이라는 말이 아닐까. 불제자든 교인이든 그 시작은 바로 자비와, 사랑. 기본적인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형태를 달리하고 색깔을 달리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으로 향해있다. 따스함과 배려라는 이름을 빌리기도 하고, 나눔이라는 모습을 가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하고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는 삶이란 결코 몇 줄의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그 길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다가 떠나고 싶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음이 아닐까. 그 희망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이 책을 덮으며 내게 차분하게 되물어온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고는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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