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법정 잠언집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카페개설과 함께 읽기 시작한, 아니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읽어주었다는 것이 더욱 어울릴 듯싶다. 하여간 카페의 한구석에 책 읽는 마당을 펼쳐놓고 혼자서 책을 읽었다.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때론 숨죽이는 소리로, 가끔은 정곡을 찌르는 법정스님의 혼쭐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그머니 읽어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읽던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다 행복하라.”라는 책이 드디어 끝이 났다. 2006년 3월 3일에 시작해서 2006년 12월 14일까지 약 280여 일이나 걸렸다. 책을 한 권 읽는데 이 정도 걸렸다고 어디 가서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부끄러워서 말이다.

 굳이 다른 책을 마다하고 이 책을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제목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다 행복하라.’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배려인지 모르겠다. 아니 배려라는 표현보다는 비단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단 한 줄로써 나타내었다는 것, 그것은 놀라움이었다. 나와 네가 다르지 않음을, 내가 너의 위에 있을 이유도 또한 아래에 있을 이유도 없음을,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잘잘못의 근원이 될 수 없음을, 법정스님의 고운 시선으로 엮어놓은 이 책은 내게 풍랑으로 흔들리던 배 갑판에 환한 빛과 함께 찾아든 선명함이었다. 아니 안개가 걷히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목적지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한 페이지, 혹은 두 페이지에 걸쳐 읽으면서 대문에 걸어놓고 다녀가는 이들의 마음을 두들겼다. 가끔 댓글을 달아주는 이도 있었고, 갈 길이 멀어 마음만 잠시 내려두었다가 바삐 떠나는 이도 있었다. 가끔 글의 느낌과도 비슷한 사진도 함께 걸어두곤 했는데, 글보다 먼저 눈을 잡아끄는 사진에서 더 큰 느낌을 받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이렇게 오래 읽어본 것도 처음이겠거니와 또 이렇게 오래,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제목에 걸맞게 법정스님은 내게 하늘의 넉넉함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바다의 깊이를 강요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아니 어떨 때 생각해보면 백치미를 이야기하기도 한 것 같기도 하다. 참 황당했다. 분명 아는 내용이라며 우기기까지 했는데도, 자꾸 틀렸다고 말씀하시니 말이다.

 책을 덮은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광의 자국들이 떡 하니 자리를 잡고서 나를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어 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앞으로는 조금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쉽게, 편하게, 기분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일 앞에서 아마 어김없이 나타나 힘 발휘를 할 것 같다. “그새 잊었느냐?”라며 아마 죽비까지 내게 선물하실 것 같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죽비를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길모퉁이도 좋을 것 같다. 혹은 버스 안, 지하철 안에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 잠자리에 막 들려고 하는 순간에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어느 곳에서든 다 괜찮을 것 같다. 눈물 쏙 나도록 혼이 나도 좋을 것 같다. 내게 허락된 시간만큼.

 이 순간, 내가 고집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아니 고집이라는 표현도 법정스님은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고집이라는 표현이 아니라면 삶의 자세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좋은 의미로 해석되어 질 수 있는 말을 모두 모아놓고 얘기를 꺼낸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다 행복하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아니,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의 행복을 기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슴속에 맺혀진 응어리를 내가 풀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응어리를 들어줄 수 있는 귀를, 현실의 무게로 내려앉은 어깨를 주물러 줄 수 있는 손을, 또한 옆에서 같이 걸어갈 수 있는 발을, 속으로만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는 마음을, 웃음으로 대신하는 울음을 볼 수 있는 눈을, 다들 피하는 냄새에 대해서도 역겨워하지 않을 코를 가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래서 내 곁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을 아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언젠간 그 끝, 그 어느 즈음엔 도착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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