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월요일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읽은 책이 바로 이 `작가의 방`이다. 드디어 오늘 그 책을 다 읽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책을 읽은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만에 찾아든 설렘, 그리움 그런 것들이 함께 공유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푹 젖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다. 이것은 나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내가 쓴 글보다 남이 써 놓은 글을 요즘 더 자주 읽으려고 애쓰다 보니, 나의 바닥이 보였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것보다는 막다른 벽 앞에 서 있는 자신에 대한 한계성을 경험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느낌들이 요즘 나를 엄습하고 있었다.

 공지영님의 `책은 내 오락`이라는 표현 앞에서, 강은교님의 자신의 글에는 매미와 같은 간절함이 없다는 이야기 앞에서는 정말이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오락처럼 가깝게 옆에 두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면서, 간절함이 아닌 순간의 감정이나 기분에 휩쓸려 글을 쓰곤 하는 내 초상화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어디 쥐구멍이라고 있으면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대표 작가들의 방안을 가득 채운 서재와 전집들, 유독 전집에 약한 끈질김이 부족한 나를 찌르는 기분에 읽는 내내 숙제를 떠 앉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작은 배려`라고 위로받아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깊고 넓은 사유의 필요성에 대한 묵직한 논문을 한 권 선물 받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대여섯 권 추려내었다. 추려내었다는 표현은 감히 해서는 안 되는 표현이겠지만, 대작가의 전집이나 문집은 읽어 내려갈 자신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구입해서 한쪽에 둔다면 어느 순간 아닌 꿈속에서조차 나를 덮쳐 올 것 같다는 불안감에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다만, `아주 좋은 책`이라는 표현에 `당시 읽기`라는 책과 작가의 치밀한 내면을 스케치하듯이 표현한 느낌이 드는 소설책 몇 권을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덤벙대는 서두름이 또 이렇게 일부터 먼저 만들곤 한다. 전부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언제나 그렇지만 주문을 하고 난후, 조금씩 되물음을 하며 밀려온다.

 한 달에 몇 백 만원, 일 년에 얼마로 책을 구매한다는 작가들의 소개에 나의 치부가 또 드러난다. 예전엔 그래도 책을 사는 일에 그리 인색하지 않았는데, 아니 인색했다는 표현보다는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는 편이었던 것 같다. 읽은 후 책들이 개성적인 나만의 책꽂이에 상장처럼 꽂아질 때의 느낌이 참 묘했다. 그 묘한 느낌이 좋아 더 책을 읽게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 하나 키우는 일에 매달리다보니, 그때의 묘한 느낌은 아련한 기억 저편에 있는 것들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새삼스레 오늘 처박아두었던 그 기억, 그 느낌이 내게 매달리고 달려든 것이었다. 싫지가 않다.

 논문이나 시대의 문제 같은 과제를 풀어내고 있는 이문열 작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을 이름만큼의 반항아적인 그러나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김영하 작가. 샘물 같은 정제된 물로 수채화를 그리는 것 같은 강은교 작가. 만만하지 않은 경험으로 삶에 왜곡되어 숨겨져 있는 것들을 굳이 꺼내 놓으려는 공지영 작가. 섬진강 강가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고향 같은 김용택 작가. 마음속에 담아두어 혼자 삭히어 고개 숙여 울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차라리 드러내놓고 어루만져주는 신경숙 작가.

 분명 우리 시대의 대표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읽어가는 내내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불씨를 하나씩 건들고 가는 독특한 이들 작가의 서재에서 나는 ‘나만의 서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재는 비단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느 누구든지 고갈되어버린 뇌 속에, 잠자는 영혼의 부름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나와 같지 않을까. 책을 덮는 이 순간, 첫 항해를 떠나는 항해사처럼 설렘이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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