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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시, 색 없는 그림
이병한 지음 / 역락 / 2005년 1월
평점 :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서울대 교수들과 함께 읽는 한시 명 편->의 이병한 서울대 명예 교수가 한국경제신문에 1일 1제 형식으로 고정 연재했던 한시와 우리나라 묵은 이야기들 가운데 험난한 세월을 사는 오늘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추슬러 나가는데 보탬이 될만한 내용들을 모아 엮었다.
신문에 실었던 글들을 갈무리하여 나온 책 들 중에 <가난한 부자>는 알라딘에선 품절로 나오나 <솔바람이 타는 악보 없는 가락> <소리 없는 시, 색 없는 그림> 올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고 하니 우선 궁금하여 구입한 <소리 없는 시, 색 없는 그림>은 법과 사회. 화합과 발전. 학문과 수양. 예술과 인생으로 주제별로 묶어져 있는데 <솔바람 타는 악보 없는 가락>도 유사하지 않을 까 싶다.
言路通塞 繫國家之安危
언로가 순통하는가 막히는가는 직접적으로 나라의 안위와 관련된다.
세종 28년 10월, 궁중에서 왕비를 위한 불사(佛事)를 거행하려 하자 대간들이 이의 중지를 주청하였다가 모두 의금부에 끌려가 국문을 받았다. 그러자 집현전 직제학 이계전(李季甸)과 응교(應敎) 최항(崔恒)등 11명이 대간은 임금을 위한 이목지관(耳目之官)이므로 그들이 언로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계주(啓奏)를 올렸다. 세종실록(世에宗實錄) 그 기사가 보인다.
중국의 안자춘추(춘추시대 제나라 명신(名臣)인 안영의 언행을 기술한 책) <내편(內篇)>에도 "아랫사람이 말을 하지 않으면 윗사람이 들을 수가 없다(下無言則上無聞)"라는 말이 보인다.위정자가 언로를 막아서는 안되지만 언관(言官)들의 책임 또한 크다 할 것이다.-책 17쪽 '언로와 나라의 안위'.
一犬吠影 百犬吠聲
一人傳虛 萬人傳實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개 백 마리가 그 소리를 듣고 덩달아 짖는다
한 사람이 거짓을 전하면 만 사람이 그것을 사실인냥 전한다.
한 왕부(王符)가 지은 <잠부론(潛夫論)> 현난(賢難)에 인용된 속담이다. 세상에는 확고한 신념이나 증거도 없이 남의 말이나 행동만 듣거나 보고서 그것이 마치 자기의 생각인냥, 또는 그것이 마치 자기가 직접 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러한 사람들의 언동은 애당초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 자체를 엄히 추궁하거나 벌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악이나 거짓을 조장하는 무리들의 농간이나 술책에 빠져 진실을 호도하거나 사회혼란의 원인을 제공하는 수도 있으니 지각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가려서 들어야 한다.-책 31쪽 '虛와 實'
며칠전에 읽은 <한국현대사 길라잡이 리영희>의 책과 맞물려 두어 편 본문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오래전에 내가 아는 이가 어떤 이를 두고 그 사람(작가)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 사람의 글은 도저히 읽혀지지 않더라는 말을 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을 보내고 말았지만 생각해 보면 애정 없이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는 일이 어디 있을까. 사람에 대해서건 사물에 대해서건 말이다. 사람관계도 힘든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읽어 내기 힘든 책들이 있고 보면 이 책은 작가에 대한 애정 없이도 볼 수 있다고 하며 야단을 맞을 려나...그러나 울림을 따진다면 산중한담같은 자즉하고 조용한 그러면서도 멋스러운 책이다. 畵者, 天地無聲之詩. 詩者.天地無色之畵...그림을 보고 시를 느끼고, 시를 읽고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남을 내몸처럼 아끼고 사랑할 수도 있을것이다.
시끄럽고 혼탁하여 몸도 마음도 동네 북 같을 때 수시로 읽어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