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제목처럼 기억과 관련된 이야기다. 사고로 기억을 자꾸 잊어버리는 이모. 이모의 기억은 되찾아 주고, 자신의 끔찍한 기억은 지우고 싶어하는 제이미. 가끔은 이모가 부러울 지경이다.

왜 그렇잖은가, 나쁜 기억은 오히려 머리 속에 길게 남아서 자꾸 생각이 나는데 미칠 지경이다. 가능하다면 그 자리에 스크래치를 내 버려 차라리 그 부분을 건너뛰고 싶은 심정이 들긴 한다. 그 기억이 아주 많이 나쁠수록, 충격이 심할수록,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수록, 후회가 가슴을 쳐올수록.. 나의 일상도 함께 파괴되어 간다.





   
  내 생각에 이모는 불쌍하긴 했지만 최소한 한 가지 면에서 오히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모에게 닥친 불행은 이모 탓이 아니었다는 점 말이다. 그 쇠파이프는 어쨌든지 간에 떨어져 내릴 것이었다. 그 밑에 서 있던 한, 파이프가 떨어진다고 해서 이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모의 잘못이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그날 밤 미스터를 내보낸 사람은 나였고, 아빠더러 가 버리라고 한 사람도 나였다. 그리고 그레이 영감이 나더러 가장 좋아하는 사탕이 어떤 거냐고 물었을 때 버터 스카치 맛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바로 나였다. - 책 속에서 (20-21쪽)
 
   




윗 글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이 이야기는 아동 성폭행을 다룬다. <유진과 유진>이 생각나는 시점. <유진과 유진>에서 두 유진이는 어릴 때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같은 경험을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만났을 때, 한 아이는 그때의 기억을 모두 잊었고, 다른 한 아이는 그 사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기억을 잊은 아이가 행복할까, 기억을 가진 아이가 행복할까.

그런 기억을 갖고 산다는 건 물론 슬픈 일이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그걸 잊었다고 믿거나 잊었거나 간에,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는 건 위험하다. 살짝 덮어두었던 뚜껑이 열려버리면 그 충격과 고통은 그대로 마음 속에 살아있어서 그동안에도 자신을 계속 억눌러왔다는걸 알게 된다. 



이런 일을 아이가 당했을 때, 부모 등 주위 사람의 도움과 보살핌은 절대적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사랑해' 라고 따듯하게 감싸준 부모를 가진 큰 유진이는 상처를 극복하고 평범하고 낙천적인 일상을 보낸다. 작은 유진이도 보살핌을 받긴 했지만, 부모는 사건을 숨기고 이사를 가고, 아이가 기억 못하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그저 숨기기만 바빴다. 그래서 작은 유진이는 기억을 잊었지만 그늘을 가졌다.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한다.

그렇다면, <기억의 빈자리> 속의 제이미는 어떨까. 제이미에게는 갑자기 나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아끼던 고양이가 죽었고, 아빠가 마트 계산원과 바람이 나 집을 나갔으며, 이모가 큰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치고, 엄마와 제이미는 이모가 살던 트레일러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끔찍한 기억까지..

제이미는 그 모든 게 자기 탓인것만 같다. 고양이를 나가게 해서 죽게 만들었고, 아빠가 사라졌음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버터 스카치맛 사탕을 좋아한다고 대답한 것도 자신이므로.. 그래서 혼자 그 모든 걸 감당하고 누구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간다.

사고 이후의 기억을 자꾸만 잊어버리는 새피 이모와 잊고 싶은 기억을 가진 제이미, 이 둘에게 정말 필요한 '마법의 실마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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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0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진과 유진을 읽다가 지하철 안에서 출근길에 눈물 흘리던 생각이 나네요. 저도 요즘 이 책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이 책은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오도리나]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 책속에서도 주인공은 성폭행 당한 끔찍한 기억을 잊기를 '강요'당하고 잊고 살다가 나중에 떠올리게 되지요. 가장 중요한 건 '네 잘못이 아니'라는걸 인식시키는 일이에요, 특히 아동들에게는.

[기억의 빈자리] 담아갑니다.

유아.좋은부모MD 2009-10-08 20:09   좋아요 0 | URL
앗, <오도리나>는 오래된 책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