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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여인의 죽음 ㅣ 이산의 책 2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재정 옮김 / 이산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 는 과거 삶의 기록이 체계적으로 축적된 것이지만, 그것이 일반인들과 동떨어져 개인의 생활 속에 스며들지 않는 것은 바로 그것의 서술방식이 현재의 삶의 모습과는 괴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왕여인의 죽음’ 은 그런 역사와 현재세계의 간극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17세기 중국동북지역의 산둥(山東)성 탄청현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또한 이책의 주인공은 우리가 익숙하게 대하던 전장(戰場)의 영웅이나 창업주가 아니다. 계급의 피라미드 중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하던 농민, 상인, 그리고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이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조너던 D. 스펜스는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이들의 행동과 말을 옮기고 있다. 이는 마치 딱딱한 목각인형에 따스한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같은 어려우면서도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스펜스는 이 책을 쓰면서 두 가지의 문헌을 주로 참고 했는데, 펑커찬(馮可參)이 편찬을 주재한 「탄성현지」라는 지방지와 황류훙(黃六鴻)이라는 문인관료가 쓴 「복혜전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문헌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가난한자들과 역사의 흐름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간 사람들의 모습을 되살려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3백년전에 씌여진 그들의 이야기가 약간의 환상과 과장을 덜어내고나면 현재의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탄청현에 불어닥친 기근과 폭설, 메뚜기떼 등 여러 재난으로 인해 고통받던 사람들의 모습, 자신의 고장을 떠나 유랑하던 가난한 농민들과 도적떼들, 부부간의 사랑과 다툼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왕여인에 대한 사건과 그것의 재판에서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 신념, 가치체계 등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명,청 교체기의 사법제도가 그 시대를 무색케 할만큼 정교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역사가 우리의 삶과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