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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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 안 돌아가는 것 같아."
"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도 나를 사랑해. 그렇지 않아?"
"잘 모르겠어.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좋으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예스야. 하지만 당신 없이도 살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예스지."
"만약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는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었을 거야. 난 내가 여자인 게 좋아. 사실 남자들이 우리 여자들에게 기대하는 거라곤 요리를 잘하는 것뿐이잖아. 그런데 남자들은 모든 걸 원해. 절대적으로 모든 걸. 당신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섹스를 하고 자식들을 지키고 경쟁하고 성공을 거머쥐길 원해."
"그런 문제가 아냐.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아주 만족해. 당신과 함께 있는 것도 좋고, 하지만 뭔가 잘 안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래. 당신은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해. 하지만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하는 건 싫어하지. 당신은 중요한 걸 잊기 위해 늘 모험을 찾아 헤매. 당신은 혈관 가득 아드레날린이 고동쳐야 하는 사람이야. 그래야만 혈관 속에 진짜로 흘러야 하는 게 피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으니까."
"난 중요한 것들을 회피하지 낳아. 당신이 말하는 중요하다는 게 대체 뭔데? 예를 들어봐."
"책을 쓰는 것."
"책이라면 언제든 쓸 수 있어."
"그렇다면 써. 책을 쓰라고! 그런 다음에도 뭔가 잘 안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헤어져."-37쪽

그녀가 내자유로운 기질을 질투한다고, 이 미치광이 같은 생각은 모두 내가 그녀를 떠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나온 게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녀는 이 모든 것은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응수했다. 지금까지 충분히 미루어왔으니, 이제는 나 스스로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지 않으면 남은 생애 동안 또다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아름답게 꾸며낸 과거 이야기나 늘어놓으면서 서서히 추락해갈 거라고 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고, 나 또한 그걸 알고 있었다.-43쪽

나는 어렸을 때 항상 싸움질을 했고, 반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서 다른 아이들을 때려주었다. 그러다가 사촌형에게 한 번 크게 진 다음부터 앞으로 다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겁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여자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면서도 몸으로 하는 대결은 무조건 피해왔다.
아코모다도르. 나는 이 년 동안 기타를 배웠었다. 처음에는 나날이 실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빨리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이상 실력이 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소질이 없다고 느꼈고,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고 기타에 재미를 못 느끼는 척하기로 했다. 당구를 배울 때도, 축구를 할 때도, 사이클 경주를 배울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는 모든 것을 제법 하는 정도까지는 배울 수 있었지만, 번번이 더는 실력이 늘지 않고 멈춰버리는 순간이 왔다.
(중략)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를 잊어버리고, 우리가 수맣은 고통과 비극을 겪는 동안에 일깨워진 본능만 남긴다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것이 중앙아시아 스텝의 유목민이 가르쳤고, 멕시코 주술사들이 실천하는 바였다.-316쪽

언제 생의 한 시기가 끝에 이르렀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한 주기를 마감하고, 문을 닫고, 한 장(章)을 끝마치는 것. 그걸 뭐라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완결된 삶의 순간들을 과거에 놓아두는 것이다. 뒷걸음질할 수 없다는 걸, 어떤 것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나는 서서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내게 끝없는 지옥과도 같았던 지난 이년여 시간들의 진정한 의미를 마침내 나는 엿보기 시작했다.-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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