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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 - 남극의 비극적 영웅, 로버트 팔콘 스콧
로버트 팔콘 스콧 지음, 박미경 편역 / 세상을여는창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극지 탐험 기록에 대한 구애는 꽤나 오래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온실 컴플렉스에 시달려 왔기에 극한에 처한 인간 의지와 행동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은 아직까지도 변함없는 극한 탐험에 대한 애정의 원인으로 유효하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바로 R.F.Scott 경의 남극 일기다.
극점 탐사 대원 5명이 전원 사망한 비극적인 탐험대의 기록을 감안하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낙관적이고 대담한 태도로 기록한 이 일기는 식량 부족과 추위, 고립과 육체적 한계, 그리고 귀환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에 맞선 인간의 한계와 초월적인 정신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나의 예상과 다른 무척 심심한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즐겨 보는 Man vs Wild의 베어 그릴스의 말처럼 조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어떤 상황도 이겨날 수 있는 낙관적인 태도가 그대로 녹아 있는 살아 있는 교본과도 같은 기록이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저 한 마디 무척 힘들었다, 걱정이다와 같은 짧은 표현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한편, 그가 과학적인 관심을 가진 군인 출신의 탐험 대장이라는 개인적인 취향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일기를 번역한 역자의 생각이나 일기를 쓴 당사자의 이야기를 읽어보다 보면 극점 정복이라는 단순한 목표가 아닌 과학 탐사를 겸한 극점 탐사를 위해 부단히 애쓴 스콧 경의 행동과 결정은 정당해 보인다. 게다가 극점 정복 후 대원과 결별해 그를 자살에 이르게 한 아문센의 일화와 단지 극점 정복에만 매진한 아문센의 목표에 대한 역자의 언급은 스콧을 굳건한 의지를 지난 낭만주의자로 아문센을 비겁하고 냉철한 실리주의자로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간 이들 두 탐험가들의 평가가 엇갈려 왔듯이 역자 한 사람의 의견만을 가지고 이 둘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다음의 블로그를 소개한다. http://blog.naver.com/tcasuk/40003519773 : 블로그에 잘못된 기록이 있어 언급하면 스콧 일행은 식량 저장소 중 한 곳에서 17 km 떨어진 곳에서 예상치 못한 추위와 강풍으로 수일간 텐트 안에 갇혀 있다가 사망했다.
이쯤해서 냉철하게 스콧 경의 도전을 아문센과 비교해 보자. 아문센은 100 km나 짧은 거리에 있었음에도 베이스 캠프를 세 곳이나 설치해 보급에 만전을 기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극점 공략팀의 주요 수송 수단으로 42마리의 개를 이용한다. 귀환 중 짐이 줄어들 것을 감안해 중간에 개를 도살해 식량으로 이용하기도 한다.또, 에스키모 족들과 생활하고 다른 극점 탐사팀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준비한 결과 눈밭의 산적과도 같은 우스꽝스런 순록 방한복을 준비했다.
반면, 스콧 팀 역시 곳곳에 식량 저장소를 설치했으나 베이스 캠프의 안락함과 비교한다면 열악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스콧 팀은 운송 수단으로 모터카, 말, 개 세 종류를 준비해 왔으나 정작 극점 공격팀은 인력으로 장비를 운송했다. 한 사람이 100 kg의 썰매를 영하 40도 이하의 추위에서 강풍을 맞으며 걸어가야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이 아문센 팀은 아무런 짐도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처절함과 미련함이 안쓰럽기 그지 없다. 마지막으로 장비를 비교해 보자. 스콧 팀이 준비한 합성 섬유로 만든 방한복과 아문센의 순록 방한복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없어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기에서 설맹으로 고생한 팀원 이야기를 종종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의 장비가 제대로 준비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남극 일기만 읽으면 이들의 대단한 사투와 자연의 불가항력에 고개를 숙이게 되지만, 한 사람의 부상도 없이 전원 무사 귀환한 아문센의 공략 전술과 비교하면 아마추어적인 이들의 무모한 도전과 앞서 비교한 미숙한 준비에 고개를 젓게 된다. 물론 귀환 과정에도 과학 탐사를 하고 10kg 이상의 광물을 채집해 운반한 이들을 어리석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이 맞닥뜨린 비정상적인 혹한과 강풍 - 이로 인해 9일?가량 캠프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만 아니었다면 이들 역시 남극을 정복한 영웅으로 또 인류 최초로 남극에 대한 과학 탐사 작업으로 칭송 받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스콧 경 일행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철저한 준비로 비교적 편안하게 남극에 도달한 아문센에 비교해 볼 때 불필요한 이들의 고생과 희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아문센을 비하하는 듯한 역자의 태도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과학 탐사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을 목표로 쉬운 길로 다녀간 거짓말쟁이 탐험가는 결코 아문센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남극점은 그저 왔다 가는 곳이 아니며 더욱이 아무리 쉬운 길이라 해도 도처에 죽음이 크레바스처럼 검은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곳이 남극이다. 길이 없는 곳, 거대한 빙벽이 어느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곳, 추위와 강풍이 늘 있는 곳, 먹을 것이라고는 짐에 실린 것이 전부인 곳, 살아서 돌아 갈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는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 남극이기에.
하나 더, 스콧의 보다 생생한 좌절과 고통을 느껴 보려면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보기 권한다. 번역된 남극 일기가 아니라 편역된 남극 일기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과학 탐사 없이 그저 정복에만 관심있었다고 비난하는 것도 지나치다. 물론 과학 탐사가 수반되었다면 그리고 보다 충실한 자료를 가져왔다면 좋았겠지만, 극지 탐험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며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과 보잘것 없는 신생 독립국 노르웨이의 지원 정도가 다르고 남극 정복이라는 아문센의 목표와 남극 정복과 과학 탐사라는 스콧의 목표가 엄연히 다른데 이를 비교해 평가 절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역자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더 추가로 발견된다. 아문센의 업적을 평가 절하하는 기준 중 하나가 그들이 아무런 생명의 위협이나 어려움 없이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왜, 성공적인 탐험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역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갖 역경을 이겨 내야만 그 모험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