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출처 : 로쟈 > 김애란의 야간비행

창비주간논평(06. 07. 25)에 젊은 소설가 김애란씨가 나섰다. '야간비행'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 논평의 제목으로 쓰였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페이퍼의 제목은 '김애란의 야간비행'이라고 단다. 아울러 작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올 정초에 이루어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도 자료 차원에서 옮겨다 놓는다.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가 현단계 한국문학의 듬직한 기대주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단에 '김애란'이란 이름이 떠돌 때 나는 문단 마케팅의 일종이겠거니 하고 얕잡아봤었다. 하지만 얼마전에 읽은 그녀의 단편 '성탄특선'(<문학과사회> 여름호)은 마케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파워'를 느끼게 해주었다. <달려라, 아비>(창비, 2005)를 몇 주 전에 사다놓고 아직 손에 못 들고 있지만, 내 식으로 분류하자면 그녀는 현단계 '계급문학'의 가장 높은 성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논평 '야간비행'은 그러한 성취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살짝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작가의 계속적인 질주를 기대한다.

-상경 후, 처음 방을 구하러 다니던 날의 날씨를 기억한다. 8월이었고, 숨막히게 무덥던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비지땀을 흘려가며 낯선 동네를 헤매고 있었다. 서울 물정이라면 둘 다 무지했고, 가진 돈은 터무니없이 적고, 날은 대책없이 덥기만 했던 어느날. 그럴듯한 방을 얻지 못해 소가지를 부리고 있던 나를 길가에 한참 세워두고, 작열하는 도시 한복판에 서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땀과 파운데이션이 뒤범벅된 탓에 진흙처럼 금방 흘러내릴 듯했다.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집에 들러 얼렁뚱땅 계약을 했다. 이상하리만치 천장이 높은, 깊고 서늘한 방이었다.

-다행히 조건이 맞아 어머니는 내게 몇평의 애잔함을 떼어줄 수 있었다(*단편 '성탄특선'도 방, 이번엔 성탄을 맞아 그에 걸맞는 근사한 섹스를 남들처럼 해보려고 하는 커플의 여관방 구하기 이야기이다. 나는 작가적 체험의 밑바닥에 깔린 정서가 이 '지상의 방 한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산 전망대에라도 올라가서 서울의 야경을 보노라면 그 수많은 아파트와 집들 사이에 정작 '나의 집' 한칸이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이한 일이던가!).

-그날의 기다랗던 정오, 이 땅의 지난하고 유구한 상경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방을 구한 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팥빙수를 먹었다. 깊은 피로 사이로 투명하게 부딪치던 얼음 소리, 하얗게 질려 있던 여름 하늘.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수도(首都)의 볕은, 누군가를 미워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렬했고, 어머니는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연신 땀을 훔쳐댔다. 나는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셋방을 스무번도 넘게 옮겼다는 아버지의 일기(日氣)도, 그날의 20세기 태양도, 저렇게 크고 어지러웠을까?’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그날 우리들 머리 위로 떠 있던 크고 둥근 해를, 그 대낮의 따가웠던 서울의 빛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매일 몸을 뉘었던 방은 어둡고 선득한 곳이었다. 작은 문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면, 세로로 놓인 관처럼 깊은 내부가 시원하게 나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방에 책상과 컴퓨터 등 참으로 학생다운 가재를 들여놓았고, 네모난 가구들이 만들어내는 깔끔한 각을 보며 흡족해했다. 나는 자주 밥을 거르고, 밤을 새우고, 술을 마셨지만, 스무살의 내 몸은 지나치게 건강해 아무 때고 벌떡벌떡 일어나 놀러 나갈 수 있었다. 음악은 잘 듣지 않았고, 책은 늘 엎드려서 읽었다. 빨래를 자주 미뤘고, 어머니에게 가끔 세금을 속였던 것도 같다.

-내 몸엔 아직 읽고 쓰는 습관이 배어 있지 않았지만, 이따금 나는 대가리가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보곤 했다. 시인이신 나의 스승이 좋은 문장이라도 한번 칭찬해주는 날엔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웃었다. 나는 그 작고 불편한 방에 신을 벗고 들어갈 때마다 이상하게 쉬러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방을 구하던 날 이후 영원히 내 머리 위를 떠나지 않던 태양,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비록 고향을 떠나오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그 육면(六面)의 어둠 안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다. 딸깍이는 스위치 소리 한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하게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들이 천장에서 총총 빛나고 있었다.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색 스티커들.

-그것은 이전 세입자들이 붙여놓은 무수한 별무더기였다(*나의 집 베란다 유리문에도 그런 별무더기가 붙어 있다). 나는 이사오자마자 그 별을 떼어내려 무척 노력했지만, 대체 어떻게 붙였는지 모를 정도로 그것은 손이 닿지 않았고, 희망처럼, 쓸데없이 접착력만 좋았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 있었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아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보지 않을 수 없다면, 봐버리자고 생각하며, 꼼짝 않고 누워 야광별을 응시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거기 있는 별들의 수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나만한 크기의 몸을 가졌을 허약한 자취생들, 가진 것 없이 서둘러 몸을 섞었을 젊은 부부들, 월급과 적금, 어디론가 송금할 액수를 헤아리며 이마에 손을 얹고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젊은이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갖고 있었을 많은 사람들. 몇년째 책장에 꽂아둔 채 절대 읽지 않은 오디쎄우스는 아직 내게 '떠난다'는 말도 한번 못 붙여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 언제 이렇게 많이 떠나오고 또 떠나갔던 것일까?'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늑한 어둠을 방해하는 발광물질을 보며, 나는 퍽 심란해했다. 아무래도 좋을 마음으로 '야광별 따위라니!'라며 투덜거렸던 것도 같다. 그런데도 나의 독립과 사생활의 의미는 어떤 통속성 안에서 저 별빛처럼 자꾸만 초라해지는 듯했다. '당신들의 계급'이 아닌 '우리들의 취향'이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고, 이 방이 내 방도 당신의 방도 아닌 우리들의 방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그것이 좀 불편했다. 내가 여름을 피해 들어온 곳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힘들게 도착한 곳이 결국 비슷한 삶들이 떠나오고 떠나가는, 붙인 별을 보고서야 '아, 밤이구나!'라고 안도할 수 있는 어떤 범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방의 크기와 높이를 떠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잘도 기어들어오는 그 가짜 빛들과 그 별들의 운동 안에서 나 역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루카치를 비틀자면, '야광별과 계급의식' 정도 되겠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나는 별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약하고 조금쯤은 천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빛 가까이에 있으려고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 빛 역시 내가 알아야 할 빛 중에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말이다. 그곳을 떠난 지 몇해가 지났고, 그 방은 이미 헐려 사라졌지만,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어느 부분들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토성의 영향 아래 있는 우울한 기질의 학자들처럼, 빛을 흡수한 뒤 천천히 사라지는 야광별빛의 영향을 받으며, 나는 길을 걷고, 물건을 사고, 가끔은 그 대가리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전화가 오면 다시 벌떡 일어나 놀러 나갔던 것은 아닐까 하고(*김애란, 혹은 '야광별의 영향 아래 있는 작가').

한국일보(06. 11. 06)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애란씨 인터뷰

“누군가에게 어리다고 말하면, 나이가 아니라 그 말이, 그를 정말 어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이 뒤로 숨고싶을 때 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애란(25)씨. 그는 2003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타며 등단해 이제껏 9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그것들을 묶어 곧 첫 작품집을 내게 될 신인이다(*물론 그 단편집이 <달려라, 아비>이다). 그리고 그는,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가장 일찍 한국일보문학상을 탄 작가가 됐다. 그 결정은 파격이었고, 사건이었다. 4시간여의 격론 끝에 그를 낙점한 본심 위원들조차 자신들의 결정에 잠시 숙연했고, 한 심사위원은 “카메라 뒤에 숨어있어야 할 우리가 이 결정으로 하여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 끼어 본심에 올랐던 당선자 역시 놀랐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첫 반응을 먼저 전했다. “말씀을 드렸더니 ‘누가 장난전화 건 거 아니냐. 제대로 알아보고 다시 연락해라’하시더군요.” 정작 본인의 첫 느낌은 놀랍고 기쁘고…, 뭐 그런 것보다 먼저 ‘찡하더라’고 말했다. 호명된 자신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이름이 거느린 가난한 이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질문을 받은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 질문이 온당한 것이라면 이제 제가 온당한 대답을 해야 할 차례지만, 그 대답을 오래 아껴두고 싶어요. 어쩌면 평생 두고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렇더라도 서두르고싶진 않아요.” 그가 염두에 둔 질문은 대화의 다른 맥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왜 쓰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때문에’나 ‘~위해서’로 이어지는 많은 대답들, 너무 완벽하고 모범적이어서 오히려 거짓말 같은 대답들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답을 구하고 그것을 정답이라고 믿다 보면 결국 속게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죽을 때까지 몰랐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궁금해 하면서….”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화법도 얼굴 화장도 걸음걸이도 담담하다. 그의 소설도 대체로 그렇게 읽힌다. 당선작 ‘달려라, 아비’에서, 그는 아버지 부재와 가난의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결코 고통에 신음하지도 통증을 내색하지도 않는다. 자위하듯 농담으로 얼버무리지도 않으며, 상처의 맥락을 사회화 역사화하지도 않는다. 그 상처는 극복의 대상도 화해의 상대도 아니다. “아픔을 농담처럼 말하는 것 역시 극복하려는 의지가 개입된 거겠죠. 제가 작품에서 말하게 된 상처는 대결이나 화해의 정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어쩌면 처음부터 농담처럼 주어진 상처일 겁니다.”

-일각에서는 그 낯선 전술을 세대적 감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탈사회, 탈역사적 세대의 감수성이라는 게 그것이다(*김애란의 어떤 소설들이 그런 빌미를 제공하는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작가는 예민한 사회학적 시각을 갖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이 작가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탈역사적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9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고, 지금껏 7년을 살았어요. 그 경험들이 저의 글 어디에든 묻어있겠죠. 곧 제 일상의, 동시대의 이야기를 한 겁니다. 제게는 세대적 공감보다는 계급적 공감이 컸어요.”(*바로 그것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계급적 공감! 이럴 때 작가로 립서비스를 해주는군.) 

 

 

 

 

-그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서 보여준 담담한 잔인성,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이 지닌, 제시에 충실하면서도 뭘 제시했는지 모르게 만드는 은근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객관적으로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름 조숙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라 전달하는 태도가, 어깨에 힘주지 않고 핏대 세우지 않는 진지함이 부럽다고 말했다(*나는 <달려라, 토끼>의 작가 존 업다이크가 언급될 줄 알았다). “김수영의 시의 치열하면서도 범박한 느낌과 아득한 유머감각…, 그런 거요.”

-그는,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 없이 무의식이 던져주는 한 문장을 옮겨놓고,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면 계속 써나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중반부쯤 이르러서야 작품의 구성과 결론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당선작도 그렇게 썼어요. 쓰다 보니 아버지가 뛰어들더군요. 말도 안 붙이고 계속 내버려뒀는데 계속 뛰기에 아버지 이야기가 된 거죠.”

-그는 초등학교시절 동시 숙제를 베껴 냈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있고, 그 부끄러움과 뿌듯함의 야릇한 감흥이 오래 남아 소설을 쓰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낯가림이 심한 그는 등단하던 해 겨울 현대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인연으로 시상식에 초대돼 멋 모르고 나갔다가, 그가 좋아한다는 성석제(당선자) 씨에게 인사도 못하고, 먹고 싶은 떡도 제대로 못 먹고 나왔다는 얘기를 웃으며 했다.

-그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했다. 귀찮다는 것이다. “이번에 상도 타고 했으니 그 싫어하는 일을 해볼까 해요. 상금으로 카메라 하나 사서 서울을 여행할 생각입니다. 장소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으로서의 서울여행!” 문예지 겨울호에 발표할 단편 2편을 끝낸 뒤 써볼 생각이라는 첫 장편소설, 그 첫 문장을 던져줄 ‘무의식’ 공간으로 떠나겠다는 말일까(*그녀의 첫 장편소설을 기대한다).(최윤필 기자)

▲ 김애란씨는

1980년 인천생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입학

2003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소설부문) 수상

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한겨레(06. 01. 01) 김애란씨는 해가 바뀌어 세는 나이로 스물일곱 살이 됐다. 스물일곱이면 확실히 어린 연배는 아니다. 김승옥씨가 <서울 1964년 겨울>이나 <무진기행> 같은 소설을 쓸 때 나이가 스물댓 살에 불과했고, <광장> 역시 최인훈씨가 비슷한 연치에 쓴 작품이다. 현대문학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적잖은 작가들이 20대 초에 자신의 대표작을 발표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조숙한 천재들’의 시대도 아니고 미숙한 만큼 온갖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던 현대문학 초창기는 더더욱 아니다. 30, 40대에 등단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마흔 언저리의 작가에게도 언필칭 ‘젊은’이라는 관형어가 얹혀지는 시기다. 그런 점에서 김애란씨는 문단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작가다.

-지난해 한국 문단이 거둔 최대의 수확 중 하나가 소설가 김애란의 등장이라는 데에 토를 다는 이는 많지 않다. 김씨는 물론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했지만, 그의 이름이 문단 안팎에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지난해 11월 하순에 출간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에서부터였다. 표제작을 비롯해 아홉 개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불과 한 달여 만에 판매부수 1만 권을 훌쩍 넘어서면서 연말 문단과 독서계를 달구었다.

 

 

 

 

-책 출간 이후 연말까지 그는 신문과 잡지 인터뷰 10여 차례에 방송 출연도 예닐곱 번을 하는 등 누구보다 바쁘게 세밑을 보냈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한동안은 전화기를 꺼 놓기도 했다. “그리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말을 반복하고 다니는 게 쑥스러웠어요. 작품보다 이미지가 더 많이 소비될까 봐 걱정도 됐구요. 여러분의 관심은 과분하고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해 감탄하거나 투정할 일은 아니고, 조용히 책상 앞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죠.”

-첫 소설집을 낼 때만 해도 그의 생각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해서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 출간 이후 청탁이 밀려들어오면서 가을까지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감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취업 계획은 당분간 접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취업은 정말 하고 싶어요. 작가로서 제가 건강했으면 해서예요. 소설이란 혼자 쓰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쓰는 거라고 믿거든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유명해져서) 날 받아 줄 직장이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그는 웃었다. 젊은이답게 잘 웃고 감정에 솔직하지만, 동시에 신중하고 사려 깊은 면모도 뚜렷하다.

-지나간 2005년이 자신에게 어떤 해였는가 묻자 “질문을 많이 받았던 해”라고 재치 있게 받아 넘기더니 이내 진지해진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잘 알게 된 해였던 것 같아요. 마치 연애할 때처럼요. 왜, 연애할 때면 내가 모르던 나 자신이 잘 보이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작년은 내가 나 자신을 많이 바라본 해였어요. 때론 흥미롭게, 때론 걱정스럽게. 하지만 상황 한가운데 있어 보니까 내가 생각보단 약하지 않구나 싶었어요.”

 

-그렇다면 2006년의 계획은? “많이 돌아다니고 싶어요. 카메라 하나 사서 서울을 구경하고도 싶구요. 정해진 목적지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내려서는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에 타서 모르는 곳으로 가고 하는 식으로요.”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정해진 주제나 구상이 없이 일단 써 가면서 소설을 완성시키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제 작법을 낭만화하거나 신비화시키려는 건 아니고요, 처음부터 무얼 쓸지 알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쓰면서 주제를 ‘발견’해 가는 게 더 즐거워요. 물론 다른 방식으로, 가령 취재를 해서 쓰는 경우도 있죠.”

-선입견과는 달리 니체를 비롯한 철학서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이 당돌한 신인은 “독자에게서 ‘마음의 답장’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최재봉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 빛샘(Vitsaem) / 1992년 6월
평점 :
품절


<연인>은 1984년 콩쿠르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또한 노벨문학상을 제외하고 가장 상금이 많다는 리츠 파리 헤밍웨이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뒤라스의 대표작이다.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 말 프랑스 식민치하의 베트남이다. 메콩 강을 건너던 프랑스 소녀가 백만장자인 32세 중국청년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하는 '연인'. 눈치 빠른 사람들은 예감했겠지만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름다운 소녀와 돈 많은 청년과의 사랑,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따른 비애와 슬픔. 그렇다. 줄거리는 그렇다.


그런데 줄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읽는 사람의 주변 공기 밀도를 단번에 바꾸어버릴 만큼의 신비함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열다섯 살 반. 그 나이에 나는 벌써 화장을 하고 있다. 눈밑 관자놀이 부분의 주근깨를 감추려고, 토칼론 크림을 바르고나서, 그 위에 화운데이션을 바른다. 그날 따라 나는 진홍색, 즉 앵두색 루즈까지 발랐다."(연인 中)


"그녀는 그의 말 중에서 특히 그가 부자라는 것이 엿보이거나 그가 백만장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따위의 말들에 귀기울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연인 中)


소녀는 로맨틱한 연예소설에 나오는 그런 여성이 아니다. 소녀는 청년이 백만장자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은근하면서 노골적이지 않은 유혹, 때로는 대담하게 때로는 못 이기는 척, 중국인에게 호감을 갖는 백인소녀의 대범함. 소녀는 전투적인 여성이면서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로 존재한다. 소녀는 돈 때문에 따라와서 섹스를 나누었다고 말하고 청년은 그것을 들으면서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위태롭기만 하다. 그것은 당시 세계관이 절묘하게 소설에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프랑스인의 집안과 부자이면서도 하위계층의 식민지 남자. 소녀에게는 자존심 강한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의 대리자인 큰 오빠, 허약한 작은 오빠가 있다. 소녀가 청년을 가족에게 소개시켜줄 때, 이들의 위태로운 사랑은 허망하게 모습을 감춘다.


"그런 장면은 매번 같은 식으로 반복되리라. 나의 오빠들은 그에게 말 한마디도 걸지 않을 것이다.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즉 그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 역시 더 이상 그와 말하지 않는다. 나의 큰 오빠 앞에서, 그는 더 이상 나의 애인이 아니다."(연인 中)


그럼에도 돈 많은 중국청년은 소녀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성과 달리 이 남성은 순하기만 하다. 사실 순하다는 표현보다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소녀가 청년과의 사랑으로 인한 모욕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한 의지가 있지만 청년은 아버지의 명조차 거부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아버지한테는 내가 있으나마나지.... 백인 소녀와 함께 있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네가 죽는 꼴을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가 옳아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연인 中)


그들은 헤어진다. 온갖 소문에 결국 소녀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청년도 아버지가 정해준 여인과 결혼을 하기로 한다. 청년은 소녀가 떠나는 날, 차 안에서 여자를 볼 뿐 잡지 않는다. 소녀도 잡으라고 하지 않는다. 너와의 관계는 돈 때문이다, 라는 인상만 주며 떠난다. 그런데 프랑스로 떠나는 배 안에서 문득 소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음악이 바다로 퍼져 나가고 있는 이 순간,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과거 속에 묻혀 버렸다. 그가 그녀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사랑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콜랑의 그 남자, 그녀의 연인을 생각하고 울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연인 中)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작품은 결말에 도달한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녀는 프랑스에서, 청년은 그가 있던 곳에서 살아간다. 시간은 늙어가고 그들도 늙어간다.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게 되고, 그 추억이란 것은 가슴을 죄어오는 슬픔과도 같은 무엇으로 생각되어진다. 서로의 소식도 모른 채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간다.


마지막까지도 간결한 문체로 억지로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지 않고 얄미울 정도로 냉정하게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뒤라스. 아마도 그녀의 문체 때문에 마지막에 책을 넘기던 손은 전율하게 된다. 마지막 문단 그 한곳에서.


"전쟁이 끝난 몇 년 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이혼을 하고, 책을 쓰고, 그러는 가운데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했다. 나야. 그녀는 첫마디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말했다. 그저 당신의 목소리나 들으려고. 그녀가 대답했다, 저예요, 안녕하셨어요? 그는 긴장하고 있었고,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 그 떨림과 함께, 갑자기, 중국어 억양이 들려왔다. 그는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사이공에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전해 들었다고 했다. 또, 작은오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면서, 그녀와 함께 슬퍼해 주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말을 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 사랑은 변할 수 없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연인 中)


이 작품의 매력은 뒤라스의 문체다. 또한 1인칭과 3인칭을 왔다갔다 하면서 서술하는 것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놀랍고 전율한다. 별것 아닌 단순한 이야기를 이렇게 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더불어 큰오빠에 대한 증오와 무기력에 어머니에 대한 연민, 소녀의 욕망이 줄거리와 결합하면서 이 작품은 흔하고 흔한 섬세한 문장, 로맨틱한 스토리, 센세이션한 설정 따위가 없이도 충분히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침부터 두 군데 강의가 있었고, 점심 먹고 논문 한편 읽고 도서관에서 책 한권 복사하고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계간지도 하나 챙기고(이건 필요 때문이다), 그러고 저녁을 먹으니 이 시간이다. 잠시 여유를 부려서 계간 <세계의 문학>(가을호)을 훑어보다가 이근화 시인의 시에 눈길이 머문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는 이런 시들이 마음에 든다. <문학과사회>(가을호)에도 '우리들의 진화' 외 3편이 발표됐는데, 그 정도면 아주 활발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론 이 계절에 읽은 가장 눈에 띄는 시인으로 꼽고 싶다.

 

 

 

 

약력을 보면, 이근화씨는 지난 2004년 등단하고 지난봄에 첫시집 <칸트의 동물원>(민음사, 2006)을 낸 아직 초년병 시인이다. 분류하자면, '문사마(문태준)' 계보도 아니고 소위 '미래파'도 아니다. 그의 시는 무겁지 않고 난해하지 않다. 가볍고 평이하다. 그게 마음에 든다. 나는 내게 재미있는, 그래서 지지하는 시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당연한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인용해보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하는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보니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중략)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후략)

 

 

이 정도면 재미있고 유머러스하지 않는가? 덩달아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라고 합창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저 혼자 폼잡는 시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들의 진화'는 또 어떠한가?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감자와 고구마의 영양 성분은 놀랍다" 이건 놀라운 시 아닌가? 감자나 고구마가 등장하는 시들을 내가 좋아하기도 하지만(당신은 감자와 고구마를 싫어하는가?) 그 '놀라운 영양성분'에 대해서 토로하는 시는 아주 드물다. 하니, 이건 아주 드문 시이다.

 

감자와 고구마의 영양성분은 놀랍다

나는 섭취한 대부분의 영양을 발로 소비한다

내 두 발을 사랑해

 

열 개의 손가락을 오래 사랑했다

고부라지고 빈 구명이 숭숭 뚫려 있는

멈추지 않고 자라나는

 

내 몸의 물은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우리는 길을 똑바로 걸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우리는 길을 똑바로 걸어 되돌아왔다

사라지는 골목을 사랑해

오래 사랑했다

(중략)

 

천장 위에 쌓이는 먼지들의 고고한 자세로

우리는 숨을 고르고 다시 손을 모은다

내 몸을 엉망으로 기억하는 이불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기로 한다

(후략)

 

그래, 그 골목들을 나도 사랑했었다. 그래서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로 시작하는 시도 쓴 적이 있었지. 그래, 그 이불에 대해서 나도 아무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게 일상이고, 일상의 발견이다. 그러니 터놓고 얘기하자. '사라지는 골목을 사랑해'! 그리고, 너만 알고 있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사실, 아니면 어쩌겠냐구?)..   

 

 

06. 09. 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

오랜만에 창비주간논평 한 꼭지를 옮겨온다. 문인들의 '연봉' 얘기를 다룬 보기 드문 논평인데, 필자는 소설가 백가흠씨이다. 이 글이 눈길은 끈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엊저녁에 <현대문학>(12월호)에 실린 특집 '문학과 돈'의 글들을 읽었던 것. 연말정산의 시즌이 곧 돌아오기도 하지만 세밑이 되면 한해동안의 궁상스런 살림살이에 대해서 되돌아보게도 되는데, 궁상으로 치면 여느 직업 부럽지 않은 시인/소설가들의 경우엔 감회가 더할지 모르겠다(비정규직 대학강사들의 처지가 그럭저럭 동병상련이 될 만하다). 손으로 꼽을 만한 극히 일부 소설가를 제외하면 전업시인/작가로서 중산층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부업이 불가피한 이유이고 상금이 걸린 문학상들에 목매달기도 하는 이유이다. 당장에 대안을 떠올리기 어려우므로 대략 그런 속사정만을 챙겨두고자 한다.

 

창비주간논평(06. 11. 28)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

가을이 이렇게 가버리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개나리가 마음을 들볶은 게 꼭 일주일 전만 같은데, 목련은 피었는지 모르게 빗방울에 후드득 떨어진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낙엽 다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쓸쓸하게 매달려 있는 감 때문에 저는 어찌할 바 몰라 방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그래서 선배 시인 한분을 꼬여내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늦은 단풍이나 볼까 하고 말입니다. 비온 뒤라 날씨도 좋고 공기도 맑아서 아침부터 마음을 가만히 둘 길 없었는데요. 막상 산에 오르니 기대했던 거와는 달리 낙엽도 거의 진 뒤라 풍경은 시시하기만 했습니다. 대신 멋진 집들을 구경했습니다. 빨간 벽돌, 십 미터도 넘어 보이는 담으로 둘러싸인 예쁜 집들을 말입니다. 사실 예쁜지 어떤지는 잘 몰라요, 집이 보여야 집 구경을 하지요. 실은 멋지고 높은 담 구경을 했다고 해야 맞겠네요.

 

서둘러 내려와선 두부와 막걸리를 먹었어요. 고추전도 먹었구요. 산에 갔다 왔는데도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이 제 것 같지 않아서였던 것도 같아요. 취해서 속으로 중얼거렸지요. 여기다 집을 사야겠는데, 그래야 저 산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집으로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쓰다 만 소설들이 저를 애처롭게 쳐다보는데요. 술 취한 눈으로 저는 소설에게 말했지요. 니가 잘 씌어져야 거기에 집을 짓지. 소설아, 소설아 집 좀 지어줘라. 분명 거기까진 기억이 났었는데, 깨어보니 한낮이었습니다. 집을 짓고 북한산을 갖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지요.


누구나 연말이 되면 새해에 바라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서둘러 정하곤 하는데요. 몇년 전 망년회가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여자친구도 없는 떨거지 친구들과의 망년회 자리였는데요. 케이크에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끄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진지해서 저도 그에 버금가는 무엇인가를 정해야만 했었는데요. 새해에 바라는 소원, 생각하자마자 금방 떠올랐어요. 제 차례가 되자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새해에는 연봉이 육백만 넘었으면 좋겠다구요. 전혀 웃기지 않는 얘기였음에도 사람들이 웃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웃었지요. 말하고 나니 조금 웃기는 것도 같았습니다.


며칠 후 선생님 댁에 신년인사하러 갔는데 술이 두잔 세잔 돌자 누군가 또 묻는 거예요. 새해에 바라는 소원이 뭐냐구요. 저는 똑같이 연봉이 육백만원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요. 그 시절 진짜 소원이었으니까요. 한명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웃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소설가 이기호가 가흠아, 연봉 육백이면 한달에 오십만원 벌어야 하는데 그거 힘들다, 했어요. 정말 힘든 표정을 지었어요, 이기호 형이요. 그래서 제가 그니까 소원이지 형, 했습니다. 실은 속으로 그때 부러웠거든요. 연봉 육백만원을 이미 이룩했던 기호 형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때문에 온나라가 떠들썩하지요. 정치권, 매스컴 할 거 없이 무슨 호재라도 만난 것처럼 떠드는 것이 정말 큰일이 난 것은 분명해 보이기도 한데요. 집값이 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저는 웬 호들갑들인가 싶더라구요. 평균임금을 받는 사람이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44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때도 저는 그러건 말건 했었는데요, 평균임금을 벌게 되니 이젠 집을 갖고 싶은 거예요. 몇년 전만 해도 연봉 육백만원을 간절히 원했던 제가 말입니다. 왠지 집이 있으면 장가도 잘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구요. 그런 생각이 드니 느닷없이 가로수들이 부러워지는 거예요. 니들은 무슨 복이 있어 이렇게 비싼 도로가에 한평씩 집을 지었냐 싶은 거예요. 가로수들이 부러워지니까 신경질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어느날은 집앞에 늘어선 가로수들마다 한대씩 발길질을 한 적도 있어요.


하나 또 예전에 정말 몰랐던 일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마당이에요. 시골에서 자란 저는 당연히 마당이 있어야 집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서울에서는 마당을 갖는 일이 큰 호사임을 깨닫게 된 거예요. 원래 간사하잖아요, 사람마음. 제가 세들어 사는 집에 감나무, 자두나무가 서 있는 꽤 넓은 마당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제가 감나무, 자두나무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제 욕심이 얼마나 물질적으로 비대해졌나를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땅을 딛고 서 있는 모든 것과 경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경쟁심이 집값을 올리는 것이더라구요. 제가 집값 상승의 주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감나무보다 잘살아보려고 정말이지 애썼거든요.

 


예전에 시인 박형준 형과 치악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요. 제가 등단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는데요. 작가가 되고 일년을 살았는데,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등단한 지 십년쯤 지난 형에게 치악산을 오르며 물었어요. 정말 궁금하더라구요. 어떻게 먹고 사는지 말이에요. 형 연봉은 얼마나 돼요? 박형준 시인이 껄껄 웃더니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쯤 될까 몰라 했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에게 연봉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 있으면 된다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저는 가로수가 부러우니 제가 시인이 되지 못한 이유가 분명 있기는 있는 것이겠지요?

 

06. 11. 28.

 

 

P.S. '연봉 육백만원' 달성에 보탬이 돼보려고 해도 백가흠의 책으로 나와있는 건 달랑 <귀뚜라미가 온다>(문학동네, 2005)란 소설집 한권이 전부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이 제목의 흠을 꼬집기도 했는데, 사실 '귀뚜라미가 온다' 같은 건 시집의 제목으로나 어울리는 것 아닌가?('귀뚜라미'로 어떻게 먹고 살겠는가?) 차라리 데뷔작의 제목을 따서 <광어>라고 했다면 훨씬 더 묵직해보였을 것이다('광어'는 빼어난 단편이다). 어쨌거나 연말 분위기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불우한 작가들을 돕는 의미에서라도 소설집 한두 권씩은 사두시길 바란다. 뭐, 샛노란 게 빛깔도 좋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 '바람 구두'를 신은 당신, 카뮈와 지드의 나라로 가자!
김화영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읽는 글들의 절반은 원문이며, 절반은 번역서이다. 번역이라는 것이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모래를 쌓아올리고, 동그란 그릇을 찍으면 스폰지 케Ÿ?모양의 모래가 나온다. 혹은 별모양 얼음틀을 찍으면, 별의 모래가 된다. 번역서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종종 어떤 작가의, 특히 외국인 작가의 소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 때에는 그 작가의 글은 죄다 사들이곤 한다. 글이 내 머릿속에서 똑같이 나와줄 순 없으니 대신 책을 읽고 사서 모아서 책꽂이에 꽂아놓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그림자처럼 작가의 이름 아래 번역자의 이름이 나란히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김난주가 거의 매니저처럼 따라다니다 시피 하는 것. 종종 원문의 문체도 그러한지, 궁금한 경우가 많을 적에는 아마존에서 따로 책을 구입하거나 외국에 있는 이에게 부탁을 한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나는 종종 헛갈린다. 내가 읽은 것은 까뮈인가 김화영인가? 내가 읽은 것은 하루키인가 김난주인가? 내가 읽은 것은 존 파울즈인가 김석희인가?

 

작가의 글을 번역가가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의 필터가 아닌 다른 필터를 거치면, 그 작가가 꼭 외도를 한 듯한 기분을 부러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런 마당에, 차라리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은 자신의 필터가 어떤 것인지를 고백하는 참회서 같기도 하다. 십수년간을 방랑하다가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아들 마냥 그는 얌전하다.

 

모든 여행서는 떠나는 설레임이 돌아다니는 행동력에 우선하는데, 김화영은 내도록 돌아다니는 행동력을 과시한다. 얌전히 가야할 곳을 계획한 다음 그 곳을 가서 사진을 먼저 찍고, 손에 든 수첩에 메모를 하던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같은 다소곳한 자세이다. 여행 내도록 김화영이 어떤 식으로 흐트러지거나 남다른 감회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읊는 생각은 일차적으로 카뮈와 지드의 필터를 거친다. 이번에는 작가가 번역가의 입을 통해 말을 하는 순서이다. 혹은, 번역가가 작가의 뒷그림자를 밟아나가려는 과정이라 보아도 좋다. 내도록 작열하고, 허물어져가는 알제리에서 번역가 김화영이 찾는 것은 철저한 현장답사이며 고증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어서, 개인의 감정이나 알제리가 주는 마력은 뒷전이다. 이것이 꼭 좋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현장답사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명확하게 체험한 기분이다. 이를테면 김화영은 오랑은 어떤 시인가, 를 묻지 않는다. 대신 `카뮈의 오랑은 어떤 곳인가'라고 묻는다. 바다가 있는데도 바다를 등지고 앉은 도시를 보고 이방인 뫼르소가 느꼈을 작열하는 태양을 본다. 아예 직각으로 꽂히는 태양빛까지는 만끽하되 그러나, 고양이를 향해 침을 뱉던 노인까지 찾아내지는 못한 것은, 김화영의 무게중심이 `이방인', '결혼'에 있어서이지 '페스트'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음을 보여준다. 어느 번역가나 호오를 가지고 있고, 취향이라는 것이 있답니다, 라고 수줍게 그러나 당연하게 말하는 것을 보는, 인터뷰이의 모습이 보인다.

 

하드웨어적인 물질에의 고찰

이보다 더 정직한 표지가 될 수는 없었겠지만,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페이퍼 커버를 벗겨내면 나오는 하드커버는 정말 무미건조하다. 그저 정직한 표지 하나가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컬러로 들어간 사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도를 아주 정확히 맞추지는 않았더라도 김화영이 실은 사진들은 그 하나하나가 당분없는 호밀빵처럼 정직해 보인다. 노인이 부리는 작은, 그러나 최대한의 사치인 네스카페가 보이고 사막의 풀이 보이고 무너져가는 호텔이, 어린 카뮈가 보았을 마을이 보인다. 이 책은, 최대한 뺄 것을 빼고 꼭 해야할 말만을 실은 개인적인 연애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