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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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오후 폭 빠져 읽은 소설. 마치 요즘의 순정만화처럼 앤은 <예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큼 괜찮은 여자>다. 읽어가는 내내 그녀가 가진 외적인 부분을 능가하는 힘이 부러웠달까.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20대 초반엔 자신에겐 어머니와도 같은 레이디 러셀의 설득에 한 남자를 거절했지만, 결국 8년뒤의 그녀는 그를 되찾는다. 8년의 시간은 그녀에게 원숙함과 더불어 그녀 자신에 대한 깊은 믿음을 주었던 것 같다. 굳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설득 당하지 않는 힘 같은 것 말이다. 그런 면에서 책을 읽는 내내 왠지 앤의 성장소설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딘가에서 제인 오스틴의 짝을 지어주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딱 들어맞는 커플을 만들어 내는 솜씨가 정말 최고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예기치 못한 조합으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정말, 재밌다. 마치 배경이 아주 고상한 요즘 연애소설을 읽는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그러고 보니 앤의 나이와 비슷한 내 나이에, 나에게도 그녀가 가진 현명함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큰 욕심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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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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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한쪽 귀를 스스로 잘라내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이한 인생을 살아간 인물. 누구보다 색감이 뛰어난 작품을 그린 화가. 고흐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와 단어들이다. 미술에는 별 관심도 없고 안목도 없던 내 주변에 갑작스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서양미술사의 대표격이라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한 챕터씩 가끔가끔 읽다 우연히 만난 이 책은 고흐 라는 화가 이전에 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수많은 편지들로 엮어진 책은 고요한 그의 독백 같다. 그림은 타고난 천재성으로 그리는 거겠거니 생각했지만 편지 속에 담긴 고흐의 노력들에는 가슴이 먹먹해질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의 고백에는 따뜻한 고흐의 영혼이 들어있다. 사람을 그린다는 것, 풍경을 담는다는 것 하나하나에 온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캔버스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엄격한 도덕성과 성실함이 깃들어 있다. 세상 어느 것 하나도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는 없지만 특히 예술이라는 분야는 더 그렇기에. 후에 앓게 되는 신경증 같은 것들도 아마 예술이 주는 반작용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림은 여전히 어렵지만, 고흐는 가까운 사람이 됐다.

아니 가까운 사람이기 보단 더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진다는게 더 정확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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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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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던 대학 도서관 일반대출실, 밤 8시반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도서관이 지하였던 탓에 책을 다 읽고 출구로 나가는 길이 마치 잠수함에서 나가는 것 처럼 느껴졌었던 밤. 그 이후 김중혁 작가의 책은 소설이든 에세이든 무언가 출간 되면 다 무조건 구매했다. 그 밤이 내게 줬던 이야기들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

 

 

 사실 모든 책들에 우와- 했던 것은 아니다. <좀비들>을 읽고는 응? 하기도 했고, <뭐라도 되겠지>를 읽곤 아 정말 특이하다 했다.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던 느낌을 능가하는 뭔가 강력한 한 방은 없었달까. 이번 책 예판 소식이 뜨자마자 예약구매를 누르고도 그닥 미친듯한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 이번에도 이 작가를 처음 만났던 그 밤과 같은 느낌은 없을거야!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이런 저런 느낌 빼고 수식어 빼고 이번 소설, 정말 재밌다!

 

 

 의뢰인의 사후, 그가 원하는 물건을 영원히 세상 밖으로 퇴출 시켜주는 '딜리팅'. 그리고 그 딜리팅을 감쪽같이 해내는 구동치는 유능한 딜리터다. 전직 형사의 꼬리를 달고 있는 그는 의뢰인들의 '비밀'이 담긴 물건들을 그 죽음 이후 완벽하게 세상에서 분리해 자신의 세계에 안치한다. 신뢰를 먹고 사는 그의 직업적 특성상 그는 완벽하게 딜리팅을 수행해 낸다. 특이한 그의 직업을 빼면 단순하던 그의 세계에 선배 형사인 김인천의 '배동훈 살인사건'이 고개를 내민다. 우연히 배동훈 또한 그의 고객 이었고 그의 의뢰물품이었던 '태플릿피씨'를 추척하며 이야기는 펼쳐진다.

 

 

 배동훈과 이영민, 천일수, 이강혁, 원수도장의 나영욱 등등 어디하나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점점 속도감을 높인다. 구동치의 사무실을 노크 하며 일어났던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그 속에서 딜리터 구동치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절망한다. 그의 사무실 속 한 세계 였던 의뢰물품들은 결국엔 그 조차 지배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추운 나라, 노르웨이로 떠난다.

 

 

 죽고 난 이후의 삶. 내가 죽더라도 이 세상의 시계는 정말 태연히 돌아갈 것을 알기에, 우리는 사람들 기억속에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누구에게나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그 욕심의 끝. 어느 한 사람의 비밀이, 그리고 그 그림자가 월요일 처럼 길다는 표현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월요일 처럼 긴 비밀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우리에게 기쁨일지 슬픔일지는 나의 판단의 영역은 아니지만, 이왕 이면 기쁨이었으면 하는 것도 아마도 욕심. 마음이 움직이면 다른 것도 움직일 것이다.

 

 

 

 

ps. 처음 배송되어 온 책이 신기한 순서를 가진 파본 (304p 뒤에 289p, 289p 뒤쪽으론 321p.....) 이어서 알라딘에 재빨리 연락해서 교환했다. 다행히 사인본으로. 처음에 책 받았을때 사인이 너무 예뻐서 찍어둔게 있었는데.....

 

     

 

악, 두 사람의 그림자의 방향이 다르다 :) 센스쟁이ㅋ 근데 파본 책에 있는 사인이 더 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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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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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도 '사은품'이 걸리면 미친듯 집착하게 되는게 사람 마음일까?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책이었는데, 텀블러를 받겠단 욕심으로(?) 대상 도서들을 꼼꼼히 살피고 끼워 넣었던 이 책. 사고자 하던 책이 아니었음에도 도착한 책들 중 가장 먼저 이 책을 읽게 된건 왠지 주말을 책임져 줄것 같은 촉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토요일 밤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일요일 밤을 눈물콧물로 마무리하게 해 주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환자가 된 윌리엄 트레이너. 자신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절망한 그는 6개월 후 스위스의 자살을 도와주는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갈 결심을 굳힌다. 몇번의 자살시도 끝에 그의 부모는 강철같은 그의 의지를 꺽을 수 없음을 깨닫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6개월동안 그를 간병해 줄 루이자를 채용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윌과 하루하루를 보내던 루이자는 윌에게 인간적인 끌림과 이성적인 호감을 함께 느낀다.

 

 

 자신의 고용목적을 어느 순간 알게 된 루는 절망에 빠지지만 곧, 윌의 그러한 결심을 막을 비책들을 고심하기 시작한다. 살아있음을, 더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그가 느끼길 바라며. 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그의 마음은 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임이 점점 분명해 진다. 의지가 삶의 원동력이었던 한 남자의 마지막 의지는 '사랑'이라는 말랑한 단어로는 돌릴 수 없는 것인가보다. 그녀가 윌을 위해 계획한 모든 일에 윌의 결정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은 우리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일방적인 방법과 너무 닮아 있다.

 

 

 반대로 윌은 루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반경 몇 킬로미터의 작은 마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루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알아보곤 그녀의 마음을 톡톡 두드린다. 그 자신은 스위스의 병원에서 의지대로 삶의 마침표를 찍지만, 그녀를 그가 가장 사랑했던 파리의 장소에 데려다 놓았다. 소설속에서만 살아 숨쉬지만 윌은 정말 누구보다 멋진 남자였다.

 

 

 누군가의 삶에 뛰어들어 우리는 그의 삶이 나로 인해 좀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아마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많은 요구사항들의 끝에는 사랑이라는 태그가 달린다. 끝끝내 자신의 선택을 접지 않았던 윌을 보면서 사랑의 의미와 한 인간의 의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인의 삶에 있어서 내가 의지를 발할수 있는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끝끝내 자신의 선택을 접지 않는 윌은 장애를 피해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용감해 보일 뿐. 그런 그는 여전히 반짝 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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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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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꼭 읽게 될 책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될 때가 있다.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어느 순간 내 손에 놓여질 이야기들. 자주 사람과 책의 만남이 운명같다 생각하지만 이 책 만큼 그 느낌이 강렬한 책은 드물었다. 길고 긴 추석 연휴의 어느날, 필연처럼 묵직한 세 권의 책으로 정글만리를 만났다.

 

  굵직한 한국 근대사의 이야기들을 훓어내는 작가 조정래. 그가 이제 현대 중국을 이야기 한다. 1990년대만 해도 낙후하고 지저분한 이미지가 전부였던 중국은 이제 g2로 떠올랐다. 급속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현대 중국. 그 변화의 중심에 뛰어든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한국 최고의 성형의 였던 서하원은 한번의 양악수술 실패로 궁지에 몰린다. 가진건 요즘 대세로 치는 성형술 뿐, 한류의 바람을 타고 그는 중국으로 떠나온다. 망망대해 중국대륙에 홀로 떨어진 그는 한국인 상사원 전대광의 도움으로 중국에 대해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전대광의 조카 베이징대 학생 송재형, 전대광과 경쟁하는 일본인 상사 이토 히데오, 동양계 미국인 여성 사업가 왕링링 등을 중심으로 중국 속 보이지 않는 경쟁들이 촘촘히 전개된다.

 

  시대배경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작가의 노련한 솜씨 답게 이 책에는 현대 중국인들의 생각과 그 풍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의 느긋한 성향,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돈'을 좋아해 돈 많이 벌라는 말을 최고의 축복이라 여기는 그들. 중국에서의 사업가, 상사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꽌시'라는 중국 관리의 '빽'이라는 게 너무나 당연히 되는 사회. 우리 사회의 잣대로만 평가하기엔 너무도 이상한 그들의 생각은 중국을 가장 중국답게 보여지게 한다. 사업에 있어서 꽌시(관리)의 관여가 너무도 크고 가끔은 비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중국을 오늘의 g2로 만든 원동력은 그들의 손에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잘 녹여내는 조정래 작가의 필력답게 중심인물인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그는 베이징대 경영학을 전공하다 중국인 여자친구의 영향을 받아 중국사로 전과하여 역사의식을 가지는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침입으로 아픔을 겪었던 중국 인지라 동질감이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송재형의 역사학도로서의 모습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을 책을 읽는 내내 떠올리게 했다. 경제성장과 머니메이킹에 온갖 관심이 쏠려있는 요즘, 과거를 잊지 않고 돌아봐야 한다는 송재형의 모습은 한국인 으로서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정글만리 세권의 책은 중국의 현재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인의 현재 또한 또렷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성장과 그에따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책. 그저 중국은 크고 넓다, 는게 아닌 그 속의 중국 사람들을 낱낱히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정글만리가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 간다. 단순히 나 하나가 아닌 우리 지역 사회, 그리고 우리 나라가 앞으로 다가오는 '중국 시대'에 어떻게 발맞출지는 우리의 '역사의식'에 달려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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