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구판절판


"미도 씨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말은 쓰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하루하루 죽어건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루치의 삶을 덜어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요."-42쪽

권투 선수의 가장 큰 미덕은 상대방을 잘 때리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상대를 잘 가격하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잘 얻어맞는 것이다. 권투 선수가 죽도록 두들겨 맞고도 죽지 않는 건, 강펀치와 정확한 타격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총알이 쏟아지는 전시 상태에 몰아 너흔 것.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맷집을 키우는 건 백 퍼센트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다. 살다 보면 이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 살 때가 더 많다. 맞아도 덜아프기 위해 몸서리치면서.
외할아버지가 말했었다. 사람은 역사와 경험에서 삶을 배운다고.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반대파들에게 독살당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생에 대한 그들의 본능을 강렬히 자극했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일견 독창적인 것이었다. 일부 귀족들은 매일 미량의 독을 섭취하며 여러 가지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 그리고 그 비결을 은밀히 자식들에게 전수했다. -98쪽

"난 가끔 우리가 사귄 지 십 년 가까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 내 청춘이 너란 사람으로 채워진 거잖아. 테트리스로 치면 난 정사각형만 잔뜩 들어가 있는 블록 같아. 어떤 사람들은 세로가 긴 직사각형, 가로가 긴 직사각형,기역,니은 모양의 도형처럼 다양한 블록들로 가득 차 있을텐데."
직선처럼 부는 바람 때문에 나무들이 한쪽 방향으로만 흔들렸다. 현정의 긴 머리도 같은 방향으로 흩날렸다.
"지루해?"
"가끔.넌?"
"글쎄."
"......."-101쪽

타인의 친절함을 자신의 정당한 권리로 착각하는 인간들을 미도는 지겨을 정도로 봐왔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 계약하기 전에 친절히 구는 집주인은 더 의심해야 마땅했고,'전 조건은 별로 따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고객일수록 주목해야 하며, '난 뒤끝 없어!'라고 주장하는 상사들에겐 절대 속마음을 들켜선 안 된다. -127쪽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게 진짜 위로야. 무릎이 깨졌으면 당장 쓰리고 아프더라도 과산화수소수를 퍼붓고 빨간약 부터 발라주는 게 위로라고. 정말 용기 있는 사람만이 진짜 위로를 할 수 있어!"-146쪽

"지훈이는 소설을 좋아해요. 개인 트위터를 하니까 쉽게 성향이 파악될 거예요. 트루먼 커포티. 커포티의 소설을 인용하는 게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158쪽

"위로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위로받고 싶어서겠지. 인간은 원래 잔인한 존재야. 남의 슬픔을 보면서 진심으로 위로 받거든."-171쪽

사강은 창문 밖의 긴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필름 넣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필름 카메라는 골치 아픈 기계다. 하지만 쓸모 있다는 것의 정의가 사람마다 같을 순 없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쓸모만큼만 인정받다가, 쓸모가 사라지면 즉각 폐기되는 삶이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경쟁이라면 그것의 반대편엔 또 다른 세계도 있는 거 아닐까. 세상엔 쓰임새가 애매해서 그저 간직할 수 밖에 없는 물건도 있다.-188쪽

인간이 외로운 건 일평생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외로움은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존재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어둠을 응시할 리 없다.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뒷모습 같은 진실과 마주치려면, 목이 꺽이는 죽음을 각오한 채 맹렬한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 -242쪽

인간은 슬픈 쪽으로만 평등하다.
인간은......
어쩌면,
행복한 쪽으로는 늘 불평등했다.-318쪽

익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SNS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는 쉽게 증명해냈다.'언젠가는 젊은이들이 온라인에 남긴 과거 행적들을 떨쳐내려고 자기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사람이 구글읜 CEO 에릭 슈미트라는 사실은 상당히 많은 아이러니를 내포했다. 자신이 창조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향해 그토록 위험한 예언을 할 수 있는 CEO라니.-337쪽

사강의 경험에 의하면 무엇인가 많다는 건,
적은 것보다 대부분 좋지 않았다.-353쪽

"그가 이혼하겠다고 얘기한 순간, 그와 헤어졌죠. 아내에게 돌아가라고 한 말이 여자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그 순간 여자는 엄마를 떠올렸어요. 끔찍하게 미워하던 엄마를. '어쩔 수 없다'란 말. 그게 엄마와 자신의 관계라는 걸 깨달은 거죠. 어쩔 수 없이."-365쪽

타인의 비밀을 듣는다는 건 큰 책임을 요구한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책임, 간직하는 동시에 떠나보내야 하는 책임, 묵언의 서약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꺼내놓아야 하는 책임. 비밀은 공유하고 나눔으로서 그에 짓눌린 무게의 짐을 스스로 덜어놓는다.
'간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기억 따위를 마음 속 깊이 새겨두는 것'이다. 비밀은 누군가에 의해 간직된다. 우리가 '간직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오래된 장롱 '속'이나, 복잡한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금고 '인'이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어렵게 끄집어내야 한다. '속'과 '안','곳'에 넣어두는 깊숙한 기억과 물건들. 마음의 가장 어두운 곳에 닿아야 비로소 꺼낼 수 있는 것.-371쪽

원하는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간절히 꾸는 꿈은 악몽이다. 열망의 무게만큼 꿈을 체념하는 일이 삶을 점점 더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게 무엇인지 끝끝내 모르는 인간이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허공을 향해 헛스윙이나 해대로 기껏 홈런이 아닐까 착각하는 파울이나 때려대겠지.-397쪽

"그래, 넌 늘 모든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난 네가 얼마나 날 원망했을지도 알 것 같아...... 아무것도 묻지 않아줘서 고마워. 정말이야."-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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