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은 연애를 스포츠에 비유대 떠들어대기를 좋아했다. 그의 논리는, 연애란 결국 단 한 사람의 짝을 찾는 게임이라는 것. 그러니 화려한 개인기를 펼치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여 99승을 거두었다 한들 마지막 경기에 패해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다. 하지만 아흔아홉 번을 줄기차게 져왔더라도 마지막 경기만 이기면 단번에 사랑의 승리자가 된다는 얘기였다. -81쪽
한국 남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노골적으로 떠들어대기를 좋아하는 부류와, 그에 대해 전혀 입을 떼지 않는 부류로 나뉜다. 도영이 전자라면 준호는 후자였다. 특별히 그것이 사생활의 영역이라는 의식이 강해서만은 아니었다. 준호는 타인에게 둘만의 내밀한 몸짓과 언어를 단편적으로 까발리는 일이 어쩐지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 부끄러움은 상대 여성에 대한 배려의 감정과 맞물려 있었다. 둘 사이의 정서적인 앞뒤 맥락을 뗴어버리고 섹스의 행위만을 뚝 잘라 공중에 내보이는 것은 상대 여성에게 무참한 폭력이 될 수도 있었다. 준호는 사랑하는 여자 혹은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그런 식의 모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도영이 녀석도 궁극의 그녀를 만난다면 지금과는 달라질지 몰랐다.-83쪽
준호가 가만히 민아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잡은 채 밤길을 걸었다. 누가 왼손이고 누가 오른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별은 높이 반짝이고 봄꽃들이 뿜어내는 향내는 아스라했다. 귓가에 종소리가 잘랑거리는 밤, 저 우주 만물 사이에 작동하는 오묘한 섭리 앞에 무릎 꿇고 고해성사를 바치고 싶어지는 밤, 봄밤이었다. -111쪽
어떤 관계에서든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은 있다. 연인들은 필연적으로 역할을 선택해야 한다. 굿 스피커가 될 것인가 아니면 굿 리스너가 될 것인가. 말할 것인가, 들을 것인가. 던질 것인가, 받을 것인가. 그들이 서로에게 매혹된 원인은, 각각 상대방이 아주 훌륭한 청자라고 믿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114쪽
엄마처럼 평생을 종종거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젠 엄마만큼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157쪽
이별과 맞달뜨릴 때마다 '죽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는 이는 드물었다. 물론 비련의 사랑을 애꿎은 생명으로 되찾으려 드는 무모한 젊은이도 없지는 않았지만 목적을 이룬 숫자는 매우 미미했다. 눈물은 오래지 않아 마를 것이고 그들은 머지않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다시 사소하게 꿈꾸고 사소하게 절망하고 사소하게 후회하기를 반복하다보면 청춘은 저물어갔다. 세상은 그것을 보편적인 연애라고 불렀다. 대개의 보편적 서사가 그러하듯이 단순하고 질서정연해서 누군가에겐 아름답게, 누군가에겐 참을 수 없이 지루하게 여겨졌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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