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이도우 작가. 잔잔하고 섬세한 문체, 현실적인 공간과 이야기들. 이도우 작가에게는 평범한 일상들을 특별하게 짜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섬세하게 만져지는 문장들에 기대어 한권을 쉼 없이 읽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순간들도 찾아왔다. 마음이 뻐근히 아파오는 이야기,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이유 모를 엄마의 부재로 외할머니 댁에 맡겨진 고둘녕. 같은 또래의 이종사촌 수안은 갑자기 나타난 이 아이에게 경계심을 품는다. 아이들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몇개의 사건 이후로 이 둘은 콩과 콩깍지와 같은 사이가 된다. 감성이 풍부한 두 소녀들은 계몽사소년소녀전집을 읽어내려가며 '황금빛 먼지가 흩어지는' 유년을 함께 보낸다. 이 소설은 둘녕과 수안이 성장소설 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성장소설 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유행했던 계몽사소년소녀전집 속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깨알같이 박혀있다. 나 또한 엄마가 웅장하게 사다 놓은 그 계몽사 전집을 들고 앉아 어린시절을 보냈으니, 책 속 이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 시절 내게 수안과 같은 콩깍지가 있었더라면, 마냥 어리기만 했던 그 시간이 좀 더 행복했을까.

 

 

 세월은 상처를 잊기엔 너무 느리고, 무심했던 이들의 근황을 따라가기엔 너무 빨랐다. P.452

 

 

 자신을 외갓집에 놓고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둘녕, 어린 시절엔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생채기로 남은 죽음들... 여러 상처들을 딛고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책을 많이 보고, 조숙했던 수안이 선택한 마지막 길은 너무 분명했다. 하지만 끝내 책장을 넘기면서도,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길 제발 그러길 얼마나 바랬었는지. 수안의 마지막 선택 길에 둘녕은 끝끝내 동행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 표를 들고 마침내 버스정류장의 모든 개표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그녀가 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둘녕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뒤에, 그들에겐 많은 의미가 담긴 잠옷을 손으로 지어 수안에게 보낸다. 그 먹먹한 마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상처는 상처로 남겠지만 세월은 흔적을 남긴다. 둘녕과 수안, 이 둘이 너무 예뻐서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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