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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아침 속보로 북한 김정남의 피살 소식이 들려왔다. 여느 때와 같이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며 그 뉴스를 마치 배경음악처럼 흘려들었다. 출근 후 마주친 많은 사람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아주 잠시, 딱 그때뿐이었다. 그의 죽음이 내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북한 사람인데, 뭐?"
과거의 누군가에게는 가족이었을 테지만, 현재의 내게 북한 사람들은 그저 남일뿐이다. 언젠가는 안고 가야 할 동포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는 있었지만, 적이라면 앞뒤 재지 않고 가차 없이 내치는 냉혈한들과 굳이 함께하려는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북한은 그저 외면하고 싶은 '남'이었다.
'남'이 목숨을 걸고 써냈다는 소설 <고발>은 단편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니컬하게 시작했다가 첫 포문인 '탈북기'부터 경악을 금치 못하며 빠져들었다. 혹시 조선시대의 일기장을 본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 번 표지를 들춰봤다.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렇게까지?' 참 담담한 어조였지만 단단한 문장들 때문에 내내 읽어내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비참하게 유린당해도 감내해야만 하는 그 험난한 모든 상황들이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이라는 게 더욱 안타깝고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참 이기적이게도, 나의 현재가 참 감사했다. 마음대로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는 - 이 모든 자유가 당연해지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새삼 깨닫게 됐으니까.
책을 덮고 나서 마치 반딧불이 하나가 내게 다가온 것만 같았다. 그동안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북한을 바라보고 있었던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당장 나서서 뭔가를 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그들에 대한 오해는 확실히 풀 수 있었다. 지금도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은 '남'의 일이라며 무심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애잔함이 모여 그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이 땅에 새로운 별이 뜰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온다면 시작은 분명 반디의 <고발>이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