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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조정래 작가의 소설에는 가난과 아픔이 담겨져 있다. 『비탈진 음지』를 읽어내면서도 그동안 읽어왔던 소설들의 느낌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죄를 진 일도 없이 가혹하고 아픈 벌을 받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모진 학대와 설움속에서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 왔다. 아픔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찔려왔고 부모님이 생각나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하소연 할곳도 마땅치 않은 그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복천영감은 칼 가는 일을 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목이 말라 콜라한병 마시고 싶어도 콜라값이 머리를 치고 지나가 도무지 사먹을수가 없다. 그저 수돗물로 텁텁한 목을 축일수 밖에 없었다. 연신 헛기침을 해가며 동네를 떠돌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복천영감의 아내는 어느날 다리가 부어오르기 시작하고 검게 변해갔다. 병원에서는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검사결과 이미 복부까지 균이 침투해서 살아날수 있는 가망이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데려온 아내는 숨을 거뒀다. 아내 병원비로 많은 돈을 써버리고 복천영감은 아들 영수, 딸 영자와 함께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 서울로 왔다.
삭막한 서울에서 자리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복천영감이었지만 서울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지게꾼으로 일해보려고 해도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얻어 맞기 일수 였고 땅콩장사를 시작해서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지만 일을 시작한지 한달도 되지 않아 리어카를 도둑 맞았다. 그리고 선택한 일이 적은 밑천으로 시작할수 있는 칼가는 일이었다.
칼을 갈다가 만난 어느집 식모였던 여자는 주인집 삼촌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허름한 여관에 버려지게 된다. 그 이후에 돈이 없어 여관집 주인에게 끌려가 몸을 팔수밖에 없었다. 잊으려고 해도 잊고 싶은 기억들은 더욱 또렷하게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대받고 멸시 받아가며 살아왔다.
복천영감은 자신의 신세에 대해 원망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걸 알았다. 집나가서 만나지 못한 큰아들을 생각하고 영수와 영자를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갈수 밖에 없었다. 길에서 얻어맞아도 누군가 밟고 또 밟아도 다시 일어나야했다. 허망하고 허탈한 세월들이었다. 부익부빈익빈,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할수 밖에 없었고 벼랑끝으로 자꾸만 내몰렸다. 지금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시대의 비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한 세대의 비극과 가난으로 인한 아픔들을 이 책을 통해 느낄수 있었고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가슴 한구석이 아련히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