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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하루 일에 지쳐 잠들기 전 잠깐 읽어야겠다는 요량으로 이 책을 꺼내들었고 난 마지막 책장을 펼칠때까지 잠들 수 없었다. 매일 오가는 차들 소리, 사람들 이야기 소리에 신경쓰여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내게 책을 읽는 동안은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이 책속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험난하고 고달프게 살아온 한 여인의 이야기에 같이 가슴 아파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식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한 여인, 자신의 기구한 운명때문에 자식들은 커갈수록 자꾸 빗나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깎아 없어지더라도 자식들만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빌고 또 비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갑작스럽게 경찰서에서 막내아들 동익이가 조난사고를 당했으니 출두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불길한 예감은 자꾸 퍼져갔고 겨울 등반을 떠난 동익이가 나쁜일을 당했을것만 같았다. 아들 일이 너무 초조했지만 큰아들 태순이에게는 연락조차 할수 없었다. 태순이는 동생 동익이를 미워하다 못해 저주했고 어릴때부터 동익이를 진저리치며 싫어했다. 경찰서로 향한 점례는 자신의 아들 동익이가 살아있는걸 확인했다.
점례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겁탈하려는 주인집 남자를 때려 주재소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모진 고초를 겪는다. 어머니 마져 순사에게 끌려가게 되자 점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 일본남자(야마다)의 첩이 된다. 야마다는 걸핏하며 점례에게 고함을 지르고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점례가 임신을 한 순간 사나운 짓들이 없어졌고 차라리 잘된것이라고 생각했다. 점례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돌이 지나고 1주일이 못되었을때 해방의 소식이 전해졌다. 야마다는 사흘째 되는 날밤 말 한마디 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집으로 돌아 온 점례의 나이는 겨우 스무 살이었다. 어느 날 큰이모가 집으로 찾아와 아기를 부모님께 맡기고 시집을 가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게 점례는 독립투사인 박항구와 결혼을 하게된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고 점례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때는 더할 나위없이 점례에게 잘 해주었다. 점례는 딸(세연)을 낳게 되었다. 겨울이 되어가며 남편은 친구들을 집에 자주 불러들였고 어느날 인민군을 앞세우고 남편은 집을 나가버렸다. 어느날 남편은 집에 들러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긴채 달아나버렸다.
또 다시 남편은 사라졌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점례는 허허벌판에 내버려졌다. 더군다나 점례는 남편 때문에 잡혀가게 된다. 하지만 미군 프랜더스 대위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프랜더스의 집에서 청소와 빨래를 하며 아픈 아이가 낫기를 기다리던 점례는 프랜더스에게 겁탈당하게 되고 결국 그곳에서 생활하던 점례는 프랜더스가 가져다 주는 물건들로 돈을 모았고 아들 동익이를 낳았다. 그리고 전쟁은 끝났고 프랜더스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버렸다.
기구한 운명의 여인은 자식들을 위해서 모진 고초를 겪어가며 살았다. 큰 아들 태순이가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릴때도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앞섰던 그녀였다. 모든게 자신의 잘못인듯 했고 자신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미안했다. 자식들이 잘되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끈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 욕심처럼 되어주지 않았고 생각할수록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가여웠다. 그녀의 이야기가 가슴 아팠고 자식들을 위해서만은 모든것을 주고 싶어했던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얼얼해졌다. 그래도 삶의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그녀의 모습속에 희망이 있었다. 인간답게 살수 없었지만 살아야만 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가 오랬동안 가슴에 남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