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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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계에서 배운 것을 통해서 우리의 다음 세계를 선택하는 거야.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다음 세계는 이 세계와 똑같은 것이지. 전혀 똑같은 한계들과 극복해야 할 짐들을 이끌고 가는 그런 세상 말이야.(p12)

-"내가 지도교수라기보다 세상 먼저 산 어른으로 노파심에서 몇 마디만 더 얘기하지. 청춘의 실책은 장년의 승리나 노년의 성공보다도 값진 일이라네.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디즈레일리의 말이지. 살아가며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오류를 범하는 것보다 자기가 범한 오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때라네. 특히 젊은 날의 오류는 오히려 인생에 비약적인 계기가 될 수 있지."(p39)

 

청춘 시절의 회고담인 《춘천은 가을도 봄》은 주인공 진호의 방황과 성숙의 이야기이다. '유신'의 한중간부터 '5공'의 초입에 이르기까지 꽃 피는 청춘이 아닌 차라리 얼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십 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학교생활이었고 시작부터 이별을 예감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처음 입학한 대학에서 선배들과 함께 선언문을 낭독하다가 잡힌 진호는 실형은 면했지만 학교로부터 제적 처분을 받는다. 3월이 되고 먼 길을 돌아 다시 학생이 된 진호는 앞으로는 철저하게 방관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과거의 얼룩들을 지우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학교 학보사에 들어간 그는 다른 시작을 만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진호는 원고 청탁을 위해 신입생인 주희를 만난다. 미군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진호가 예상하듯 주희는 먹고 살아갈 일을 찾아야 했고 그녀에게 사랑은 점차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되어간다.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는 서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고 결국 주희는 미국으로 떠난다.

 

아프고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결국 한때 소중했던 추억들로 바뀌어 간다. 슬픔과 좌절로 점철되어 있다고 느꼈던 그 순간들이 마음 깊이 남아 자신의 삶을 만들어 왔다. 앞으로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한 밑바탕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들이 단순한 얼룩의 오점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실패들이 결국 '나'를 만들어 가는 소중한 흔적이 되어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비상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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