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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Nez입니다
김태형 지음 / 난다 / 2020년 7월
평점 :
-향수는 사람과 닮았다. 향수의 놋 드 떼뜨, 즉 톱 노트는 그 사람의 첫인상이다. 단박에 나를 설레게 하는 사람이 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 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파퓨메리를 휘집고 나오는 날이면 수많은 사람의 옷깃을 스치고 나온 기분이 든다. 대부분은 의식의 문턱 앞을 서성이다 사라진다. 그 사람들의 본 모습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p97)
조향사가 되기 위해, 프랑스에서 향을 공부하기 위해 낯선 나라로 향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후각 상실증을 앓았고 선천적인 결함은 아니기에 유전될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아들이 조향사가 된다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집을 떠나 낯선 프랑스에 홀로 정착했다. 소설가인 어머니와 달리 문학을 외면하고 최대한 멀리 도망쳐왔다. 멀어지기 위해 반항했던 시간들을 지나고 나니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네Nez입니다》는 처음 받는 순간부터 책에서 향기가 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각각의 글자가 향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그의 글에는 향이 담겨 있었다. 조향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향을 만들어 내는 원료들을 사랑하는 마음, 향을 맡고 익히고 잊고 다시 맡는 수많은 과정들을 거치며 꿈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이 맡아왔던 향들에 대한 경험이자 기록이다.
소설가인 어머니가 바라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꿈꾸던 길과 마주하고 한 걸음씩 내딛는 그의 모습은 꽤 멋지다. 향료와 향수에 대한 글이라고 말하기에는 그의 글은 색다르고 아름답다. 잔잔하고 아득한 꽃길을 걷는 느낌처럼 이 책을 편안하게 즐겼다. 향기 가득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 역시도 좋은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