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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평점 :
《우리는 같은 곳에서》를 읽은 후 느낌은 섬세하고 찬찬하다. 그동안 퀴어 소재를 다룬 책들을 몇 권 읽어왔지만 이 책은 이전에 읽어왔던 책들에 비해 내면의 불안과 갈등, 고민들을 더욱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8편의 단편에서 볼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감정은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가까워졌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과거의 흔적들을 꺼낸다. 여전히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불확실한 감정들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는 누나에게 자신의 게이 친구가 집에서 머무를 거라는 통보를 받는다.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결국 그에 대한 '나'의 회상으로 마무리된다. 「밤의 물고기들」 죽어서 유령이 된 옛 연인이 '나'를 찾아온다. 처음 부고를 접했을 때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버거워 외면해왔던 슬픔과 그리움이 다시 되살아난다. 「빛과 물방울의 색」 연수는 동생 연후가 집을 나간 뒤 동생이 누군가에게 보내지 못했던 편지를 읽으며, 또 동생의 짝사랑 상대인 주영의 행적을 좇으며, 동생이 겪어왔던 고민과 고통을 이해한다.「고요한 열정」
주인공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불분명한 성별로 인해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이제 나는 '나'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들의 성별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때때로 불확실하고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관계, 감정들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각자의 길을 걷다가 혹여 운명처럼 만나면 또 다른 빛으로 반짝일 수 있겠지, 우리는 같은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