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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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단공포증에 걸려 조직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은 조직의 중간 보스. 이노 세이지.

후배가 치고 올라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실수를 거듭하는 메이져급 서커스단의 공중그네 플라이어. 야마시타 고헤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지키고 살아가느라 숨이 막힐 지경인 대학병원의 대학강사 이케야마 다쓰로.

실패를 모르고 엘리트코스만을 밟아 온 프로야구 최고의 3루수 반도 신이치에게 찾아온 입스(yips).

작품성과 흥행성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 강박증에 걸린 베스트셀러 여류작가 호시야마 아이코.


모양과 증상은 다를지라도 이들은 모두 무한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이들을 치유의 길로 이끄는 유쾌한 신경과 전문의 이라부 이치로와 F컵 간호사 마유미는 현실속의 우리에겐 판타지 같은 존재다.

그들의 순수함, 거짓 없음. 엉뚱함, 악의 없는 장난기. 비타민 주사는 사소한 강박증 한두 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우리들에게 아주 신선한 처방전이다.


블랭킷 증후군을 앓는 상대조직의 보스와 대면하는 자리에 동석하기도 하고, 직접 공중그네 서커스의 플라이어가 되기도 한다. ‘튀김덮밥 1가 놀이’를 사주하기도 하며, 함께 캐치볼을 하기도 하며, 제 멋대로의 걸작을 써 내기도 한다.

이 엉뚱하고 제 멋대로 인 처방전에 환자들은 당황해하고, 반신반의하지만 약물이나 온갖 어렵고 현란한 수사로 포장된 처방 대신 자신의 삶 속에 직접 들어와 어려움을 함께 해 준 이라부의 치료법으로 인해 그들은 구원된다.


이라부의 이 끝없는 유쾌함은 어디로부터 나왔을까?

이라부 이치로. 종합병원원장 아버지를 둔 덕분에 적어도 어릴 때부터 물질의 부족함으로부터는 자유로웠을 것이다. 호텔뷔페에 가도 뭘 먹을지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등록금 고민 같은 건 자신에겐 ‘해당사항 없음’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제적인 자유로움은 그에게 사회적 제도와 허식들에 대한 자유도 아울러 가져왔을 것이다. 이라부식의 유쾌함과 통쾌함, 거침없음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에게서는 분명 찾기 어려운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리라.

이런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잠시라도 지독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벗어나 사소한 일탈과 억눌려 있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이라부만의 독특한 처방전은 알게 모르게 경쟁과 효율성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당하는 우리에게 안식을 준다.

언뜻 유쾌하기만 하고 재미있기만 한 소설 같지만 공중그네의 미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한다.


서커스의 공중그네 묘기에서는 자신을 받아주는 상대를 믿지 못 하거나 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독선이 끼어들게 되면 결코 훌륭한 묘기를 보이지 못한다. 아니 안전그물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공중그네’는 공익이라는 이름의 광고 속에서 ‘당신의 경쟁무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내 주위의 사람들이 경쟁상대가 아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임을 깨닫게 해 준다.





“다시 한 번 성격을 바꿔보면 어때? 아침마다 간호사 엉덩이를 더듬는다거나.”

“바보 같은 소리. 성희롱이라고 난리칠 게 뻔하지.”

“그럼 책상 서랍 속에다 장난감 뱀을 몰래 숨겨둔다거나.”

“간호사센터에서 항의할 텐데.”

“그런 행동을 1년 동안 계속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p . 150~151 ‘장인의 가발’ 중에서)


“... 하지만 순조롭게만 지내온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는 게 많은 법이야. 내가 줄곧 2군 생활이었던 건 알지? 그들 중에도 입스는 있어. 인코너를 못 치는 녀석, 견제구를 못 던지는 녀석, 개중에는 투수한테 공을 못 던지는 캐처까지 있다구. 네가 스로잉 입스를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때, 난 절실하게 느꼈다. 아아, 반도 신이치는 이제껏 다른 세상을 살았구나. 밑에서 악전고투하는 무리는 보이지도 않았던 거구나, 라고.”

“사람을 그렇게 냉혈인간 취급하기냐!”

“내 말이 맞잖아.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 (P . 208 '3루수‘ 중에서)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어제 사쿠라가 한 말이 큰 격려가 되었다. 반성도 했다. 자신의 작은 그릇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심각한 일들에 비하면 작가의 고민 따위는 모래알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사라진대도 상관없다. 바람에 날려가도 괜찮다. 그때그때 한순간만이라도 반짝일 수 있다면. (P . 304~305 '여류작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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