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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아내가 죽었다.
아내는 뒷마당에 심어져 있는 사과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그때 아내는 임신 2개월째.
왜? 왜? 그녀는 사과나무 위에 올라갔을까?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누구도 아내의 추락을 목격하지 못했다.
아니다. 목격자가 있긴 하다.
애견 ‘로렐라이’.
나는 언어학자.
나는 ‘로렐라이’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아내의 돌연한 죽음을 앞에 두고 폴은 그 이유를 캐기 위해 자신이 기르던 개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려 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돌연한 죽음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그 것 뿐이다. 폴에겐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만이 렉시의 죽음으로부터 그를 구원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다.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동안 폴은 렉시와의 사랑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 본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으며, 어떻게 사랑을 키워갔고 어떻게 갈등했으며 어떻게 서로를 이해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폴은 렉시가 살아 있을 때 보다 더욱 더 렉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폭이 깊어짐을 느꼈을 것이다.
렉시에 대한 자신의 사랑의 감정이 더욱 확실해 질수록 폴은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에 집착한다. ‘왜’라고 묻지 못하는 자신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라고 여기는 듯.
폴은 과연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일까? 내 생각엔 그 답은 ‘아니오.'다.
폴은 이미 렉시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을 뿐.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과정은 렉시와 자신에 대한 속죄의 의식이었을 뿐이리라.
폴은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침으로 그들에게 사랑이 존재했음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깨달음이란 항상 뒤늦게 오는 것이라 렉시와 다시 손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야 깨닫게 된 자신의 부족함을 원망하면서. 또는 늦게라도 깨달았음에 감사하면서.
그들이 서로 사랑했음에 위안하면서 말이다.
잠든 그녀의 숨소리도 기억난다. 그녀가 내 삶에 슬픔뿐만 아니라 위안도 안겨줬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늘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사이에 있던 어두운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도, 너무 환해서 똑바로 바라볼 수 없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그 여인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려 노력한다. 슬픔에 위안이 되게 내 마음대로 짜 맞춘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 시간이 흘러, 용서라는 약이 갈라지고 찢긴 내 가슴을 씻어줄수록 나는 알게 된다. 그녀의 본모습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내가 우리 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임을. (P. 348 책의 마지막 단락.)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DVD를 보면 본 방송에서 삭제 된 장면이 나온다. 그중 한 장면을 인용 해 본다. ‘바벨의 개’를 읽으면서 드라마의 그 장면이 계속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바벨의 개’가 쉬이 읽혀 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폴은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졌어야 했다.
폴은 렉시에게 ‘왜’ 그랬는지 물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에게 ‘왜’라고 물었어야 했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이 뇌종양에 걸린 사실을 알고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연인과 여행을 떠난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연인과 나누는 대사.)
복수 : 내가... 너무 아빠 가까이 있나? ... 그래서 이렇게 미운가, 아빠가?
경 : 네.
복수 : 근데 난 먼 아빠를 보기가 싫으네... . 가까운 아빠는 증말 귀여었는데...
경 : 먼 아빠는 잔인하고 어리석구요.
복수 : 우리 아빠 그런 사람 아니에요.
경 : 한 사람 사랑 안에, 어뜩케 따뜻하구 현명한 것만 있나요? 잔인하구, 어리석은 것두 있지... . 아빠가 왜 그랬는지 묻지 말구, ... 사랑이 왜 그런지 물어요.
사랑아, 길을 묻는다. ‘... ...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