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소설에 비해 단숨에 읽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저 애영, 혜서, 민주, 진혁을 뒤따라가며 이야기의 연결고리 속에서 과연 나는 내 인생의 최단경로를 혹은 보이지 않는 그 길에 대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다양한 경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가장 손쉽게 그리고 최단 경로를 바란다. 예상밖의 길을 우리는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거나, 혹은 제시된 길을 통해서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자들, 그리고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갔을 때 우리는 그것을 탓하기 바쁘다. 그것을 소리없이 채찍을 하는 게 이 소설이 아닌가 싶다.
결국엔 나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직업, 적당한 상황에서의 적당함을 누리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것들만으로 강구했는지 모른다. 간단한 길찾기에서조차, 과감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우리는 더 이상 길을 잃는 시대를 살아가지 않는다. 길을 잃으면 지도를 못 보는 자가 한심해보이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그 안에 깃든 새로움과 결국엔 다 이어져 있다는 것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민주든 애영이든, 그리고 혜서와 진혁이 결국엔 연결되어 있고 뜻하지 않게 만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독하게 진부하기에 소설 속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무슨 일이든 벌어지기 바라는 심정에서" 우리는 때로는, 새로이 해석하고 알아야 할 것들을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른다. 미술가로 살아가는 애영은 우리의 삶을 닮아 있다. 기약없는 일들. 그 불안함에 우리는 가장 최적화된 길들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거일수도. 그 길이 처음부터 잘못된 줄도 모른채로 말이다. 그래도 시작된 우리의 삶은, 혜서처럼 누군가의 흔적을 따라가며 노력할 것이다. "목적지는 늘 같았지만 그래도 늘 새로"웠고, 새로울 것이며, "매번 같은 곳을 매번 다른 경로로 찾아가는 게 즐"겁다는 것도 깨닫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이런 걸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어떤 걸요?"
"무언가 새로운 걸 한다는 거 말이죠. 학교에 등록하는 것도 그렇고,
새 직장에 들어간다든가, 뭔가를 지속할 의지가 있다는 뜻으로 보이니까요."
마음에 소설의 그림자가 가득하다. 다 다르게 시작된 각자의 위치 속에서 도착지는 같은 지점으로 제일 먼저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의 상황, 각자의 속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나는 지금 어떤 경로로 가는지 질문 속에서 답을 보려는 중이다. 낯선 길이라도 조금은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발길이 닿는 곳으로 차근차근 걸어나가고자 다짐해본다. 읽어나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책장의 마지막에서 전해지는 묵직함은 오래토록 지속된다. 마지막까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 하고 소리가 입가에서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