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룸 소설, 잇다 3
이선희.천희란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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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다시리즈는 처음 읽어본다.
무엇을 잇는다는 의미라고 짐작은 했는데, 동떨어진 시대에 글을 썼던 작가들의 글을 이어놓은 책인 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작가 ‘이선희‘ (1911년 출생)
내겐 생소한 작가였으나 그 당시 그녀는 엘리트 출신의 기자겸 여류작가로 활약했다. 이 책에 실린 두 개의 소설중 하나인 ‘여인 명령’ 또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 중 하나이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똑같이 어둠이 왔다. 그 어둠은 도적과 같이 왔다. 이러한 것은 눈으로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눈치로 올개미질해서 잡는 것이다. 그와 나는 이 도적과 같이 임한 어둠을 가운데 두고, 오랫동안 술래잡기를 했다. 진실로 우리의 애정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단히 싱거운 수작 같으나 이것을 몸소 찍어 맛을 본 남자나 여자에게 있어서는 실로 깜짝 놀라고야 말 진리가 될 것이다.” (소설 ‘계산서’중)

이선희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의 삶은 대체로 혹독하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거나, 신체 불구가 되거나 세간의 질타를 받는 입장에 처하기 일쑤다. ‘계산서’ 속 여주인공도 임신한 아이가 잘못되어 한쪽 다리를 절단하면서 남편과의 불화가 시작된다. 위에 공유한 문장은 그 부부간의 보이지 않은 실금을 감정을 실어 표현한 것이다.

“나는 길바닥을 거의 톱질하듯 걷다가 가로수 등거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숨을 돌렸다. 일찍이 그처럼 유쾌히 헤엄치던 이 거리를 지금 나는 무디게 톱질하는 것이다.”

근대화가 시작되는 과도기를 살아간 이선희 작가의 삶 또한 평탄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불평등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현실을 비판하며 이상적인 세계로의 탈출구를 탐색했다.

📝100여년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참 재미나게 읽었다. 당대 사회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했으며, 등장인물들의 심리 또한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중요인물들의 급작스런 죽음 또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 ‘천희란’ (1984~)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요즘작가 ’천희란‘의 작품 ’백룸‘은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하는 공포게임을 소재로 이야기를 끌어낸다.
무한히 반복되는 듯한 방들이 있는 집안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출구를 찾다가) 느닷없이 죽게되는 공포게임. 사실 나는 처음에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무슨 재미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게임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닌 게임 플레이어를 3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아주 폐쇄적인 공간에서 두려움을 떨며 출구를 찾아다니는 심장 쫄리는 시간들을 공유한다.

사람들은 어쩌면 답답하고 힘든 자신들의 모습을 화면 너머 가상의 캐릭터에 투영하여 관찰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떨쳐낼 수 없는 내 자신을 제2의 자아로 연민을 느끼며 그 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누군가 듣기를 바라는 혼잣말, 누가 들어도 상관없는 비밀,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 절규, 세상을 바꾸는 분노, 도저히 바로잡히지 않는 부정의, 너무 많은 연대, 너무 많은 단절,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강박….그런데 누굴까. 그녀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천희란 ‘백룸’)

폐쇄된 그 백룸이란 공간에서 탈춣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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