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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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제목만 봤을 때는 소설일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과학이나 심리학 분야에 이렇게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은 수십년간 연구원이자 가족심리상담사로 일해온 저자가 4천여명의 사람들을 상담하며 얻어낸 ‘모호한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 해결법을 담은 심리서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인 상실’과 ‘모호한 상실’사이의 차이점부터 알아야한다. ‘일반적인 상실’은 공적인 절차 — 사망진단서, 장례식, 매장이나 화장 —등과 같이 확인된 죽음을 말한다.

반면, ‘모호한 상실’은 죽음이 불확실한 상태거나(실종이나 가출 등) 육체는 존재하나 심리적인 부재를 갖고 있는 경우다. (일중독, 치매, 무관심 등)

인간은 (특히 현대인들은) ‘확신’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계획된 미래, 예정된 결과들만이 그들의 심리 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나 알아낼 수 없는 상태 등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며, 그러한 상황들을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관계갈등까지 유발하기도 한다.

그 어떤 상실 중에서도 이 ‘모호한 상실’은 정확하게 규정할 수도 없고, 불분명하게 남기 때문에 가장 치명적이기도하다.

전쟁중에 실종 된 군인들이나 실종된 자녀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경우, 평생 그들을 우울과 불안으로 가둬둘 수 있다. 그들은 희망과 절망을 마음속에 공존시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과거를 붙들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무미건조해진 부부관계’나 ‘소통이 줄어든 부모 자신간의 관계’등이 더욱 위험한 상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우는 실체는 있지만 심리적인 부재가 발생한 경우다. 일중독에 빠진 남편이 배우자와 함께 하는 공간에서조차 공감과 대화가 전혀 없다면 그 배우자는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혹은 사춘기 자녀들의 ’대화거부‘나 ’동행회피‘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심리적 상실‘은 우리의 일상에 은밀하게 퍼져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지각하기가 힘들수도 있다.

가족간의 ’심리적 부재‘는 서로의 생각 차이로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모호한 상실은 부부나 가족의 명확한 경계를 흐리게 하며 가장 친밀한 관계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누가 경계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 불분명하다. 공포와 분노가 혼란스럽게 뒤섞인다.”(p.136)

“대화는 종종 우리를 모함에서 비롯된 복잡한 감정으로부터 구해준다.“(p.146)

’모호한 상실‘은 어쩌면 별거 아닌 문제일 수도 있다. 미네소타 북부 지역에 사는 아니시나베 여성들(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은 어떠한 상실 앞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그들은 모든 상황을 자연의 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결과를 수용한다. 질병이나 죽음조차 자연의 순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적/심리적 부재로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호한 상실이 꼭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부정은 피할 일도 아니고 지지할 일도 아니다. (중략) 분명한 것은 심리 분석이나 심리치료 등의 혜택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반응은 잘 인식할 수 있으며,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건강한지 부정적인지 자신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모호한 상실에도 불구하고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를 제시해주는 것은 낙관주의와 현실적인 사고의 결합이지만,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와 더불어 전문적인 공동체로부터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p.189)

모호한 상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상실을 완전하게 해결하려는 욕망부터 버려야하고 자신의 상태와 위치를 잘 파악해야한다. 나에게도 ’모호한 상실‘이 내제되어 있는지, 그로인한 고통과 어려움이 동반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한다.

과연 나에겐 어떠한 ’상실감‘이 존재하고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과 질병에 관한 상실로 고통받고 있으신 분들 역시 이 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분명함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한 상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p.278)

소홀하게 지나칠 나의 일상과 관계들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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