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상자에 짐을 싸고 있으려니, 물건 하나하나에 12년 동안의 추억이
어려 있어 그만 감상적이 되었다.
처음 독일 땅을 밟던 날, 불안한 마음으로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던 일, 다락방 문을 처음 연 순간과 이 나라에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도쿄로 갔을 때의 기분과 공기까지 떠올랐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일의 연속이었고 어린애처럼 호기심에 차 있었다.
나는 이 나라에 있는 동안 적지 않은 성장을 꾀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 환경은 점점 변해 갔지만,
새롭다고 여겨지는 것도 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거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몸에 새겨져 있는데 내가 잊고 있을 뿐이었다.-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