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롤린 엠케 저, 정지인 역, [혐오사회], 2017, 다산초당


혐오(Hass, Hate)가 만연한 사회. 지금 이 시대의 사회 모습이 아닐까.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일상에서 혐오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네이버뉴스댓글을 봐도, 페이스북을 봐도, 트위터를 봐도 혐오는 차고 넘친다. 심심하면 IS소행 테러가 일어나는 유럽에서는 이슬람혐오가 넘치고 있고, 미국에서는 대안우파(alt-Right)가 득세하고 있다. 태평양 너머, 아시아 대륙 너머 저 멀리에 있는 소식까지 갈 필요가 없다. 당장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 논쟁과 성소수자혐오 논쟁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이민자혐오 문제는 이미 논쟁 축에도 못 낄정도로 일상화되어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노동현장에도 고용형태에 따른 혐오가 일상화된지 오래다.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원제: Gegen den Hass)에서 유럽 사회 특히 독일 사회에 급속히 퍼진 (것으로 보이는) 혐오 문제부터 살펴본다. 2016년 2월 18일, 독일 작센 주 클라우스니츠 지역에서 무슬림 난민이 탑승한 버스에 100여명의 군중이 진입로를 가로막고선 난민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p.60) 에서 시작한 의문은 "분노가 발생하고 표명되는 특정한 맥락"(p.76), "현실의 협소화"(p.77) 등의 특징을 살펴보고, "증오의 공급자"(p.89), "공포의 부당이득자"(p.90), "증오를 방조하는 자"(p.93)들을 통하여 "증오에의 공모"(p.95)가 일어난다고 논증한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묻는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p.102)

구약성경 판관기(사사기) 제12장에는 에프라임으로 가는 요르단 강 건널목을 점령한 길앗인(길르앗인)이 에프라임인(에브라임인)을 판별하여 잡아 죽일 때 "시뽈렛"(시볼레트Sibbolet)이라는 발음을 하느냐 못 하느냐로 판가름한 이야기가 나온다. 엠케는 이 성경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정치운동들은 유난히 자신의 정체성을 동질적인 것, 본원적인 것, 또는 순수한 것으로 규정하기를 좋아한다"(p.138)는 것을 포착하여 이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이 어떻게 혐오와 폭력를 생산하는지 추적한다. 그들의 주장을 파훼할만한 반론은 무엇일까? 엠케는 장 뤽 낭시의 말을 인용하며 "개인성은 서로 함께하는 관계, 서로에 대한 관계 안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 실현될 수 있다"(p.211)고 하면서, 따라서 "한 사회 내의 복수성은 개인이나 집단에게서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보다 먼저 그 자유를 보장한다"(p.222)고 역설한다. 즉,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을 고집하는 집단의 주장은 허황된 소리라는 것이다. 엠케는 더 나아가 "혐오와 증오의 틀은 현실을 유난히 협소하게 묘사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형성된다"(p.242)면서, "부족한 상상력은 정의와 해방의 막강한 적대자"(p.244)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의 여지를 다시 넓혀주는 진실 말하기"(p.244)라고 말한다. 따라서 엠케는 민주적이고 열린 사회를 추구한다.

엠케는 이러한 혐오 현상에서 무엇을 가장 위협적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건 바로 증오 뒤에 있는 "광신주의적 풍토"(p.24)라고 지적한다. 이 풍토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점점 더 근본주의적으로 거부하며,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한 혐오와 멸시가 계속 심화되고 확대되면 결국 모든 사람이 해를 입게"(p.24)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엠케는 "증오로써 증오에 맞서는" 방법을 거부하며, "정확환 관찰과 엄밀한 구별과 자기회의로써 대응"(p.25)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즉, 증오의 근원을 공론장으로 끌어내어 하나하나 해체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주장이 가진 힘을 파훼하며 맞서야 한다는 게 엠케의 방법론이다. 따라서 엠케는 머릿말 말미에서 "문명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p. 27)을 강조하며, "증오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고립되지 않는 것"(p.28)이기에 "공공의 공간을 다시 열기 위한 움직임"(p.28)이 필요하다는 것을 책 전반에 걸쳐서 호소한다.

누군가는 엠케가 제시한 해법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 책은 유럽 사회의 이야기일 뿐 우리 사회와는 다르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혐오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은 읽어보고 심도있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카롤린 엠케가 추구하는 공론장의 모습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