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됨을 후회함 - 모성애 논란과 출산 결정권에 대한 논쟁의 문을 열다
오나 도나스 지음, 송소민 옮김 / 반니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을 하고 후회하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와 그런 그들의 고달픔에 공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지만,
아이를 낳고 후회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좀처럼 들어보기 힘들다.
만약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그건 여성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게 아니라 여자를 악마화시키고 비난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 사람은 결혼한 걸 후회한대' 라는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은 일단 그 이유를 듣고 싶어할 테지만, '그 여자는 자기 애를 낳은 걸 후회한대.' 라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자동반사적으로 판결을 내리려고 한다. '어떻게 엄마가...!!'
엄마됨에 대한 후회를 금지하는 감정규칙
이스라엘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후회는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고 무언가를 형성하고 느끼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감정일까?"
오나 도나스는 이 사회에 '감정규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감정규칙은 한 개인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규정하고 규제한다. 사람이 죽으면 슬퍼야 하고, 결혼을 하면 기뻐야 하고 또한 아이를 낳으면 행복해야 한다는 것. 이런 규칙들은 어떤 상황에 마주해 개인이 고유하게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억누르게 하고 사회적으로 승인 받은 단일한 감정만을 표출하도록 한다. 출산을 장려하고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아이를 출산한 여자들에게 오직 긍정적인 감정들만을 허락한다.
'후회'라는 감정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를 지키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사회의 기대를 저버린 행동 - 흡연, 거짓말, 비혼, 낙태-에 대한 후회는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지만, 결혼이나 출산 등 정상 이데올로기에 대한 후회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다. 결혼하지 않은 삶, 아이 없는 삶, 낙태경험에 대한 후회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감정이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여성들도 이 '후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낳도록 몰린다. 이 두려움은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되고 싶은 욕구를 타고 났고 출산을 해야만 여성으로서의 삶을 완성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결여'된 인간이라는 사회적 압박에 의해 조장된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것 이외의 길을 찾을 수 없어서, 그것만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별 다른 고민 없이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그 경험을 후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혀진다. 모성을 신성시하는 사회에서 엄마됨을 후회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도덕적인 지탄의 대상이 된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개인이 느끼는 온갖 양가적인 감정들은 모성에 대한 견고한 신화에서 비롯된 비난 앞에서 억압된다. 여성으로서의, 엄마로서의 삶에 전연 무지한 사람도 '어떻게 엄마가..!' 라는 말 한마디로 한 여성이 아이를 기르며 느낀 온갖 감정들을 일축시킬 수 있다. 그만큼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사회가 가하는 억압은 뿌리가 깊고 강력하다. 엄마됨을 후회한다는 감정은 정당하지 않은 것, 물리쳐야 하는 것, 또는 원칙적으로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전면 부인된다. 왜냐면 엄마들의 후회는 사회 질서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오나 도나스는 엄마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26~73세 사이의 유대인 여성 23명을 인터뷰하며 지금까지 금기시 되어왔던 '엄마됨을 후회함'이란 감정을 끌어내 보인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이 두려워 인터뷰를 피했고 참여한 여성들도 자신의 신원을 절대 밝히지 말 것이란 조건으로 인터뷰를 승낙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과 느낌에 대한 그들의 생생한 증언은 '엄마됨을 후회함'이란 감정을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나에게도 생경하게 다가오는 충격이었다.
Q)"과거에 지금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면 여전히 엄마가 되겠습니까?"
스카이(15세~20세 사이의 자녀 2명, 20세~25세 사이의 자녀 1명) :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아이를 낳지 않을 거에요.
도렌(5세~10세 사이의 자녀 3명): 이 말을 하는 것이 끔찍하게 고통스럽고 아이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을 거지만, 나는 완전히 아이들을 거부해요.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에요.
데브라(10세~15세 사이의 자녀 2명):아이들은 사랑스럽고 놀라운 존재고 믿을 수 없는 선물이고 내 인생의 또 한 차원을 열어주었지만, 만약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길로는 두 번 다시 접어들지 않을 거에요.
오델리아(1~5세 사이의 자녀 1명) : 아이를 가진 게 나로서는 실수였어요. 그래요, 실수였죠, 아이를 낳는 건 의무였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싶어요. 인생 계획이 있어요. 때문에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일,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후회해요.
이외에도 인터뷰이들은 지금 같은 통찰력과 주변의 지원이 있었다면 -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이 주변에 받아들여졌다면- 엄마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들과 엄마가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분명하게 구별해줄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감정과 아이들에 대한 감정의 구별이다. 그들은 아이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유대감을 느낀다고 강조한다. 다만 자신이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 엄마라는 위치에 있다는 게 싫다는 것이다. 후회는 아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자녀가 없는 상태를 동경하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후회는 '엄마라는 위치'와 관련된다. '나는 엄마라는 역할이 싫다' 라는 것이 인터뷰에 참여한 모든 여성들의 공통적인 메시지였다.
그들이 한 말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기 위해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성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그 아이의 보호자로서 살아야 한다. 항상 남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 단 한 순간도 온전히 나의 삶을 살 수 없으며 항상 남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박감이다. 그들은 말한다. 아이를 가진 이후로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 인터뷰이는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돌이킬 수 없는 것. 노예화되는 것. 혹사당하는 것"
그런데도 왜 아이를 낳았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들은 자신을 몰아세우고 부추겼던 사회적 압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니나는 되돌아봤을 때 분명한 것은 인생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는 것.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정하지 않고 끌려다녔다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데브라는 아이를 갖는 다는 것 자체가 여성으로서 이 사회에서 주류에 속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정답 칸에 체크했으니 더 이상 모든 전선에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는 것" 이다. 또한 대부분의 여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될 까봐, 적응하지 못하게 될 까봐 두려워 다들 하는 길을 따라갔고, 큰 고민 없이 아이를 낳는 걸 선택했다고 말한다.
우리 중 하나가 태어나면 다른 하나는 땅에 묻힌다. 수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출산함과 함께 이전의 정체성의 해체를 맞이하고 혼란을 겪는다. 오나 도나스는 사회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을 결함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반면, 아이를 낳은 여성들은 오히려 출산 전의 삶이 더욱 풍부하고 만족스러웠으며 엄마가 됨으로써 결함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는 점을 밝힌다. 많은 여성들에게 출산의 경험은 완전함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충만함의 상태에서 공허함의 상태로의 이행이었다는 것이다. 출산 전에는 상대적으로 성구별에 구애받지 않았던 반면, 출산 후에는 여성성에 완전시 귀속되어 버린다. 여성들은 사회가 추구하는 모범상의 덫에 걸려든다.
또한 엄마가 되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차별받고 자랐거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배가 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자신이 불행했던 옛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고통받는다. 과거에 묻어두고 싶었던 기억들이 자식을 통해 다시 연속적으로 현실에서 벌어지면서 괴로움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기 보다는 억압적인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고 원래의 부조리를 더욱 첨예화하고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오나 도나스는 엄마가 된다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 지속적인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들과 여성에게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일로 간주되어온 엄마가 되는 일이 실은 여성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살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모성애로 가득한 어머니, 창조의 기쁨에 젖은 어머니, 아이를 안고 행복에 겨운 어머니의 모습을 끊임없이 생산하며 어머니들에게 감정적인 압박을 가한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면 당연히 아이를 가진 것에 최고의 행복을 느껴야 하며, 그걸 후회한다면 어딘가 도덕적으로 비정상적이고 결함있는 여자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나는 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내게 항상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 내 삶에 '아이'라는 것이 끼어드리란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다.아이가 있는 삶이 어떨지 스치듯 잠시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그건 나에게 맞는 삶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으로 매번 이어졌다.
나는 나만의 삶을 살기에도 벅찬 사람이니, 남을 보살피기 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평생을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신념이 있었는데도 종종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신성한(!)일이고 새로운 삶의 단계에 들어서는 일인데 그걸 경험하지 않는다는 건 미성숙한 채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아이를 낳아야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진리와 아름다움이 있고, 그걸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불행한 게 아닐까...
그런 와중에 이 책의 등장은 내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후회하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금기'처럼 묶여있는, 사회문화적 압박으로 깊숙한 곳에 숨겨져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그리고 읽고 난 감상은 '역시!'이다. 왜 모든 여자가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다음 세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의무를 당연하게 짊어져야만 하는가. 그건 너무도 무거운 짐이다. 한 사람의 독립과 자유를 빼앗고 남은 여생을 타인을 위한 노동과 책임에 종속시켜버리는 무서운 일이다. 이 사회는 여자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그것의 어두운 면을 인정해야만 하고, 여자들에게 그런 짐을 당연한 의무로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만 한다.
엄마로서의 삶을 낭만화하려는 사회의 이데올로기 공격이 거세어질 때마다, 이 포스팅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http://blog.naver.com/aquma09/220942210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