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대한 장편소설의 조건이 완벽한 구성도, 치밀한 전개도, 빈틈없는 문장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소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감당해낼 힘이 없어 환상의 세계로 달아나거나 자신만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소설들과는 달리,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는 작가의 패기가 인상적이었다. 시대 전체를 아우르며 이에 맞서는 문제적 인간의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 들어간 소설이 21세기에 또 있었던가? 거대 서사가 소멸하다시피 한 작금의 현실에 아주 드문, 고전적인 위엄을 지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교양을 쌓아도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극복할 수 없었던 이브, 이념으로 단단히 무장해도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폭력성을 다스릴 수 없었던 아이라, 혼돈의 시대를 뚫고 나가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하지만 결국 그 신념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게 된 머리 선생님, 자신의 새로운 아버지를 찾아 이리 저리 방황하다 결국 산 속에 은둔하고 마는 화자 네이선. 한 명 한 명의 인물이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무겁고 강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필립 로스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할 만한 심리학자인 것 같다. 그는 한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를 꿰뚫어보고 그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어떤 것을 무기로 취하고 그 무기가 어떻게 그를 도리어 파멸시키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어떤 이유로 서로 관계를 맺고 어떻게 서로를 배신하는 지를 알고 있다. 인물들은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 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모든 노력은 수포로 끝나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고 만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채 헐벗은 무릎을 끌어안고 덜덜 떨던 벌거숭이의 자신으로.

특히 주인공 아이라 린골드는 문학사상 한 전형으로 기록될 만한 문제적 인간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념에 충성한다는 의미에서 얼마 전에 읽었던 로맹 가리의 『레이디L』의 아르망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지만, 아이라가 훨씬 더 다면적이고 상충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죄와벌의 라스꼴리니꼬프와 같은 이상주의자이자 살인자이며, 그의 육체적 강인함과 정욕, 열정은 카라마조프가의 드미뜨리와 같고 남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이념으로 주워 삼고서 실천에 옮기는 행동력은 스메르쟈꼬프와 같다. 또한 그는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에 비견할 만한 야심가이기도 하다. 미천한 자신의 과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쓰다 이브 프레임이라는 스타 여배우를 만나 결혼하는 과정에서 그는 신분상승의 쾌거를 이룬다.

필립로스는 한 명의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욕망을 한 몸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상충되는 욕망들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지, 그가 하는 말과 그 자신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그리다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가 단 한 문장으로 '처리'되어 버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제목은 아이라의 아내였던 이브 프레임이 그들의 결혼생활이 실패하자 홧김에 그를 공산주의자로 고발하며 써낸 책이다. 그녀는 단순히 화풀이로 그를 매도했지만, 각종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매카시즘을 이용하여 아이라를 낙인찍고 사회에서 축출하여 자기 권력다짐의 발판으로 삼는다. 각자의 욕망에 의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이용되고 또 그것이 단순한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한 인간을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버리는지를 소름끼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걸 읽고 현대소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이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를 이 시대를 대표하는 4대 미국 소설가로 꼽았다는데 그들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영화화된 작품도 많고 이미 제목을 알고 있던 소설들도 꽤 있었다. 읽고 싶은 대작들이 많아져서 설레인다.

 

 2013.12.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