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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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은 브랜드화 되어버린 것 같다. 원두 질이 안 좋고 맛없어도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이미지와 분위기 때문에 잘 팔리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처럼, 그저그래도 잘 팔린다.

 

기본적으로 재미있고 문장도 깔끔해서 읽는 맛이 있는 하루키 소설이지만, 다자키 쓰쿠루는 재탕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한다. 단순히 했던 말 또 한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기 세계가 강하고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해서 어느 정도 작품의 주제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도 허구헌날 자연타령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 할아범의 작품들은 모두 다 좋다. 재탕이라도 기존에 다뤘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평과 상상력을 보여줬다면 상관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다자키 쓰쿠루는 한 번 추출하고 난 원두 찌꺼기에 물만 콸콸 부어서 내린 바람에 원재료의 맛이 다 흐려진, 말그대로의 재탕이었다. 하루키 문학 세계의 후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일단 주인공부터가 그렇다. 다자키는 언제나 하루키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체 건장하고 유복한데다 청결하고 여자가 부족하지 않은 30대 남성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지만 이전보다 훨씬 나약하고 소심하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서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만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고서도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좌절해버린다. 대학시절에 마음을 나누게 된 유일한 친구 하이다에게서 연락이 끊겼을 때도 먼저 연락해서 이유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또 다시 버려졌다며 벌벌 떨고 있기만 한다. 소설을 보는 내내 그런 소심함과 찌질함에 너무 답답했다.

 

이야기를 해결하는 방식도 안이했다. 그가 17년만에 친구들과 재회하여 알아낸 절교의 이유라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다. 누군가와 인연이 틀어지거나 끊어질 때는 소설과 같은 극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 한창 함께 잘 놀던 친구모임이 뿔뿔이 흩어지는데도 딱히 이유가 없다. 각각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서로 사는 세계가 달라지며 서서히 멀어진다. 대학진학을 위해 다자키가 혼자 도쿄에 가게 되었다면 인연이 끊어질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더군다나 다자키는 항상 자신만 색채가 없다는 데 대하여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이름에 색채가 있고 그만큼 개성이 있는데 자신만은 이름에 색채가 없듯 성격에도 아무런 특징이 없고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평범한 듯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다른 존재라고 느낀다. 이 또한 하루키 소설의 인물들에게서 언제나 찾아볼 수 있는 아웃사이더적 경향이다.

 

이런 설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다자키가 스무살 때 친구들에게서 소외되었다면, 사실 진짜 이유는 그가 혼자 도쿄로 상경해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데다 원래부터 어딘가 색채가 흐릿하고 어딘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아이였기 때문인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무슨 힐링소설처럼 예전에 그가 소외된 게 그의 결점 때문이 아니라 악령에 사로잡힌 여자의 히스테리 때문이었다고 밝힌 후, (그는 무고하다) 다자키에게 어딜 가든 남자 : 다자키, 사실 나는 너를 정말 좋은 녀석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여자 : 다자키, 사실 난 널 좋아했었어”(그는 사실 인기 있는 남자였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식의 위로의 말이나 듣게 한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그의 소설이 현실과 너무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환상적인 요소나 비현실적인 장면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환상은 현실보다 더 진실을 잘 드러내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그야말로 판타지였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로 드러낼 수 없는 영역의 진실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그런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자체로 환상 같았다. 외롭고 고독한 다자키 쓰쿠루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환상.

 

다자키 쓰쿠루의 문제는 이걸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서 어떤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남들이 괜찮아 우리는 사실 너를 좋아해 라고 말해줘도 다자키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색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하루키소설은 다 이런 주인공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아찾기여행 같은 거였다. 이번 소설도 순례라는 이름을 붙인 여행 형식을 띄지만, 거기엔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떤 새로운 시도도 없다. 그저 늘 하던 여행처럼 환상과 꿈을 형식적으로 가로지를 뿐이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애 쓰는 어설픈 결말부분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하루키 장편의 마지막이 대체적으로 싱겁긴 하지만, 첫 장의 흡입력에 비해 이렇게 큰 허무함을 주며 끝나는 작품도 없었던 것 같다. 다자키 쓰쿠루가 언제든 다시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유령처럼 역을 배회하고 다닐 것 같은 느낌이다.

 

하루키가 지나치게 자기 세계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스타일과 이야기구조에 빠져서 충분히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음내키는 대로 써 버린 것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다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계속 하루키를 읽을 테지만, 이대로 하루키가 매너리즘에 빠져 그저그런 브랜드 커피같은 소설을 써 내는 작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게 단편이었으면 훨씬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예 순례를 떠나지 않고 왜 그때 친구들이 나를 떠났을까를 생각하다 하이다까지 떠난 시점에서 멈춰버리는 게 훨씬 깔끔하고 더 여운있었을 거라고. 대체로 하루키 소설은 장편보다 단편이 훨씬 훌륭하다.

 

* 강간당하는 갸냘픈 미소녀모티프와 누구나 뒤돌아 볼'미인은 아니지만보기에 따라서 미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옷 잘 입고 세련된 성인여자캐릭터는 이제 그만 써먹었음 싶다. 주인공이 맨날 어린 소녀와 성적인 행위를 하는 꿈도 불쾌하다. 하루키가 젊었을 땐 안 그랬는데 늙으니까 욕구불만이 있나 자꾸 소설 속에서 어린 미소녀랑 ㅅㅅ 하는 장면을 그린다. 근데 그게 또 꿈이나 환상이라서 대놓고 변태라고 뭐라 할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하루키 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편 다섯편.

노르웨이의 숲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댄스댄스댄스 /태엽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단편은 다 좋다.

 

 

 

20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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