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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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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괴멸하는 시커먼 우주의 진공. 그리고 어딘가에는 쫓겨 다니며 숨어 있는 여우들처럼 몸을 떠는 두 짐승. 빌려온 시간과 빌려온 세계와 그것을 애달파하는 빌려온 눈. - 149쪽


남자의 손에 소년의 손이 잡혔다. 두툼한 외투와 헐어서 너덜너덜한 신발을 질질 끄는 사이로 바람은 발밑의 재를 쓸어 올리며 귀밑으로 달려들었다. 지구는 여전히 스스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멈춘 지 오래다. 밤과 낮은 그 농도만 다를 뿐 똑같은 무채색이 지배하고 있다. 다시 기침이 시작됐다. 쉽게 멈추지 못할 때가 많다. 남자는 지도를 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는 길이다.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안전한 곳.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그는 알지 못한다. 그의 뒤로는 수많은 길들이 닫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길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자신이 길 위에서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가 품고 있는 불, 바로 소년이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안다. 자신이 태어나서 줄곧 보아온 회색빛 지구. 아빠는 한때 지구가 푸른빛을 띤 아름다운 행성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푸른빛의 지구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빠는 남쪽으로 가는 거라고 말하지만 남쪽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서는 이 여정이 끝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길은 우리를 남쪽으로 안내하지만 길 위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수시로 길을 버렸지만 다시 길 위에서 여정은 시작됐다.


세상의 문이 닫혔다. 남자와 소년은 닫힌 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문이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머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준비된 삶은 길 위에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남자는 소년을 지키기 위해 살았고, 소년은 남자와 함께 있고 싶어서 살았다.


죽음 보다 못한 삶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로드>에서 그려진 세계에서 삶은 끝없는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는 깊은 낭떠러지처럼 보인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모욕이며 고통의 삶. 잔인한 세상에 내 던져진 남자와 아이의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아버지와 자식의 숙명을 보았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내 모습이 보였다. 잔인한 세상에서 내 아이를 지키기에 내 몸은 너무 허약하고 내가 가진 것은 볼품없다. 어린 아이에게 남은 순수한 불, 그것은 세상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맥 매카시는 우리가 어린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을 강요하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잔인하고 무서운데, 그런 세상으로부터 자녀의 눈을 가리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그런 자녀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에도 우리가 가진 건 총알 없는 빈총 밖에 없다. 몸은 점점 지쳐가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진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길, 그 삶은 안전하지 않지만 버릴 수도 없다. 그 길의 저 끝에 있을 행복이 있을까? 아니 우리는 끝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지금을 위해 사는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작은 희망들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자녀의 가슴에 있는 불을 끄지 않는 것, 그것은 스스로 자녀의 희망이 되는 것이고,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절대 저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알아. 미안하다. 내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 늘 그랬어. 너는 가장 좋은 사람이야. 늘 그랬지. 내가 여기 없어도 나한테 얘기할 수는 있어. 너는 나한테 얘기할 수 있고 나도 너하고 이야기를 할 거야. 두고 봐.
제가 들을 수 있나요?
그래. 들을 수 있지. 네가 상상하는 말처럼 만들어야 돼. 그럼 내 말을 듣게 될 거야. 연습을 해야 돼. 포기하지 마. 알았지?
알았어요.
- 315쪽


먼 훗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아이들에게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살아갈 용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세상이 지옥 같다고 스스로 괴물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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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보낸 편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린 로너 엮음, 양희정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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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만에 편지를 썼다. 받는 이는 장모님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편지라는 걸 마지막으로 썼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번에 쓴 편지에는 장모님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민서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담아보았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장모님은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편지를 다 보자마자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각별한 말씀을 전하셨다.

……………………

편지라는 것은 형식상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담아 보내는 공간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부터 답장이 오는 시간까지 그 시간이 길다. 자연히 소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사색의 여백은 넓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특징으로 편지는 독특한 문학 장르로 분류된다. 다양한 서간문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유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가 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로 선정된 이유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람시의 문학적인 감수성과 철학과 역사에 대한 견해, 인생에 대한 자기성찰 등이 때로는 명료하게,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인간적으로 나타나 있다.

많은 독재자들은 저항하는 사상가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 중에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죽거나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죽었다. 그람시의 경우도 10여년의 옥살이에서 얻은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부당한 권력일수록 사상가들의 생각을 가두는 방법으로 가장 손쉬운 감옥을 선택했고, 그람시 역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에 투항하지 않는 대신 감옥을 선택해 죽음을 맞이했다.

파시즘의 행태는 졸렬했다. 그람시의 생각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가두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팬과 종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가 쓴 모든 편지를 검열했다. 그러기에 그는 짧은 편지 안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야 했고, 그만큼 정제된 내용들이 편지에 담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더 많은 팬과 종이가 허락되었다고 하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을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서는 인간적인 고뇌도 담겨 있다. 어린 자식을 둔 아비의 심정이 절절히 담긴 편지에서는 그가 돌보지 못하는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늙은 어머니를 둔 자식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투항하지 않는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는 사상가로서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어머니를 설득하려 했다.

이탈리아 파시즘과 고독하게 맞섰던 사상가 그람시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절판'되었다. 아무래도 읽기가 수월하지 않은 여러 단점들이 이 책에는 있따. 편지글이라는 게 다분히 사적인 내용이다 보니 좀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고, 그람시가 쓴 역사철학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당시의 이탈리아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필요하다 보니 책을 읽어 나가는 게 그렇게 수월하지는 않다. 물론 다양한 각주들이 친절하게 붙어 있지만 각주와 편지를 번갈아 읽어내려가는 번거로움은 술술 읽어내려가는 독서의 즐거움을 방해한다. 마치 냉온탕을 번갈아 오가는 느낌인데, 이런 독서에 길들여지지 않은 독자라면 쉽지 않은 읽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각주를 버리고 읽어나가자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제 쉽게 접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람시라는 인물이 현대 사상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지금 세계에 맑스마저도 석기시대 이야기처럼 치부되고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겠다. 허나 적어도 파시스트에 맞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사상가의 인간적인 면과 문학적인 감수성이 담겨져 있는 책 한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 안타깝다.


……………………

길고 긴 소통의 시간과 사색의 여백이 큰 편지가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낯설고 오래된 통신수단이 되어 버린 편지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당분간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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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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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버지는 홍어다. 얼굴 생김새도 홍어처럼 네모지다. 수컷 홍어의 생식기가 두개라는 데 노름꾼에 건달인 아버지는 이웃 동네의 유부녀와 놀아나 야반도주를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속절없이 기다린다. 바다 깊은 곳에서 산다는 홍어를 어머니는 부엌에 매달아 놓았다. 홍어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피트 하밀(Pete Hamill)의 소설 "노란 손수건"처럼 아버지에 대한 용서와 기다림을 홍어로 표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눈이 온 세상을 뒤덮었던 어느날, 이름도 없이 거지 같이 떠돌던 여자 아이가 들어온 그날에 홍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매질을 했다.  겨울 들판을 들짐승처럼 떠돌던 그 여자 아이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매질을 견뎌 냈다.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삼례란 이름을 붙이고 거두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삯바느질의 주문이나 배달을 하는 바깥 일을 맡겼다. 일을 싹싹하게 잘 하는 삼례와 어머니는 죽이 잘 맞는 듯했지만, 번번이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어머니를 속이는 삼례에게 여지없이 어머니의 매질은 이어졌다. 그렇지만 삼례는 듣는 시늉만 할 뿐 다시 시간이 지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삼례는 사라졌다. 삼례가 떠난 이후의 삶은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제 그 기다림은 특정한 아버지로 귀결되지 않았다. 지루한 산골구석에서 누구라도 숨막힐 듯한 정적을 깨뜨릴 수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했다.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이는 삼례의 전남편과 아버지의 정부와 그 아이, 외삼촌 등이다. 속절없는 기다림의 끝에 아버지는 나타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떠났다. 기나긴 기다림에서 어머니가 절절이 기다린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에 불을 붙인 것은 삼례였을 것이다. 전통과 가부장제에 갇혀 살고 있는 어머니는 마치 날고 싶지만 실에 묶여 날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

어머니는 기다림 속에서 참자유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실체가 드러났을 때 정작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새처럼 날아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유를 찾아 멀리 멀리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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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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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펙’.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졸업할 때만 해도 그런 말은 없었다. 학점이 좀 부족해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점수를 딸 수 있다는 황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던 때였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스펙이 딸려서.”
“스펙을 키워야 해요.”
“거기는 어느 정도 스펙이 되어야 해요.”

스펙 때문에 대학에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다시 학원을 쫓아다니고도, 토익 토플 학원을 다니고, 영어 외에 2개 외국어를 배우느라 머리 터지게 싸우고 있다. 스펙의 내용을 보면 딱히 자기개발과는 다른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추상적인 내용의 구체화에 불과하다. 학원들만 신이 났다. 불과 10여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그들과 나의 괴리는 세대차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큰 간격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20대에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이렇게 대단한 거였을까? 그들은 적어도 이전 세대에 비해 사회가 요구하는 자질(?)과 능력(?)에 구체적으로 반응하고 직접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세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의 수치는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그들은 왜 그들은 자꾸 졸업을 늦추고, 휴학을 필수가 되고,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그러고도 취업 준비로 수개월 심지어 1~2년을 보내는 것일까. ‘스펙’.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졸업할 때만 해도 그런 말은 없었다. 학점이 좀 부족해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점수를 딸 수 있다는 황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던 때였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스펙이 딸려서.”“스펙을 키워야 해요.”“거기는 어느 정도 스펙이 되어야 해요.”

스펙 때문에 대학에 대학원까지 졸업하고도 다시학원을 쫓아다니고도, 토익 토플 시험 보러 다니고, 영어 외에 2개 외국어를 배우느라 머리 터지게 싸우고 있다. 스펙의 내용을보면 딱히 자기개발과는 다른 내용들이다. 대부분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추상적인 내용의 구체화에 불과하다. 학원들만 신이 났다.불과 10여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그들과 나의 괴리는 세대차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큰 간격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20대에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이렇게 대단한 거였을까? 그들은 적어도 이전 세대에 비해 사회가 요구하는 자질(?)과 능력(?)에 구체적으로 반응하고 직접적으로수용하고 있는 세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의 수치는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왜 그들은 자꾸 졸업을 늦추고,휴학을 필수로 선택하고,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면서도 취업 준비로 수개월 심지어 1~2년을 보내는 것일까. 물론 자살 같은극단적인 경우는 언급하지 않겠다. (20대 자살율 또한 만만치 않게 높다.)

이렇게 스펙을 쌓아온 이들의 연봉은 어떨까? 1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우리 경제 규모만큼 늘었을까?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8백만 명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평균은119만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하면 88만원이 된다. 그나마도 세전 금액이다. 따라서 하루8시간을 일하는 20대 비정규직이 한 달에 확보할 수 있는 경제력은 그보다 적다. - <88만원 세대> 197쪽

여성의 첫 출산이 늦어지는 이유 중에는늦어지는 결혼이 있고, 늦어지는 결혼에는 늦은 취업활동이 있고, 늦은 취업활동에는 늦은 대학졸업과 늦은 독립이 자리 잡고 있다.평균 학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 그만큼 대학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도 많아졌고, 휴학이라도 해서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 그나마평균치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실,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를 살다 보니 대학 졸업하자마자 빚더미에서 시작해야 하는 현실, 빵빵한스펙에도 불구하고 88만원의 비정규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도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살고 있는 게 지금의 젊은 세대가 처한 상황이다.

미래 세대의 불행을 저당 잡아 기성세대가부를 쌓는다면, 실패와 좌절의 공포 속에서 보내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이 사회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국가라는존재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얼토당토 않는 사업을 벌여 대규모 재정 적자를 일삼아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부채를더욱 부풀리고 있다.

단지 10여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서는‘요즘 젊은 것들’이라며 혀를 차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젊기 때문에 서툴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으며,버릇없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함께 일을 추진하고 함께 배우며 가르치는 과정보다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생각부터한다. 언젠가 당신도 그 위의 누군가에 의해 쉽게 갈아낄 수 있는 배터리가 될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 생각은 그렇게얄팍하고 가볍다.

지금의 20대에게도 말하고 싶다. 승자독식개별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에 맞서야 한다. 스펙이 아닌 자기개발에 뛰어들어야 하고, 20대를 옥죄고 있는 사회 제도와 차별에싸워야 한다. 지금의 20대의 고통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과 빈곤의 문제로 부의재분배, 복지와 인권이 보장되는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에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정치적 선택과책임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경쟁의 관계가 아닌 협업과 연대의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기업이나 더러운 정치인들에게 생각없는 소비대상이자 없어서 좋은 표 한장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뒤집어야 한다. 당신들은  경제에서 생산과 소비의 주체이며,정당한 투표 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문제 해결에 적합한 정치 세력을 정책 결정권자로 내세울 수 있는 파워가 있고,그런 정치적 선택 과정에서 스스로 세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권리에서 낮잠 자지 마라. 아무도 당신들의 권리를 챙겨주지 않는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가 책에서 말했듯이, 당신들만의 ‘바리케이트와 짱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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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경제학 1 - 부동산의 비밀 위험한 경제학 1
선대인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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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금이 집을 살 마지막 기회일까?

어제(12일) PD수첩의 제목은 ‘2010년 부동산 경제, 아파트의 그늘’이었다. 확실히 부동산, 특히 아파트 경기는 죽어가고 있다. 단순히 겨울철이라는 계절적 요인만 있는 건 아니다. 연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부동산은 이미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던 터라 결코 다시 뛰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미분양이 속출하고 분양가 이하에 나온 매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 내집 마련 절호의 찬스라고 부추기는 언론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정말 지금이 집을 살 마지막 기회일까?’ 여기에 대해 이 책 <위험한 경제학>은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집을 사기 전에 사실 관계부터 바로 보자고 한다.

언론에 나온 보도와 다른 실제 부동산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의 아파트 가격의 흐름을 보여주고,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실거래가’라는 것은 실상 ‘호가’에 불과하며 거래량이 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제 최고점이었던 2006년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거래량이 극히 떨어져 있는 상태-부동산 침체는 지속되고 있다.


저자는 그래서 ‘부동산 시장, 큰 그림을 보라’고 충고한다.

대부분 부동산이라는 아이템에 눈이 멀어 한국의 거시 경제의 흐름, 세계 경제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 한국은 인구 감소 시대, 저성장 시대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흐름이 2010년대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금 잔뜩 껴 있는 거품이 꺼져야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 시장이 확보될 수 있다. 아직 거품이 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정책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현재 투기성 주택 시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강남 재건축 집값 역시 재급락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PD수첩에서도 제시되었지만 강남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많은 이들이 엄청난 은행빚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은행빚에 따른 이자지급액만큼 아파트 값이 올라주지 않는다면, 결국 꾸준히 자산 가치를 까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동산, 막차에 올라타지 말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 하나를 보면 집에 대한 허망한 꿈을 접을 수 있지 않을까?


“A라는 사람이 자기 돈 3억 원과 은행에서 빌린 돈 2억 원으로 5억 원짜리 집을 샀다. 물가 상승률이 4%, 은행 대출 이율이 6%라고 할 때 A가 3년 후 각종 기회비용을 만회하고도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집값은 얼마나 될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A의 자기 돈 3억 원이 같은 가치를 유지하려면 3억 3750만 원이 돼야 한다. 또한 대출액 2억 원의 연간 이자는 1200만원이므로 3년간 이자는 3600만 원이다. 이 두 가지만 해도 7350만원이다. 이 밖에 부동산 거래에 따르는 취등록세와 재산세, 부동산 중개 수수료, 이사 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각종 기회비용은 1억 원에 육박한다. 이는 현재 5억 원짜리 집이 3년 후 6억 원으로 올라야 겨우 본전이라는 뜻이다. 현재 집값 수준에 비해 20%가량 오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주택 시장의 사정상 20%가량 오를 수 있을까?”


연일 뉴스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미분양 사태’. 이 사태는 얼마나 갈까? 저자는 ‘미분양 물양 해소에 최소 4~5년 걸린다’고 한다. 1995년 공식적으로 15만여 호를 넘어선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 최소한 4~5년이 걸렸으며, 지금 16만호가 넘는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는 경기 흐름이나 사회 흐름을 봤을 때 더 걸리면 더 걸렸지 결코 짧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요새 ‘집 장만하려면 대출은 기본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빚 없이 사는 게 행복’이라는 말처럼 대출과 빚이 일반 서민들에게도 일상적인 말처럼 다가오고 있다. 온갖 매체에서 수시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광고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 빚이 없이 사는 게 행복이라는 말도 결코 우습지 않게 들리는 것이다.


저자가 밝힌 또 하나의 진실은 언론과 건설업자의 유착관계다. 지금 당장 TV를 켜보자. 아마 지상파 방송의 광고 중 아파트 광고가 얼마나 되는가 찬찬히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비싼 광고인 TV광고가 이정도인데, 광고에 수익을 의지하는 신문들의 이해관계는 얼마나 될지는 어린애들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언론을 통해 ‘아파트 가격부터 조작되고 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아파트 가격은 실거래가가 아닌 호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역시 아파트 부녀회를 거쳐 만들어진 가격일 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은 이를 알면서도 팩트라며 아파트 가격을 올리고 있다. 왜냐하면 아파트가 죽으면 광고가 죽는 것이고, 광고가 죽으면 언론 특히 거대 신문사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 인사에서 드러나듯이 해당 언론사 임원들의 부동산 투기 이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부동산에 이해관계가 있는 만큼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사실보도는 버려진지 오래고, 기자 정신은 찾아볼 수 없으며, 사주의 딸랑이들로 전락한 조중동 기자들이 아파트 투기를 부추기는 신문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줄기차게 “집을 사라”고 주문하는 신문들의 기사를 아직도 신뢰하고 있다면 당신은 바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 “우리나라는 일본(혹은 미국)과 다르다. 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우리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심리적 기저에 대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심리 역시 경제 흐름에 의해 흔들리는 면이 크다. 또 심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생성되었는지 잘 살펴보면 그 역시 언론에 의해 생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만큼 언론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심리’를 말하는 것 역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말을 퍼뜨리려는 거대 신문사들의 주장에서 비롯되었으며 합당한 논리를 찾아볼 수 없는 꾸며낸 거짓일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불행은 이명박 정부로 귀결된다. 이러한 사태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을 방관, 아니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지금의 정부를 보고 있으면 절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다. 집을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의 탐욕이 부른 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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