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안쪽
밀로라드 파비치 지음, 김동원 옮김 / 이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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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산 책을 엊그제야 다 읽었다. 살 마음은 진작 들었지만 읽는 마음을 먹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시간을 넘는 인연도 필요했을 테고.


<바람의 안쪽>은 우리나라에 소개 된 파비치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는 <카자르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나머지 모든 내용은 같고 마지막 문단만 다른 남성판, 여성판의 두 권으로 나왔다가 나중에 열린책들에서 합본으로 나온 <카자르사전>이다. <바람의 안쪽>은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나온 적이 있다. 황금가지판은 원전 번역이었나 문장이 읽기 어려웠다. 그 책을 읽고서는 나도 남들처럼 옮긴이를 원망했으나, 지금은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번역자가 귀한 것을 안타까워 할 따름이다.


이 책은 영어판의 중역이다. 중역은 한 개의 필터 대신 두 개의 필터를 끼고 세계를 조망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즉 중역본을 읽을 때 우리가 읽는 것은 누구도 완벽하게 생략되지 않은 세 명(혹은 그 이상의) 저자다. 그럼에도 이처럼 원전 번역을 읽기가 어려운 수준이라면 중역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될 터이다.


이 소설에서 파비치는 17세기의 레안드로스와 20세기의 헤로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스 신화에서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에게서 이름을 따온 두 주인공은 각자의 비극적 사랑으로, 그 끝의 뒤바뀐 죽음(즉 레안드로서는 헤로의 방식으로 죽고, 헤로는 레안드로스의 방식으로 죽는다)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이 환상적인 우화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그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문장이다. 비록 중역의 오염을 의심하더라도 그의 문장이 주는 기쁨은 여전하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차로 그린 풍경>이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중역이라도 감사히 여기며 읽을 테니.




덧) 그러나 17세기 세르비아의 가난한 석공이 빵 이름을 열거하며 ‘턴오버’, ‘팝오버’ 같은 이름을 들먹이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비록 원전 번역의 해당 부분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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