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르리라 - 작은 교회 희망의 씨앗
이태형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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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인터넷 기사를 보다보면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관한 비판, 비난의 댓글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한국 교회의 체계적 문제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특정인이 교회에 몸담고 있다고 해서 교회 자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느 경우든 간에 익명성을 무기로 무분별한 비난을 가하는 자들도 문제가 있겠지만,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이미지가 얼마나 실추되었는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참 많은 교회들을 보게 된다. 감히 '교회의 홍수', '빨간 십자가의 범람'이라고 칭하고 싶을 정도이다. <배부르리라>는 이처럼 많은 교회가, 많은 신학교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한국사회에서 성경의 본질을 좇아 살기 위해 애쓰는 '작은 교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작은 교회'가 본질을 잃고 비본질에 힘쓰는 교회들과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어진 신학교 졸업생들에게 대안이 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열개의 '작은교회'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연을 다 소개하기는 힘들고, 나름대로 그들의 공통점을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주민들을 '끌어모으기'에 힘쓰기보다 먼저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교회
 교회 몸집을 키우기보다 사람을 키우기에 힘쓰는 교회
 자기만족감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는 교회
 아무도 가지 않은, 가리를 꺼리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
 자립, 자급잦족을 위한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교회
 교회 안에 머물기보다 세상으로 나아가 능력을 발하도록 훈련하는 교회 

 이것이 내가 본 '작은 교회'들의 모습이다.  

 열개 교회 중 한 곳을 소개하며 저자는 '진광불휘(眞光不輝):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작은교회와 그 곳의 목회자, 성도들에게 딱 맞는 말인 듯 싶다. 도심과 시골의 '작은 교회'에 몸담으며 지역사회에 묵묵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들. 적은 수의 성도들, 작은 몸집의 교회... 양으로만 따지면 '비주류'에 속한 듯 보이지만 본질을 위해 힘쓰는 그들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수식어 아닐까. 거대한 교회 건물, 그리고 그것의 유지를 위해 땀 뺄 일이 없으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더 본질적인 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함으로써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그중 하나일 터─ 에 에너지를 쏟는 그들이다. 

 작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마치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모두 문제가 있는 냥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그런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길 당부한다. 나는 중대형교회를 십년간 다니고 있는데 그동안 교회의 재건축을 통해 교회몸집이 커지는 것에 대해 신앙인으로서 고민에 빠지기도 했으나 반대로 말씀을 통해 감동과 은혜를 받기도 했다. 또,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훌륭한 목회자들과 교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왜 네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에 앞서 교회 안에만 틀어박혀 영향력을 발하지 못한 채 안일함에 취해있던 나의 모습에 부끄러웠고, 작은 교회들의 이야기를 통해  참 그리스도인, 참교회의 모습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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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성 No.1 신사임당
안영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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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만원권 화폐 인물 선정에 있어서 말들이 참 많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이  현모양처 말고는 없느냐는 둥 국가적 망신이라는 둥 하면서 말이다. TV드라마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소서노, 선덕여왕이나 유관순, 나혜석처럼 주체적 역량을 발휘한 여성들이 많은데 왜 하필 '현모양처' 신사임당이냐며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 그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신사임당' 하면 '현모양처', '율곡이이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이 먼저 떠오른다. 그림이나 자수 등에 능하긴 했지만 그녀가 작가보다는  '현모양처'로 인정받는 건 사실이지 않은가. 앞에서 언급한 다른 여성들처럼 신사임당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거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1504년 연산군 10년에 태어난 신사임당. 여자라는 이유로 서당에 다닐 수도, 과거시험에 응할 수도 없었다. 그저 어머니 밑에서 신부수업 잘 받다가 시집 잘 가서 아이 많이 낳으면 그것이 '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부모, 조부모들은 여자도 남자들처럼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사임당의 조부모에게 자식이라고는 단한명, 사임당의 어머니뿐이었으며 그녀도 줄줄이 딸만 낳았다. 아들이 없는 집안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사임당의 어머니도, 사임당도 서당엔 가지 못했으나 부모 밑에서 남자 못지 않게 글공부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집안일도 열심히 배워야 했고. 어릴적부터 자식교육에 남달리 열심이었던 부모님과 외할아버지 덕에 사임당은 선현들의 글도 많이 읽고, 훌륭한 그림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 이원수와 결혼한 뒤에도 남편과 시어머니의 배려로 책읽기와 그림그리기 등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곱명의 자녀들에게도 남편보다 더 적극적으로 교육을 하였으며 남편에게도 글공부하기를 권하곤 했다. 

   이 책에서 내가 만난 신사임당은 이전에 내가 알던 '현모양처'의 모습보다는 딸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미로서 고뇌하는 모습이 컸다. 결혼하기 전 결혼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던 사임당, 남편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달라 실망하던 사임당, 계속 태중에 아이가 들어서자 기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지 못해 속상해하던 사임당, 먼 곳에 떨어져있는 어머니가 그립고 걱정되어 눈물 흘리던 사임당,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에게 감사하고 며느리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해하던 사임당.. 나의 모습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사임당의 어머니 이씨의 어릴적 모습부터 사임당의 아들 율곡이이의 특출하던 어릴적 모습까지.. 이 소설을 통해 그녀의 삶 전반을 살펴보며 많이 공감했다. 

   결혼 전에 그리고 직장생활을 할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공감하기가 조금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산을 몇달 앞두고 태어날 새생명에 온신경을 쏟고 있는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어미일까 어떤 사람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지금, 사임당의 이야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사임당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리..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 말이다. 한 예로 사임당은 자녀들에게 '성실誠實과 신독愼獨'을 강조했는데, '성실'은 아무리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담아 하라는 것이고 '신독'은 홀로 있을 때에도 하늘이 보고 있음을 알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삼가라는 것이다. 그녀는 먼저 성실과 신독의 본을 보였다. 그녀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하면 어찌 자녀들에게 그것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 이런 모습을 보며 속으로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 요구하려고만 하였지, 먼저 스스로의 모습을 단정히 하지 못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녀가 남긴 그림들을 보면 그림이 참 정갈하고 조화롭다는 느낌이 든다. 양귀비를 그리기 시작하다가 그 주변에 다른 꽃, 나비 도마뱀 등 다른 동식물도 그려넣었는데.. 각자의 개성을 지니면서도 서로 참 잘도 어우러진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그림에 배어나오는 것일까. '현모양처'라는 타이틀에 갇혀버린 그녀이지만.. 그것이 또한 그녀 삶의 일부분 아니겠는가. 조선시대 여성으로 태어나 많은 장벽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던, 자신의 뛰어난 기량을 뽐내기보다 남편이 주눅 들지는 않을까 배려하며 살았던 그녀. 율곡이이처럼 총명한 아들을 두고도 다른 자녀들의 자존감이 낮아질까 두려워 마음껏 자랑하지 않고 조심했던 그녀. 나의 삶도 저렇게 조화롭고 정갈하면 좋겠다는 큰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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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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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생물학자'라고 하면 자신들의 연구를 위해 동물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의 생명체를 연구하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그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안녕, 웨슬리>의 저자 스테이시 오브라이언은 그런 것 같다.
   생물학자인 그녀는 동료가 발견한 한쪽 날개를 다친, 아직 털도 나지 않은 새끼 가면 올빼미를 키우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웨슬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죽어가는 그를 건네받은 그 순간부터, 그리고 그에게 이름을 부여하면서 그녀는 한 생명체에 대한 커다란 책임감을 지니게 된다. 야생동물을 집안에서 키운다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이었지만, 웨슬리와의 놀라운 경험들을 통해 그녀는 웨슬리와의 유대관계를 쌓아간다.
   웨슬리를 위해 매일 적게는 서너마리, 많게는 여덟마리의 냉동쥐를 다듬어야 했고, 맛있는(?) 식사후 남은 쥐의 잔해를 치우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으며, 날카로운 웨슬리의 발톱에 온몸이 할퀴어 누구한테 맞았냐는 오해를 사기도 일쑤였다. 게다가 웨슬리가 그녀를 자기 짝으로 생각해서 수시로 그녀의 팔에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참아야만 했다.
   아무리 생물학자라 해도 감당하기 힘든 이런 일상들도 그녀가 웨슬리에게 책임감과 사랑을 가졌기에 참아낼 수 있었으리라. 그녀의 마음을 아는 지 웨슬리도 그녀를 잘 따랐다. 하긴, 자기 짝이라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19년간의 동거 끝에 웨슬리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통한 놀라운 경험들은 스테이시의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웨슬리가 죽기 전, 스테이시는 뇌종야으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며 자살까지도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웨슬리의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를 본 순간, 뭐랄까, 생명에 대한 경외감, 신의 존재에 대해 느끼게 되고 다시 살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녀가 살린 한 생명체가 19년 뒤 그녀를 살린 것이다. 더이상 직접 웨슬리를 볼 수 없고, 안을 수는 없지만, 그의 털을 쓰다듬을 수는 없지만,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스테이시는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웨슬리는 나에게 올빼미의 길을 가르쳤다. 인간 세상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부 혹은 가장 최근의 업적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물질적인 세상의 모든 허례허식은 병을 앓으면서 모두 벗겨져 나갔다. 웨슬리는 내가 주어야만 하는 모든 것이 사랑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돈, 지위, 업적, 매력, 혹은 우리가 높은 가치를 두는 공허한 그 모든 것들이 필요치 않다. -p.319
 
   <안녕, 웨슬리>를 읽으며 두가지에 놀랐다. 첫째는 내 생각 이상으로 새가 똑똑하다는 것에, 둘째는 야생동물을 집에서 키우며 저자가 겪은 온갖 '수모'에 놀랐다. 생물학자로서 가면올빼미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면 그 고생들을 다 참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웨슬리도 그녀를 그렇게 따르지는 않았을 테다. 그들 사이에는 분명한 교감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나도 어릴적부터 수많은 강아지들을 키워왔기에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견주로서의 책임감을 가졌는 지 돌아보니 매우 부끄러웠다. 저자도 웨슬리의 눈을 통해 그의 감정을 느꼈듯이 나 또한 강아지들의 눈, 표정(분명 개도 표정이 있다!)을 보며 그들의 감정을 알았는데, 그것에 적절히 대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피곤하고 귀찮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때가 많았으니까. 한 생명을 보듬고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인 동시에 힘든 일이다. 동시에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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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토리 149번째 책이야기>

<한국인의 돈> - 김열규, 곽진석






북스토리 (http://www.bookstory.kr)

◆ 서평단 모집기간 : 2009년 7월 22일 수요일 ~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 모집인원 : 10명
◆ 서평단 발표일 :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북스토리 홈페이지 -> 서평마을 -> 서평단 공지사항 참조)
◆ 서평작성마감일 : 2009년 8월 13일 (책수령후 평균 2주 이내)




한국인의 돈 (이숲) /  김열규, 곽진석(저자)
석학 김열규 교수와 그의 제자 곽진석 교수(부경대)가 한국인의 돈을 말한다.
저자는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화폐의 역사와 돈의 종류를 돌아보면서 돈이 한국인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돈에 대한 한국인의 사고와 철학이 고전과 민담, 문학과 예술, 언론 등에서 어떤 형태로 표현되었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우리 선조는 어떻게 돈을 벌었고 어떻게 썼으며, 돈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는지, 그 오래된 지혜들을 톺아보고, 특히 조선시대 상거래의 현장이었던 시장의 다양한 모습들을 묘사하면서 당시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던 돈에 대한 민중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 참가방법
1.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
2.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한국인의 돈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스크랩(복사, 카피)해서 꼭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북스토리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bookstory.kr 메일로 주시거나 북스토리 고객 게시판을 통하여 질문해 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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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 - 에너지를 향한 끝없는 인간 욕망의 역사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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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아이들>은 인류가 '에너지'를 얻어온 역사, 그리고 에너지를 얻음으로써 생긴 인류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태양으로부터 대부분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얻어왔다. 

   에너지의 획기적 변화의 시작은 '불'일 테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더 많은 영양소를 축적하게 되었는데, 광합성을 통해 연료가 되는 바이오매스를 만들고 대기 중 산소까지 만드니 '불'도 태양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 인간이 '불'을 통해 익혀먹기를 하면서부터 거주지역이 확대되었고, 여유시간이 많이 생겨 뇌사용 또한 늘어났다. 한단계 진보한 인류는 '농업'을 시작하였다.
   이 책에서 '농업'은 식물경작과 동물사육 두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인류가 농업을 하면서부터 수렵, 채취보다는 태양에너지를 더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좁은 땅에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문명'의 전제조건이다. 이제 인류는 먹고 사는 것보다 한차원 높은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농업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고, 한곳에 정착하여 생활하게 되면서 물건과 생각의 교환, 사회적 교류가 늘어나게 되었다. 대륙간의 교류, 물물교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굉장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에너지를 이용함에 있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노예까지 써가며 엄청난 인력을 들여도 인간이 지속적으로 일정한 에너지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더 나은, 더 효율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제 '화석연료'라는 또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화석연료 사용과 함께 인간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육상, 해상운송이 발달하였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지역간 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로 인해 세계 정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18세기만 해도 중국과 인도, 유럽이 세계 총생산 상위권이었으나 19세기에는 중국과 인도의 비중이 급락하고 유럽과 미국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또한 더 많은 인력충당을 위해 노예산업이 회생하였고, 도시 근로자들은 질병과 빈곤 등으로 고통받았다. 
   하지만 발전에 따르는 부작용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류는 더 나은 에너지원을 찾고자 노력했다. 석유를 사용하게 되고 내연기관을 발명하면서 자동차, 비행기의 사용이 증가하였고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젠 에너지를 얻기 위한 다툼이 점점 심각해진 것이다. 인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물질과 더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지배력'을 갈망하게 되었다. 
   화석연료로는 더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달은 인류는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 원자력 발전은 '영원한 풍요'라고 할 만큼 상당히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는 있으나 80년대 체르노빌 사건과 같이 그 부작용 또한 상당하다. 더 많은 것을 갈망할 수록 더 많은 것을 잃을 가능성도 커지나 보다.

   저자는 에너지도 얻고, 부작용도 최소화하기 위해 에너지작물사업이나 수력전기, 태양에너지, 지열, 풍차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방법들 또한 농경지부족이나 댐건설의 한계, 기후의 영향 등 넘어야 할 산이 참 많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처럼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찾았는데 '욕심 많은' 인간이 그것을 포기하려 할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은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찾아내었고 발전을 이루었다. 그 눈부신 도약과 함께 환경파괴나 에너지원을 사이에 둔 전쟁 ─표면적으로는 다른 명목을 내세울 지라도─ 등 부작용도 동반되었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록 인류는 점점 재앙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인류가 진보할 때마다 그 부작용들은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다. 과거에 더 편한 삶을 위해 있는 대로 다 뽑아쓰고 망가뜨린 자연을 이제 와서 '다시' 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걸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참 난감하다.
   태양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낌없이 주었고 우리는 아낌없이 뽑아 썼다. 에너지원이 떨어져 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아, 상상도 하기 싫다.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에너지원의 고갈은 상상도 하기 싫지만 에너지원 충당을 위해 점점 파괴되어 가는 자연과 인류의 모습 또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참 많은 혜택을 누린 우리. 그 욕심을 줄일 수는 없고, 그러자니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는 것 같고...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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