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스내처 - 이색작가총서 1
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 너머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는 책 나눔으로 받은 책이다.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란에 이 책이 올라왔기에 읽어 보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나늬님께서 선뜻 보내주셨다. SF 공포물이라고 하면 장르상 맞을 거 같다. 195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은 1978년에 영화로 제작되었고 1993년에는 리메이크 되었다. 책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가 X-파일의 멀더와 스컬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곧 남녀 주인공을 멀더와 스컬리로 생각하며 읽어 버렸다. 어쩌면 그래서 더 흥미진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공포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포를 그다지 즐길 줄은 모르는 사람이다. 호러물이나 공포물을 볼 때 저 상황은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음은 물론 픽션이라고 스스로 암시를 하는 모양이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떡해'를 연발하며 두려움에 떨 때 나는 그 사람의 귀에 대고 살짝 속삭여 준다.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라고.-_- 진정한 공포물 매니아들은 완전 몰입해서 오싹하는 공포를 맛볼 줄 안다고 하는데 나는 매니아는 절대 못 될 위인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물들에는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인 공포를 주는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그다지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공포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은 바로 '알 포인트'다. 유령이나 귀신이 나타나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건 바로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 거라는 심리에서 오는 공포, 바로 그것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3일 동안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_- 그리고 배우 감우성을 더 좋아하게 됐다. 아무튼 나와 친숙한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설정, 그것이 무척이나 낯설고 두려웠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대 후반의 일반 개업의이자 이혼남인 마일즈(멀더)는 어느 날 고교 동창인 베키(스컬리)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베키로부터 그녀의 사촌 윌마를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유인즉 윌마가 그녀를 길러 준 삼촌 내외가 진짜 그녀의 삼촌과 숙모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사는 조용하고 아담한 시골, 밀 밸리에서는 윌마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게 된다. 집단적인 히스테리 현상으로 치부하던 마일즈는 그의 친구 잭을 통해 이 기이한 현상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줄거리는 여기까지...^^)

 

남아 있는 페이지 수가 채 10페이지도 안 되는 상황까지도 끝을 알 수 없게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구성력은 참 놀라웠다. 하지만 마무리 부분은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약간은 어이가 없기도 한 결말이다(스포일러 자제하기 힘들지만 참는다.-_-).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일즈가 짧은 며칠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동안 표현됐던 심리 묘사는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여서 나는 같이 숨을 헐떡이며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마일즈와 베키의 운명은, 밀 밸리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끊임없이 감정 이입이 되는 상황들이 연출되는 데 그 때마다 내 생각을 한 발 앞서가는 작가의 상상력에 나는 손을 들고 말았다.

 

"전시에 행해진 연설의 일부가 문득 뇌리에 떠올랐다. 우리는 들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산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한 국민을 상대로 행해진 연설이었지만, 이것은 인류 전체에도 해당되는 영원한 진실이다. 광대한 우주 그 어디에도 우리를 패퇴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정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다. 인간의 생존 욕망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강하고 질기다.

 

"가짜에게는 감정이 없어. 강렬하고 인간적인 감정 대신 기억과 감정의 흉내만이 존재했던 거야. 그것을 제외하면 아이라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했던 거지."

 

"당신에게 기쁨이라든지 두려움이나 희망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당신을 이루고 있는 그 더러운 잿빛 물질과 똑같은 잿빛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야."

 

"그건 그리 나쁘지 않아. 야망이나 희망, 그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SF물을 읽은 거 같아 흐뭇했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다른 책들이 어떨까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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