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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어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앓아내야만 한다. 네주 시노의 『슬픈 호랑이』가 내게는 그랬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입안이 바싹 마르고, 서늘한 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이 책은 한 인간이 겪은 참혹한 비극에 대한 기록이자,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언어로 길어 올리려는 치열한 사투의 현장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언어로 끄집어낸 책이다. 놀라운 것은 문체다. 울부짖기보다 차분하고, 뜨겁기보다 서늘하다. 작가는 자신의 비극을 감정의 과잉 없이, 마치 남의 일을 관찰하듯 냉정하게 해부한다.
작가는 의붓아버지의 성폭력이라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버거운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피해의 고통을 호소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네주 시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어린양을 만든 이가 어찌 호랑이(포식자)를 만들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악의 본질을 파헤친다.
작가는 문학 전공자답게 『롤리타』 같은 고전들을 끌어와 자신의 상처를 분석한다. 섣부른 위로나 용서는 없다. 작가는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그저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 그리고 그 고통에 이름을 붙여 세상 밖으로 내놓는 법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 책은 비극을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 비극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고, 그 파편을 어떻게 다시 조립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2023년 프랑스 문학계가 왜 이 책에 열광했는지 알 것 같다.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침묵을 깬 인간의 단단한 존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리고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끝에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호랑이가 있다. 그 호랑이를 길들일 수는 없어도, 똑바로 응시할 용기는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아프고도 강한 위로다. 슬픔에 잠기는 법이 아니라, 그 슬픔을 딛고 서서 세상을 응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지독한 진실이 주는 힘이 무엇인지 증명하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본 리뷰는 열린책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