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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 예문 / 1996년 4월
평점 :
절판


겐은 즐겁게 사는 수험생이다. 겐은 예쁜 소녀를 따라다니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고, 주위 사람들을 마음껏 무시한다. 친구 이와세의 '내가 싫어졌다.'는 고백에 겐은 이와세를 어두운 사람, 타인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농담도 통하지 않고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생각은 마음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결코 입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겐은 결코 완벽한 녀석이 아니다. 그는 이름만 들어본 감독들과, 외국 가수들과, 고전에 통달한 척 거짓으로 타인을 대했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닌 레코드로 레이디 제인을 꼬시려들었고, 그녀가 버진이라는 것에 기뻐하는 정말 평범한 녀석이었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이 모른다고 아는 척 하는 비겁한 면도 있었으며, 가장 친한 친구에게 위험을 떠넘기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겐은 소설이 시작되면서 끝나는 순간까지 진지한 적이 거의 없다. 17살 청소년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유치한 진지함이 없다. 겉멋만 들어서 사람 사귐에도 깊이 따위는 없으며, 남자를 무시하고, 여자는 외모로만 판단한다.

그러나 겐은 이와세의 '내가 싫어졌다.'는 말에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담임 마츠나가를 존경하기 시작한 녀석이다. 레이디 제인의 영화 평을 들으며 그는'<냉혈>의 세계가 평화로운 생활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잠복되어 있고-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 는 생각을 해낸다. 또 같은 중학교를 나온 헤세를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창녀가 되어버린 현실을 잊지 않는다. 그는 작중화자로서는 거의 진지함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진지한 내면을 소유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자- 이 정도라면 성장소설을 끌어나갈 훌륭한 주인공이 아닌가.즐거움도 알고 있으며, 고뇌하는 내면의 소유자이다. 그가 툭툭 뱉어내는 편견으로 가득한 말들과, 도를 넘어서는 예의 없음과, 가벼움. 거기에 사실은 생각도 해낸다는 점을 플러스하면 성장해가고 있는 17세의 모습으로 전혀 무리가 없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이 겐이 가진 여러 부조리한 모습까지 희극화 시킨 소설이라면 나는 전혀 불평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인공이 완벽한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글의 후기에 있다. 류는 자신의 10대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겐을 찬양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겐의 편견과,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타인을 거부하며 비난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따져보면 겐이 주장하던 '학교며, 제도, 정치, 기성세대, 모범생들이 자신들을 가축으로 만들어 버리고, 획일화시킨다.'는 말처럼, 겐도 그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겐은 타인들이 모두를 획일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에는 분노하면서 자신은 당당하게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이다.' 라고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고 하고 있잖은가. 게다가 자신처럼 살면 모두들 즐거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은 겐이 별로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생각할 줄 아는 겐이, 자신이 싫다고도 느껴보았고 미군에게 몸을 파는 중학교동창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면서(남의 에너지를 빼앗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나 아는척 하고 떠들어대지만 사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함을 고백하지도 못하며 자신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픔과 상처를 숨기고 있다면 그것을 진정 즐거움이라고 할 수는 있는가? 게다가 그가 '철저하게 나쁘게 쓴' 말잘듣는 학생들(교문의 페인트를 지우며 눈물을 흘린)은 왜 즐겁지 못하겠는가. 겐이 말했듯, 그들은 무서운 자들이다. 게다가 그렇게 확신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자들은 확신하는 대상이 옳고 그름을 떠나 즐겁다. 이제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즐거움'이 단지 '즐거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나가면 이것이야말로 꿈보다 해몽이겠고…… 나머지는 지면관계상-_-; 다른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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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프랑스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선천적으로 몽매한 나조차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많은 프랑스소설은 죽음에 닿아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의 문학은 죽음을 외면할 것이며, 어느 문화의 삶 저 뒤편에 죽음이 숨어있지 않겠느냐만은 내가 접한 프랑스 소설은 그것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엠므씨의 마지막 향수 역시 그랬다. 사실 작가인 퍼시 캉프는 영국인이지만 불어로 이 책이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 글은 불어권의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죽음' 하면 쉽게 떠오르는 그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 능청스럽게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마지막순간까지 죽음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단순한 플롯으로 특별한 기교도 부리지 않는다.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으며(60대 고령의 엠므씨가 주인공이다), 기발한 착상으로 넘치지도 않는다. 그저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향수하나 때문에 자신감 넘치고 즐겁던 한 남자가 자살을 하다니-이 말 안에는 모든 줄거리가 압축되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엠므씨의 마지막 향수는 재미있다. 그것은 지은이 퍼시 캉프의 글솜씨와 묘사력에 기인한다. 그는 글을 즐겁게 쓴다.

물론 그가 타자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는 거짓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가 싱긋 미소를 띄우고 타자기 앞에 앉은 모습이 상상된다. 그는 능청스럽고 재치 있는 문체를 사용한 이 바보 같은 이야기 속의 진지함으로 엠므씨를 현실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소재의 현실감이란. 이 말은 말 자체로 모순이지만 소설 속에서 사실이다. 엠므씨가 향수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종류의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적어도 그런 경험이 한 번 쯤 있기는 할 것이다. 작게 말하자면 어떤 징크스 같은…….

엠므씨는 향수 때문에 자살한 남자이긴 하지만-사실 어이가 없는!- 그는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엠므씨는 기존의 머스크를 구하고, 그것의 양과 그가 평균연령까지 살아가면서 필요한 머스크의 양을 치밀하게 계산했으며-방울단위까지- 결국 죽음을 선택했을 때에도 그는 필요이상으로 슬퍼하지 않았다. 아니 슬픔의 정서는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묘지에 비석대신 자신의 와상을 만들며, 남게될 집을 맘에 드는 사람에게 넘기려고 하며, 목을 매다는 순간까지 남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조금 더 완벽하게 비춰지질 기대한다. 그 부질없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강박증역시 우리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가 미리 예약해둔 안마사는 그의 죽음을 발견하고는 엠므씨의 깔끔한 뒤처리에 감탄하며 열심히 시체를 안마한다. 이것은 퍼시 캉프가 느낀 이 시대의 개인주의에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상대방을 배려한다. 그러나 죽음으로까지 상대방을 몰고 간 어떠한 것에 대한 관심을 전혀 배제하고 단지 그가 원한대로 시체를 안마하며, 그의 씀씀이에 만족하는 안마사의 이야기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두절을 나타내고 있다.

더 이상은 글을 진행시키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불행히도 이 글을 접한 사람들은 <엠므씨의 마지막향수>라는 흥미로운 책을 자신만의 색으로 읽는데 지장을 받을 수도 있으니. 분명 내가 전혀 생각도 못한 많은 부분들을 다른 독자들이 찾아낼 수 있을텐데 말이다. 엠므씨이야기는 주제의 강요 없이 당신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것이다. 라는 것으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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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훔치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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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름다움을 훔치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이다. 아름다움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을 뿐이지 그것을 훔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스칼은 여기에서 또 한번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했으며,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그 부동의 것을 훔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것도 정말 '있을법하도록'. 이것이 바로 그의 작가적 역량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움에 대해 누구나 잠깐은 생각해봤을만 한 그 파괴력과, 완벽함으로 인해 타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힘. 그는 그것을 좀 더 깊이 있는 글로 표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그 이후 이 책의 후유증기간을 거치는 동안 두려웠다. 그것은 물론 나도 감금당한 그녀들처럼 누군가로 인해 감금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나르시즘적 두려움은 아니었다.

'스무 살의 아름다움은 자명한 거야. 서른 살의 아름다움은 보상이고 쉰 살의 아름다움은 기적이지.' 소설속 프란체스카가 한 말이다. 나도 지금 20대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것이나, 곧 30대가 될 것이고, 50대가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아름다움은 기적이 될 것이며 난 아마도 프란체스카처럼 갓 20살의 싱싱한 아름다움을 증오하고 질투하게 될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느 날 타인의 아름다움을 훔치려 들지는 않을까? 날 분노하게 만든 잔혹한 삼인방의 의견에 동조를 보내지 않을까?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며, 이기적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하고, 부당하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며 그것이-분노하고 나눠갖는 것-지당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관조하는 것만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마음을 가다듬고 비워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또 반문을 하자면, 그것은 옳은 것일까? 우리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싶어하므로 점점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타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만족해버린다면 우리 자신은 더 이상 아름다워질 수 없다. 타인의 지식을 보고 그저 경탄하고 안주해버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많은 것을 알 수 없으며, 장미의 이름과 죄와 벌, 향수를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의 소설을 읽기 힘들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잠깐 작가의 의도를 다시 짐작해본다. 그는 단지 잔혹성과, 소설적 상상, 자극적인 소재와 유희만을 전달하기보다는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담으려 한 것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작가의 말이없다. 그것은 우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반면 나처럼 수다스러운 독자로 하여금 좀 더 많은 부분을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것에 힘을입어 감히 말하건대 그는 중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그 무엇에 대해서도-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으나 적당량을 취하라는. 정신과 인턴 마틸드의 결말부분에서도 드러난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 개인적인 취향으로 말하자면 난 이런 식의 환상적이고, 현실에서 체험이 불가능한 이야기를 즐기는 편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소설을 읽는 원초적인 이유. 등에 대해 나불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알고 있다. 그것은 소설이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의 재미와, 소설 속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은 현실과는 다르다. 아무리 리얼리즘 적인 소설도 역시 현실과 다르다. 내가 보는 소설의 미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실 속에서 머무는듯 하다가 어느 순간 현실에서 비틀려있고, 뛰쳐나가 있는 부분. 그것과 현실과의 교묘한 연관. 소설을 읽다가 그 잔혹성과, 몽롱함에서 도망치고 싶어질 때엔 그저 고개를 들고 거울을 쳐다보는 것으로 해결되는. 그 소설의 미학이 파스칼의 소설에는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어쩌면 환상을 관조함으로 만족하지 않고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또 다른 훔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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