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17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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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테마를 이처럼 세련된 블랙 코미디로 형상화할 줄 아는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은 사회적 명성 또는 영혼의 안식처를 위해 문학을 도구 삼아 파시즘에 부역하는 온갖 군상을 보여준다. 군상이라 하면 작가 태생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남미 전역, 더 나아가 북미 대륙의 인물까지도 포괄한다.  


이 소설은 파시즘에 부역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인명사전 형식으로 나열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과 같은, 부역자들에 대한 인명사전이 과거 청산을 위한 사료로서 지니는 가치를 떠올려 보면 왜 이 소설이 인명사전의 형식으로 쓰여야 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물살이 완만하고 좋은 자전거나 말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강물에 두 번(개인의 위생적 필요에 따라 세 번까지도) 멱을 감을 수 있다.


볼라뇨는 소설 첫머리에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의 말을 인용하여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를 비튼다. 이 구절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파시즘의 잔존 세력이 언제든지 득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와 볼라뇨 모두 정치적 망명을 통해 문학적 삶을 영위했으며 다양한 문학 기법을 동원해 현실을 풍자했다는 점이다.


볼라뇨는 문학의 주류가 아닌 변방에서 끊임없이 배회하는 인물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변변찮은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자기 나름의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그린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정치 권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거나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개중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존재감이 미미한 인물들도 다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세계에는 권력과 기성 문단에 영합하는 인물들이 반드시 극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볼라뇨는 이 소설을 통해 적어도 자신의 문학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성취를 이뤄냈다. 하나의 실험실 같은 이 소설 이후 <야만스러운 탐정들>, <먼 별> 등의 작품들이 가지를 치듯 뻗어 나왔고 작품들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존재한다. 바로 그 점이 볼라뇨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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