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The Shipping News』. 『브로크백 마운틴』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애니 프루의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근근이 먹고 살다 새 출발을 위해 조상들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향하는 어느 중년 남성의 정착기 내지는 성장담이다.  


가진 것 없고 자존감 낮은 30대 중반의 쿼일. 뉴욕의 삼류 신문사에서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일하던 그는 연이은 불의의 사고로 삶의 전환기를 맞는다. 병든 부모는 동반 자살하고 아내는 정부와 달아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경기 침체를 이유로 직장에서도 잘린다. 두 딸을 홀로 키우게 된 쿼일은 애그니스 고모의 조언을 따라 함께 뉴펀들랜드로 가 새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깊은 상처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채 살아간다. 게다가 뉴펀들랜드 특유의 광포한 기후와 척박한 토양은 쿼일을 더욱 암담하게 한다. 그러나 사정이야 어찌됐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쿼일은 밥벌이를 위해 지역 신문사인 '개미 버드(Gammy Bird)'에 취직해 자동차 사고와 해운 소식 취재를 담당한다. 그 신문은 반드시 자동차 사고 소식과 사진을 1면에 싣고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나 온갖 가십을 다루는 걸 원칙으로 한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gammy bird는 뉴펀들랜드에서 흔히 발견되는 솜털오리를 뜻한다. 그 유래가 재밌다. 오리들이 꽥꽥거리는 습성이 바다의 어선들이 소리를 질러 서로 소식을 전하던 모습('gamming')과 유사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 

그런데 아내를 앗아간 자동차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와 물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쿼일이 자동차 사고와 해운 소식 담당이라니.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다. 쿼일은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은 해운 칼럼을 써 내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줄거리만 보더라도 예상 가능한 전개와 결말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빤한 이야기인데도 이 소설의 흡입력은 상당하다. 나는 왜 이 소설에 매료됐을까. 암울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서 느낄 수 있는 흐뭇함과 따스한 결말의 여운? 단지 그것만이라면 어찌 애니 프루가 대가라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매력은 상처를 덮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인물들이 상처를 대면하게 한다는 점이다. 불행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보기 싫다고 못 본 척하는 것만으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닐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결말부의 천연덕스러운 기적. 신문의 1면은 관행을 깨고 자동차 사고 소식이 아닌 이 기적적인 소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 기적을 삶의 한 단면처럼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건 전적으로 이야기를 유려하게 빚어낸 작가의 역량 덕이다. 

나는 이 소설이 좋다. 어떤 작위가 아닌, 이토록 담담한 이야기에서 삶의 진실을 보게 한다는 것, 그것은 허투루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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