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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간다, 그림책 - 김서정 그림책 평론집,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ㅣ 책고래숲 2
김서정 지음 / 책고래 / 2020년 7월
평점 :
요즘 이상하게 그림책이 좋아진다. 아이가 어릴 때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몰랐다. 그때는 그림책을 일종의 학습으로 생각해서 읽어주다 보니 온전히 그림책에 빠지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아이가 커서 예전에 아이가 읽었던 그림책을 정리하다가 한 권 한 권 다시 읽으니 그림책이 담은 의미의 심오함과 예술작품 같은 그림 수준에 깜짝 놀랐다.
아동 문학 평론가이자 번역가이며 작가인 김서정 작가의 <잘 나간다, 그림책>은 그림책이란 무엇인지, 한국의 그림책의 역사, 앞으로 그림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분야 전문가로서 의견을 담은 책이다. 특히 K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 누구보다 한국 그림책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했던 분이라 우리나라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는 그림책은 유아용 책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삽화'라는 보조적인 도구인 그림이 들어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경이롭고, 다채롭고, 아름답고, 광대하고 깊은 세계를 펼쳐내는 무대인지 아느냐며 그림책의 가치를 새로 규정한다.
어린이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린이'라는 인생의 한 시기를 지나가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실상, 그들의 드러난 혹은 드러나지 않은 삶과 꿈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일 것입니다. 거기에 '어린이'라는 특수한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모든 인생 시기를 관통해서 존재하는 보편적 인간성이 설득력 있게 펼쳐질 때, 어린이문학은 진정한 문학으로서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자로만 되어 있어 복잡한 사유의 과정이 필요한 동화책보다 그림과 함께 보면서 직관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그림책에서 훨씬 더 자주 발견됐습니다.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대하게 되는 문화적 미디어인 그림책.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교재로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과 생각을 함축적이고 절체된 짧고도 쉬운 문장으로, 그리고 그 문장과 긴밀한 협응관계를 이루는 미술적 장치를 통해 새로운 시각의 세계를 연다. 그래서 그림책은 그 자체로 문학작품이면서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그림책은 단순히 유아만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른들도 그림책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사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와 경험에 따라 같은 그림책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아이들이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그림책을 받아들인다면 어른들은 더 진지하게 사유하며 철학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림책은 외국 작가들의 책이 많이 읽혔다. 하지만 최근 한국 작가들이 외국의 유명한 그림책 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림책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그림책의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작가나 출판사, 독자들이 그림책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니 앞으로 더욱더 좋은 작품들이 나올 거라 기대하게 된다.
<잘 나간다, 그림책>은 그림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림책 읽기를 그저 취학 전 독서 교육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더 넓은 세계를 아이에게 보여준다니 어릴 때 더 열심히 읽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니지, 그림책이 유아 때만 읽으라는 법이 어디 있나. 지금도 아이와 함께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오히려 아이가 자라서 더 많은 이야기를 그림책을 보며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