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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책방입니다
임후남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20년 5월
평점 :
돌아보면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작은 서점 덕분이었다. 10시에 자율학습을 가장한 타율학습을 마치고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10시 40분쯤 되었다. 난 집으로 가지 않고 동네 서점으로 발길을 향한다.
주인아저씨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아저씨가 마감을 하는 동안 작은 간의 의자에 앉아서 만화책도 보고 책도 보고 문제집도 떠들어 봤다. 그러다 학교에서 있던 속상한 일이며 공부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아저씨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들어주신 것뿐이지만 어느새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서점문을 닫을 때까지 20여 분의 시간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기억이 좋아서일까. 나는 책이 잔뜩 쌓여 있는 공간이 좋다. 도서관에 가면 죽 줄지어 있는 책장과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책이 좋다. 서점도 좋아했는데 요즘 서점은 책은 장식품 취급해서 속상하다. 대신 특색 있는 작은 동네 책방들이 늘어서 그건 좋다.
언젠가 나도 책방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책방을 하는 분들이 쓴 책들에 관심이 많이 간다. 임후남 작가의 <시골책방입니다>도 귀가 쫑긋해져 읽은 책이다.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타야 갈 수 있는 용인 시골에 있는 책방 ‘생각을담은집’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책을 읽고,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강연을 듣고, 주인장이 해준 따뜻한 밥을 먹고, 밤새 책을 읽다 가는 곳이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책도 보고 마당에서 노는 엄마도 있고, 시어머니 시이모 시누이와 며느리가 와서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프러포즈도 하는 곳이다. 혼자 온 여대생이 미래를 고민하는 곳이며 서로 마주 볼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살았던 중년의 부부가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어 주는 곳이다. 작가와 함께 시골 노인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들과 시를 쓰는 곳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이는 시골책방에서 이들이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책에 푹 빠져 있는 건 주인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오랜 도시 생활에 지쳐 시골을 찾은 작가. 매일 시골밥상을 대하고 책과 음악과 영화가 풍성하지 무엇이 더 부럽겠냐고 한다.
동네책방의 매력은 책방 주인의 책 리스트다. 아무래도 책방이 작으니 많은 책을 둘 수 없고 책방 주인이 읽고 싶은 책, 좋아하는 책 위주로 진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책이 있는지 보면 책방 주인의 독서 스타일을 알 수 있고, 나와 맞는 책 리스트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임후남 작가의 <시골책방입니다>는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삶을 보게 된다.
“책은 사람에게 길을 만들어준다. 각각의 모양대로 각각의 터에서 살아갈 수 있는 풍토는 결국 함께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책방을 중심으로 마을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함께 하는 일인 것이다.”
이 시골책방은 단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이런 책방이 우리 동네에도 있으면 참 좋겠다.
P.S. 임후남 작가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소개를 했는지 결국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