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보미 작가의 <작은 동네>의 서평을 몇 가지 읽어본 적이 있다. 사실 서평이라기보다는 인스타그램에서 책을 홍보하기 위해 쓴 편집자들의 간단하고 짤막한 소개문구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서평이라고 해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여튼 그러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문구는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었다. 그 옆으로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가 있어서 나는 그 느낌을 생각하며 책장을 펼쳤다.


  책을 받아 읽기 며칠 전 나는 심은경 작가의 <설이>를 읽은 후였다. <설이>는 심은경 작가가 10년 만에 낸 성장소설이었다. 그 탓이었을까, 나는 과거의 작은 동네를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화자를 보며 이 소설은 성장소설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히 틀에 부합하는 성장소설은 아닐지라도 화자는 변화의 지점을 맞이했다.


  보통 이렇게 서평을 쓰게 될 때에는 길게 길게, 누가 보든 신이 나서 스포일러를 마구 포함하고는 하는데 이 소설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읽었을 때 느낀 그 몰입감과 다음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 어쩔 줄 모르는 이 감정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느꼈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 첫 시작은 성장소설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중후반부로 갈수록 소설 전체를 은은하게 지배하고 있던 불온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정감이 독자를 잔심시킨다. 아니 그래서, 도대체? 를 연발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게 나의 어머니가 여러 번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씩씩거리고 있었다. 소설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여러 차례 탄식을 내뱉고 흥분해서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면서 몇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에는 많은 여자들이 등장한다. 언젠가의 소설들이 그랬듯 여자들이 성녀 혹은 창녀라는 프레임, 또는 그냥 살해당해 죽거나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여성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중요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점도 아주 매력적이다.


  남자들이 보여주는 모습도 재미있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아버지, 그건 그 여자의 선택이었다며 끝까지 화자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화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남편. 본인들은 질문을 원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끝내 화자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모습. 인상적이었다.


아, 후회를 한다는 건 아니야. 정말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거야.

······ 다른 선택······ 다른 삶······ 뭐 그런 거 말이야. p. 232

다른 선택, 다른 삶. 하지만 이런 건 그냥 하는 말에 불과하겠지. 얘, 생각해봐. 언제나 우리가 그 일을 선택할 가능성은 백 퍼센트인 거야. 내 말 알겠니? p.235


  소설 내에서 '엄마'는 선택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그 여자의 선택이었으니까. 라는 식으로. 후회하지 않느냐는 말에도 그다지 후회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소설 초반에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고 온 것들, 그러니까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끊임 없이 되돌아보고 있다. 아닌 척해도 결국 삶이란 그런 것이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내내 마음 속에 자신이 떠나온 섬을 안고 있던 어머니. 작은 동네를 떠나 새롭게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 작은 동네를 품에 안은 화자는 닮았다. 닮을 수밖에 없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으나" 어머니와 딸이니까. 모전여전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또 입이 근질거린다.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부탁한다. 제발 읽어서 확인해달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선택은 절대적이다. '엄마'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자의적으로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했다 믿지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네가 선택했잖아, 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다. 그러니까 사실은 백퍼센트인 것이다. <작은 동네>는 '백퍼센트'의 가능성으로 선택된 선택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읽고 나면 잔잔하게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된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어쩔 수 없던 선택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손보미 작가는 언제나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세심하게 관찰해낸 인간의 심리와 묘사에 찬사를 보낸다. 읽는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 나 역시 화자처럼 내 안에 <작은 동네>를 간직하며 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