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은희경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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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삶이 고착화된 인물들이다. 큰 새로움을 겪을 일 없는, 설사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들 자신의 근간을 흔들 만큼의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인물들이다. (물론 날씨와 생활의 아직 어린 화자는 예외다. 그녀에 대해서는 또 따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젊은이들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리고 돈도, 능력 있는 친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뇌와 근육에 신선한 피가 흐르고 거기에 열정과 시간까지 넉넉하므로 그들 앞에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의 경우 그 과정을 거쳐 도달한 곳이 지금의 이 자리이다. 젊음으로 되돌아가서 그 힘든 과정을 되풀이해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보다는 이 지점에서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209면)

  20대를 찬양하는 글들은 많다. 그들의 젊음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러나 무한한 가능성, 성장, 변화는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 그 과정은 몹시 지난하고 힘들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이에 관한 글은 적다. 최근 몇 년 사이 '힐링' 도서가 유행을 타면서부터 현 20대의 고통과 연민에 관심이 옮겨지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들 쉽게 말했으니 말 다했다.

  속된 말로 부모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금수저가 아닌 이상 20대, 사회초년생이 어떠한 기반을 갖고 있기는 어렵다. 기반이 없는 위태로운 환경에서 꿈을 꾸고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어떠한 욕망을 하기 위해서는 그 아래의 욕구가 먼저 충족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30대가 되어 어느 정도 발판을 다진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였을 때 20대에 관하여 돌아보았을 때 "치기와 가난으로만 기억된다"고 말하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는 안정된 기반은 정말로 안정된 것인가. 젊은 시절 멀리 떼어놓고 왔다고 믿었던 어린 날의 치기와 가난은, 그러니까 청춘은 정말 영영 잃어버린 20대만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래 벽에 걸어두었던 액자가 벽에 흔적을 남기듯 우리가 세월을 지내면서 잃어버렸다 믿었던 청춘 역시 마음속에 흔적을 남긴다. 이것이 은희경의 소설집 속 화자들에게는 상실과 실패와 같은 '구멍'으로 나타난다.

  최근 유행하는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한국인들의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커뮤니티에 떠돌던 글이 있다. 분명히 힐링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고, 빚을 갚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무트코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현실의 주식 부럽지 않은 투자 역시 성행한다. 기반을 다지기 어려운 현실, 부단히 기반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의 특징이 게임 속에서도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집에서 화자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치기와 가난으로 얼룩졌던 20대를 지나 어떻게 30대가 되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서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생략 속에서도 후술되는 그의 가치관과 이야기를 통해 그가 20대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본인은 치열하지 않았다고 느낄지라도 나는 견디는 모든 삶이 다 치열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것이 있다. 분명히 있다. 모두 다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모르고 지나가는 일도 많지만, 때로는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것을 덮어놓는다. 그리고 잊는다. 구멍 위로 덮어놓은 천에 먼지가 쌓인다. 구멍이 구멍처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벼운 바람에도 먼지는 날아가고, 천은 펄럭인다. 펄럭이는 소리는 구멍의 존재를 더 적나라하게 부각시킨다.


  당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었나요? 뜻하지 않은 낯선 한순간 자신의 존재와 부재 사이의 좁은 틈, 거기에 갇혀버린 듯한 공포스러운 전율을 느낄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당신 형 역시 우주 미아처럼 돌아올 주소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불현듯 두려움에 사로잡혔겠죠. 순간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만난 셈이니까요.  (「의심을 찬양함」262면)


  소설집 속 성인 화자들은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젊음이 주변에서 마냥 찬양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며, 젊음을 누리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 고통을 다시 한 번 감내하겠다 말할 만큼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처럼 '젊음은 치기와 가난'이었다고 회상하며 별거 아니었다는 듯 축소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젊은 날에 대한 아쉬움은 그들 안에 불티로 남아 미풍에도 크게 반응한다. 아무리 무던하게 가라앉혀도 틈만 나면 호시탐탐 살아날 기회를 노린다. 결국 그를 외면하지 못하고 직시하는 순간. 그 순간 좌절하게 된다. 그야말로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B는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경계선이 도처에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심코 넘었다가는 곧바로 블랙홀로 빨려들어 어딘가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가게 되는 경계선 말이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뿐, 행방불명된 사람들은 모두가 그 경계선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간 것이 분명했다. (「날씨와 생활」60면)

  날씨와 생활의 화자 B는 몽상가다. 평범한 여중생이지만, 언제든 그 경계선을 넘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우연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를 들면 숨겨진 부자 부모가 나타난다든가,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난다든가 하는, 그런.) 그러나 그녀의 상상과 달리 현실에서 그녀를 찾아온 것은 수금원이었다. B는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남자를 곤란하게 해줄 우연을 바라지만 그런 우연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B는 좌절하게 된다. 모든 성장의 과정이 그렇듯 B 역시도 좌절을 통해 성장한다. B가 바라는 방향이었든, 아니었든.

  소설 속 인물들은 지나간 젊음을 체념하고, 자신들은 더는 성장할 것이 없고 놀라울 것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언뜻 보기에 그들의 확신은 타당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러나 곧 무색해진다. 삶을 관통하는 좌절 앞에 잠시 말을 잃고 아연해진다. 인물들은 금세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러나 좌절하는 순간 그들 내부에서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결코 이전의 사람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견고한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지만, 그와 동시에 간절하게 변화를 원한다. 무리에 소속되어 평균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사실은 특별하고 싶다. 젊음은 가난과 치기였으나 그것이 그립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걸 밀 용기도 재력도 없다. 우연을 바라게 된다. 뜬금없는 경계. 과거와 미래, 그 사이의 간극을 종이처럼 접어 만나게 하는 상상.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것은 망상이다. 아름다움은 추상적인 것이고 그 자체가 감정을 갖는 일은 없다.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멸시하는 것은 결국 '나'다. 멸시를 직시하는 순간 우리는 한 없이 공허해진다. 내가 안정적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너무나 유약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나는 한 번 더 기회를 얻는다고 느꼈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변화를 가져다줄 기적 같은 우연. 파랑새처럼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그들 주변을 맴돌고 있던 사인을 이제야 캐치한 거라고. 극적인 변화는 물론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비효과가 그렇듯 작은 파동은 언뜻 소소하게 보이나 삶의 궤도를 크게 바꿀 때도 있다.

  젊음만의 특권이라 생각했던 것은 사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꺼졌다고 느끼더라도 불티를 찾아보면 분명히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왔던 어느 한 장면처럼, 어느 순간 과거는 당신의 책장의 반대편에서 책을 밀어낼 것이다.

  해설을 쓴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날카로운 상처를 낸다. 읽고 나면 아릿한 느낌이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긍정적인 기운이 감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리 긍정적인 사람이 아닌데도, 더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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