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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경애한다면서요, 그거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뜻인데, 그래요, 우리가 사랑하고 공경까지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뭐 인류애적으로라도요."
경애의 마음, 254쪽
김금희 작가의 소설은 마치 잔물결이 이는 호수 같다.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조용하고 쓸쓸한 것 같은데, 잔물결이 이는 표면이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너무 한낮의 연애’라는 단편소설을 통해 작가를 만난 후, 이 작가의 장편소설은 또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기대하던 차에 이렇게 사전서평으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영광이고, 행복하다.
경애의 마음은 주인공 ‘경애’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자어인 경애(敬愛),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나는 가제본을 받아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가장 많이 집중해서 읽었다.
마음이라는 건 뭘까.
어떤 때는 돌처럼 굳어 어떤 말에도 파동 하나 생기지 않다가도,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강하게 출렁거리는, 이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마음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무엇이기에 단단한 육체를 잡고 함부로 흔드는 걸까. 왜 몸이 아픈 건 마음이 아픈 것보다 더 힘든 걸까.
소설의 주인공 ‘경애’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잃었다. 호프집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이었다. 그 친구를 통해 상실의 아픔을 알고, 오랫동안 아파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남들에게는 너무나 게으르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추모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방치하고, 시간 속에 내맡겨버리는 것이다.
경애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마다 매번 약해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나태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겠지만, 그것이 경애에게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샤워하기 위해 욕실로 가는 발걸음조차 너무 무겁고 온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힘들어서, 나를 잃어버릴까봐. 내 형태가 사라질까봐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게 고작인.
같은 시간 속에 ‘상수’ 역시 친구를 잃고 흐르는 시간 속에 멋대로 구겨져 흘러갔다. 묵묵히 일상을 견뎌내며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얼굴을 알기도 전부터 두 사람이 공통으로 잃은 친구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온라인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를 통해 성인이 되어 새롭게 다가온 사랑이 남긴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내 같은 회사, 같은 팀이라는 필연을 통해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것은, 페이스북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를 통해 언니의 가면을 쓴 상수가 경애에게 전한 메시지였다. 경애는 사랑으로 인해 크게 상심했고, 마음을 폐기하고 싶다고 상수에게 말했다. 그러자 상수는, 언니는 말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경애의 마음, 172쪽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생긴 상처, 그 상처가 나를 집어삼키고 비참하게 만들 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자신을 방치하는 최선밖에 다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없애버리고 싶다. 마음을 폐기해버리고 싶다고 말이다. 상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 상수가 경애에게 건넨 말, 폐기하지 마세요. 스스로가 스스로의 아픔만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는 해줄 수 없었던 말이다. 상수와 경애가 만나, 타인의 마음과 닿은 그 순간 일어난 변화다. 단순히 경애에게만 건네는 것이 아닌 상수 자신에게도 건네는 말.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그것이 우리의 매뉴얼입니다.
이 말을 경애는 꼭 쥐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자신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상수 역시, 자신이 건넨 이 말을 통해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으려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 들어 무척 힘들고 지쳐 있었다. 내 문제에 명확하게 답을 제시해주는 건 아니었지만 위로가 되어주는 말이었다.
내 주위에 누군가가 힘들어하고 있다면, -상실이라든가, 현실의 부당함이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의-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 경애의 마음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