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사람인지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일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무엇으로 분류되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와 내가 알고 느끼는 내부의 나가 다르게 정의된다면 그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일 것이다. 특히 출생 이전에 이미 정해진 성(sex)과 젠더 사이의 괴리라면.<전부 취소>는 한영번역가이며 트랜스남성인 호영 작가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시기를 담은 산문집으로 그의 일기, 단상, 수필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이 담겨있다. 감정과 경험을 진솔하게 담은 글을 읽다 보면 어느덧 그의 세상에 함빡 빠지게 된다. 호르몬 치료로 생겨난 신체의 변화, 미국에서 유학한 학창 시절의 경험, 동네 퀴어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가수 이랑의 가사를 번역한 내용 등 폭넓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들이다.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는 트랜스여성 예능인인 풍자가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수상을 축하하는 한편 또 어느 한편으로는 그가 ‘무해한’ 트랜스젠더라 ‘거부감 없다’며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저러한 트랜스젠더는 싫고 이러저러한 트랜스젠더는 좋고, 사람들은 성소수자에 온갖 잣대를 들이대며 선택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인다. 자신들이 어떤 권력을 쥐고 있는 양. 결국 이런 행위는 성소수자-특히 이 경우 트랜스젠더에 대한 표면적인 인지는 미약하게 존재하지만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주 좁은 면이라도 누군가에 대해 알게 된다면 함부로 그를 모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의 경우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와 관련된 논의가 당사자성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말이든 얹는 것이 무례가 될까 조심스럽다고 여겨왔다. 혹은 그 핑계로 좀 더 알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차별은 안 하니까. 그런 나이브한 생각. (소위 중립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그 무엇보다 한쪽에 치우쳐있다는 것을 안다.) 책을 읽고 곱씹은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트랜스젠더 당사자 개인을 더 알고 이해할 기회가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개인적으로는 트랜스여성보다 남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배우 엘리엇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접해본 적이 없어 더욱 신선하게 느꼈던 것 같다.글 그 자체로도 유려한 문장들이 참 아름답고 재미있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는 모두 태깅을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유난히 옆면이 빼곡하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주제라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책의 내용과는 관련 없지만 종이 질이 정말 좋다… 책장 넘길 때마다 매끈한 종이결이 기분 좋게 손에 잡혀들어서 기분이 좋았다는 여담!*읻다 서포터즈 ‘넘나리 3기’의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